▒ 조선왕실록 ▒

世祖 11卷 4年 2月 12日 (辛丑) 001 / 사정전에서 공신에게 중삭연(仲朔宴)을 베풀다. 어서와 이에 화답한 신하들의 시

천하한량 2007. 3. 23. 02:43

世祖 11卷 4年 2月 12日 (辛丑) 001 / 사정전에서 공신에게 중삭연(仲朔宴)을 베풀다. 어서와 이에 화답한 신하들의 시


○辛丑/御思政殿, 設功臣仲朔宴, 王世子及宗親、宰樞、功臣等侍。 王世子進酒, 開國功臣嫡長宜寧君奉朝請南景祐、定社功臣嫡長靑海君奉朝請李孝貞、佐命功臣嫡長鈴川府院君尹師路、靖難功臣鄭麟趾、佐翼功臣桂陽君等以次進酒。 御書曰: “五功臣獻壽, 予不勝自慶。 爲在坐功臣宰臣宗駙諭意。 若死而無識, 宜無子孫之計, 開國等有子孫, 何如今日盛觀! 天下古今皆食其功, 汝等家居有一空得之物乎? 常思衣食之足, 享福有盡之理, 則喜豈獨予? 天必祐之。” 遂下御書于忠勳府。 上歡甚, 命內女數人與妓奏樂, 使群臣起舞, 麟趾就御床下啓曰: “上於鑄字所印《法華》等諸經數百件, 又印《大藏經》五十件, 且今刊《釋譜》, 臣竊以爲未可。” 上怒罷宴。 群臣旣退, 各賦詩以進, 鄭麟趾序曰:

天順二年春, 五功臣上請獻壽, 二月辛丑, 我承天體道烈文英武殿下御思政殿受禮。 酒數行, 降御札, 其辭曰, “五功臣獻壽, 予不勝自慶。 爲在坐功臣宰臣宗駙諭意。 曰若死而無識, 宜無子孫之計, 開國等有子孫, 何如今日盛觀! 天下古今皆食其功, 汝等家居有一空得之物乎? 常思衣食之足, 享福有盡之理, 則喜豈獨予! 天必祐之。” 於是群臣避席, 北面稽首, 祗服訓辭, 拜請述詩以謝, 命復就坐, 俾臣序之, 遂極歡而罷。 洪惟我太祖應天順人開國垂統, 乃與攀鱗附翼之臣指誓山河, 延及苗裔。 太宗大王戡定禍亂時則有定社、佐命勳臣, 立忠義衛, 爵祿三功臣子孫, 永示不忘。 今我殿下再造邦家, 靖難之後, 繼有佐翼殊尤之寵, 前後無比。 吁! 三聖待功臣之厚至矣。 大抵位, 不期驕而驕自至, 祿, 不期侈而侈自至。 驕侈之念一生, 則必有放僻淫泆之行, 此歷代功臣之所以往往不保門戶而有始無終者也。 然則爲人臣者, 可不思富貴之所自而戒愼焉恐懼焉以全其忠義之節乎! 仰惟聖訓所謂 “常思衣食之足享福有盡之理者”, 其丁寧深切之意, 溢於言外, 至於 “喜豈獨予? 天必祐之” 之語, 則推赤心置人腹中, 樂與人爲善之誠, 眞帝王之大度也。 夫君臣一體, 君視臣如手足, 臣視君如腹心, 義爲君臣, 恩猶父子, 情意交孚, 至誠無間, 故上下能相親而運祚以之靈長也。 思以智詐御下, 伺臣下過失, 輒加竄逐誅戮, 此豈爲君之道哉? 孰若我殿下盡君師之道, 君以養之師以敎之, 致君臣於無過之地, 共享太平之福哉? 所以群臣奉玩宸翰, 若雲漢橫於層霄而萬物覩其光, 傳誦聖訓, 若典謨垂於而萬世仰其休。 蹈舞歡欣, 各敷肺腸, 形諸詩歌, 以寓其忠愛之心, 其同寅協恭。 泰和氣像, 誠不愧於賡載之日, 而萬世無疆之業, 可卜也, 吁盛矣哉!

左議政姜孟卿詩曰:

皇天眷眞主, 曆數歸有德。 神武戡禍亂, 妖氛掃淸廊。 大度能駕馭, 英雄奮長策。 濟濟雲臺賢, 功業何炳蔚! 帶礪誓山河, 聲名垂竹帛。 小臣無一補, 何幸參盛列! 春風殿閣涼, 湛露筵秩秩。 千載一奇遇, 魚水歡攸樂。 至仁冒天地, 睿敎明日月。 指示保全路, 恩渥浹骨肉。 稽首徒拜颺, 何由報至澤! 日祝聖人壽, 萬世仰宸極。 庶幾報微勞, 永世效忠赤。

領中樞院事李季甸辭曰:

臣嘗觀《易》謙之彖傳, “人道惡盈而好謙。” 臣祖臣詩曰, “只將淸白遺諸孫。” 此皆操守之切要也。 臣竊念人情莫不欲壽, 而壽者罕, 臣則鬢已皓白矣, 人情莫不欲富, 而富者寡, 臣則位躋崇班矣。 人情莫不厭貧, 而貧者皆是, 臣雖家世淸, 幸依末光, 再參盟府, 睿恩稠重, 優賜土田臧獲, 且官高祿重, 衣食不乏, 未可謂之全貧, 人事之榮, 已到十分之極矣。 虧盈之理, 念念不忘, 恐負祖訓以招世譏, 伏覩綸旨, 尤切感激。 敬書壁上, 常目警省, 誓守傳家之淸白, 願報聖德之萬一。

詩曰:

丁寧天語切, 造次敢違斯! 爵祿儻如顯, 驕侈應有期。 銘神尼父訓, 刻骨祖翁詩。 夙夜思無忝, 勿爲人所嗤。 天地生成妙, 洪纖稟賦均。 難將衰朽質, 仰答化工神。 差繆乖和氣, 災傷示至仁。 常須毋不敬, 上帝豈私親!

梁山君李澄石詩曰:

聖主乾乾撫金闕, 爲招臣僕置樽前。 肆筵雲閣綺文動, 崇酒霞觴綠蟻鮮。 喜氣浮浮登殿, 歡聲靄靄上肩。 微臣遭遇君恩重, 祈壽千年又萬年。

申叔舟詩曰:

天道有消息, 人事滿必覆。 念念功當食, 庶幾長享福。 聖訓正昭昭, 小臣心感激。 願言保忠赤, 永被太平樂。

右贊成黃守身詩曰:

妖氛鬱絪時方屯, 盤石之固賴天威。 斯民旣濟猶勤政, 蠻夷率服尙宵衣。 勳臣卜日請上壽, 奉觴爭呼萬歲祈。 祥烟繞繚仙樂動, 扶醉恩深世所稀。 況賜丁寧垂戒重, 此身糜粉難忘違。 左右銘刻傳後裔, 賤家攸久更生輝。 攀鱗獲參山河誓, 自慙才乏報效微。 但識事君心無貳, 只有丹心不飾非。 每看靑史中, 多少忠賢與奸佞, 願言龜鑑免後譏。

權擥詩曰:

天生眞主撫亨昌, 魚水相歡共一堂。 誓指山河恩罔極, 賞延苗裔慶無疆。 臣心競獻岡陵壽, 聖訓爭輝日月光。 更竭沈綿思報答, 無心辟穀效張良

韓明澮詩曰:

龍飛値興運, 獨慶遇盛德。 訏謨初乾旋, 神功斡地軸。 (二)〔三〕韓宗社奠, 四域桑麻彧。 熙辰際五百, 大業垂千億。 接地會風雲, 麗天明日月。 嗟嗟念臣功, 切切申戒勑。 仰惟聖訓深, 俯恧綿力薄。 君本, 臣非(卨)〔契〕。 (尹)〔君〕邁理, 臣欠策。 終始誓山河, 忠義保金石。 惟當竭此心, 永世荷洪澤。

朴仲孫詩曰:

幸際飛龍日, 曾微汗馬勳。 絲毫何有報! 天地夐無垠。 奉獻南山壽, 欣瞻北闕雲。 願言戒覆餗, 萬世戴吾君。

朴元亨詩曰:

父臨東土子斯民, 攀附欣瞻日月新。 帶礪早知傳誓, 鹿苹今見燕賓。 十行典雅初頒命, 一座英雄共爽神。 醉飽歌餘慙素食, 還從夙夜更惟寅。

洪允成詩曰:

天眷我聖主, 濟時開太平。 經綸貽燕翼, 駕馭摠豪英。 盛業光前烈, 元勛贊守成。 自慙無寸補, 何幸與勳盟。 寵遇踰麟閣, 華筵享鹿苹。 重瞳臨咫尺, 大訓更丁寧。 奉玩奎章爛, 思輸太馬誠。 昭哉戒來許, 終始保功名。

曺孝門詩曰:

皇天眷有德, 握符乘六龍。 神武自天縱, 駕馭必英雄。 濟濟一代傑, 景附風雲從。 山河誓帶礪, 鐵券示勳庸。 況此値佳節, 錫宴蓬萊宮。 明良千一會, 魚水歡攸同。 小臣乏寸效, 謬被君恩隆。 得參湛露筵, 咫尺瞻重瞳。 乾坤德何酬! 兢惕難措躬。 復聞睿訓昭, 勸戒開昏蒙。 敢不對休命! 罄竭愚心衷。 日祝聖人壽, 萬世保大東。 世世服微勞, 天地爲始終。

李興商詩曰:

攀附風雲睿眷隆, 多慙樗散忝官崇。 況叨參獻無疆壽, 帶礪山河誓始終。

藝文提學黃孝源詩曰:

聖主握瑤圖, 景運撫千一。 恢恢廓大度, 駕馭皆豪傑。 際會依風雲, 英雄奮籌策。 神武濟時屯, 乾坤一淸廓。 大德不忘功, 鐵券賜殊錫。 帶礪誓山河, 丹靑炳麟閣。 況此開華筵, 一一霈寵渥。 醉飽湛露恩, 深仁浹肌骨。 睿訓復丁寧, 孰不增感激! 臣乏涓埃功, 何以報河岳! 何幸忝攀附, 謬蒙天地德。 糜粉不可酬, 永言保金石。 但願奉至仁, 萬歲御東國。

崔恒詩曰:

大哉大語一哉心, 惟始思初敢不欽! 已馭群豪膺景運, 更頒宸翰示明箴。 垂鴻赫赫將誰竝? 貽燕兢兢要自今。 願作勳盟千載鑑, 與同休戚有蒼臨。 狂妄如臣尙小心, 看來字字動敦欽。 簡嚴遠邁三風誡, 親切休論四勿箴。 奎藻雲章誠過古, 銀鉤玉筯更無今。 需雲初合賡歌奏, 更賀丕圖屬知臨。 赤心相與識天心, 欲保始終唯在欽。 不溢不危每不易, 無驕無怠可無箴。 功巍文燠徒聞古, 度大仁深獨見今。 自揣何緣石投水, 大風歌裏履如臨。 荐沐深恩已洗心, 況承明訓每令欽。 神功不用提三尺, 盛德何曾待六箴! 卓卓難遭千百萬, 洸洸應耀去來今。 麒麟古事空靑簡, 尺五欣瞻日角臨。 帶礪寧忘此日心! 令終持滿莫過欽。 英猷奚啻危竿諭! 宸省尤嚴大寶箴。 魚藻榮歡超往昔, 雲臺盛美讓當今, 叨參攀附恩何報! 只把葵誠仰煦臨。

曺錫文詩曰:

皇天眷有德, 握符乘六龍。 天戈盪妖氛, 駕馭皆英雄。 山河誓始終, 膚功銘鼎鍾。 錫宴示寵榮, 恩深湛露濃。 仍頒奎璧章, 期以全舊功。 指示可生路, 孰不思盡忠! 至言貴體要, 至道垂無窮。 臣今拜圭復, 晣然如發蒙。 庶幾刻心胸, 奉以規臣工。

尹子雲詩曰:

天戈當日盪妖氛, 攀附群英早策勳。 顧乏微功參帶礪, 唯知大德仰乾坤。 齊呼已拜彤弓貺, 旣醉還歌湛露恩。 況復丁寧聖訓切, 雲仍永世服忠勤。

金礩詩曰:

聖君開泰運, 攀附際風雲。 幸忝山河誓, 偏承雲露恩。 睿言明日月, 大德比乾坤。 報答知無路, 丁寧示子孫。

朴從愚詩曰:

皇天佑大東, 挺然生我王。 國運値中否, 濟屯功無疆。 勇智超千古, 聲敎曁四方。 咸池扶日出, 帶礪永不忘。 賞典增前烈, 恩榮尤異常。 流澤及苗裔, 感愧交心腸。 每慮驕侈生, 昭示訓戒詳。 孰不礪素節! 世世永傳芳。 稽首復稽首, 恒祝聖算長。

權攀詩曰:

錫宴彤墀日, 勳臣醉飽榮。 禮隆醺骨髓, 澤洽媲生成。 璨璨宸章煥, 昭昭聖訓明。 恩深天罔極, 無地效微誠。

尹士昀詩曰:

君王神武駕英雄, 迅掃群兇拉朽同。 黑羽巍巍過白羽, 神弓赫赫勝彤弓。 賢能自奮扶鴻業, 懦怯無由輔聖躬。 何幸得參攀附列, 只將忠赤望重瞳。

權愷詩曰:

上帝求民瘼, 民心懷有仁。 神武自不殺, 革舊仍鼎新。 駕馭必英雄, 際會依風雲。 帶礪不忘勳, 湛露頒深恩。 聖訓況丁寧, 終始保功臣。 孰不增減激! 麋粉酬吾君。 小臣微寸效, 何幸逢昌辰。 寵渥曾踰涯, 夙夜思惟寅。 庶幾展微勞, 努力奉一人。 更祝享無爲, 丹袞臨千春。

趙元壽詩曰:

聖主開神運, 凌烟念舊臣。 山河期帶礪, 苗裔盡簪紳。 天地恩何報! 邦家慶益新。 臨軒宣諭切, 三祝效人。

李克堪詩曰:

龍淵攀附慶明良, 魚水相歡契一堂。 愧乏絲毫酬大造, 自將庸懶荷龍光。 黃金白璧恩非分, 鐵券丹書寵未量。 拜讀訓辭還感泣, 雲仍相戒願毋忘。

세조 11권 4년 2월 12일 (신축) 001 / 사정전에서 공신에게 중삭연(仲朔宴)을 베풀다. 어서와 이에 화답한 신하들의 시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공신(功臣)에게 중삭연(仲朔宴)을 베푸니, 왕세자와 종친·재추·공신 등이 모시었다. 왕세자가 술을 올리고, 개국 공신 적장 의령군(開國功臣嫡長宜寧君) 봉조청(奉朝請) 남경우(南景祐)·정사 공신 적장 청해군(定社功臣嫡長靑海君) 봉조청(奉朝請) 이효정(李孝貞)·좌명 공신 적장 영천 부원군(佐命功臣嫡長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정난 공신(靖難功臣) 정인지(鄭麟趾)·좌익 공신 계양군(佐翼功臣桂陽君) 이증(李璔) 등이 차례로 술을 올리니, 어서(御書)로 말하기를,

“오공신(五功臣)이 헌수(獻壽)하니, 내가 스스로 경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겠다. 자리에 있는 공신·재신(宰臣)·종부(宗駙)를 위하여 뜻을 일러 두겠다. 만약 죽어서 앎이 없다면 자손을 위한 계교가 없음이 마땅하나, 개국 공신들은 자손이 있으니 오늘의 성관(盛觀)이 어떠한가? 천하 고금(天下古今)에서 모두 그 공(功)을 먹거늘, 너희들은 집에 거(居)하면서 한 가지라도 공(空)으로 얻은 물건이 있는가? 항상 의식(衣食)의 넉넉함과 향복(享福)이 다하는 이치가 있음을 생각하면 기뻐하는 것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하늘이 반드시 이를 도우리라.”

하고, 드디어 어서를 충훈부(忠勳府)에 내리었다. 임금이 심히 기뻐하여, 명하여 내녀(內女) 몇 사람과 기녀[妓]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군신(群臣)으로 하여금 일어나 춤을 추게 하였는데, 정인지가 어상(御床) 아래에 나아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주자소에서 《법화경(法華經)》 등 여러 경(經) 수백 벌[件]을 인행(印行)하게 하였고, 또 《대장경(大藏經)》 50벌을 인행하였는데, 또 이제 《석보(釋譜)》를 간행하시니,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옳지 못한가 합니다.”

하니, 임금이 노하여 잔치를 파(罷)하였다. 군신이 이미 물러가 각각 시(詩)를 지어 바쳤는데, 정인지가 서(序)에 이르기를,

“천순(天順) 2년 봄에 오공신(五功臣)이 성상에게 헌수(獻壽)를 드리니, 2월 12일 신축에 천도를 받들고 인도를 몸받으며 문채가 빛나고 영특하고 용맹하신 우리 전하께서 사정전(思政殿)에 납시어 예주(禮酒) 두어 순배를 받으시고 어찰(御札)을 내리셨는데, 그 사(辭)에 말하기를, ‘오공신(五功臣)이 헌수(獻壽)하니, 내가 스스로 경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겠다. 자리에 있는 공신·재신·종부(宗駙)를 위하여 뜻을 일러두겠다. 만약 죽어서 앎이 없다면 자손을 위한 계교가 없음이 마땅하나, 개국 공신들은 자손이 있으니 오늘의 성관이 어떠한가? 천하 고금으로 그 공(功)을 먹거늘, 너희들은 집에 거하면서 한 가지라도 공(空)으로 얻은 물건이 있는가? 항상 의식의 넉넉함과 향복이 다하는 이치가 있음을 생각하면 기쁜 것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하늘이 반드시 도우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군신(群臣)이 자리를 피하여 북면(北面)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공경스러이 훈사(訓辭)에 복종하고 절하며 시(詩)를 지어서 사례하기를 청하니, 명하여 다시 자리에 나아가게 하고 신으로 하여금 서(序)하게 하시고, 드디어 한껏 즐기다가 파(罷)하였습니다.

넓고 크신 우리 태조(太祖)께서 천의(天意)에 응(應)하고 민의(民意)에 순종(順從)하시어, 개국(開國)하여 수통(垂統)하시니, 곧 더불어 반린 부익(攀鱗附翼)의 신하가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였는데, 뻗쳐서 자손에게 미치었습니다. 태종 대왕(太宗大王)은 화란(禍亂)을 평정하시니, 당시에는 정사(定社)·좌명(佐命)의 훈신(勳臣)이 있어 충의위(忠義衛)를 세워 삼공신(三功臣)의 자손을 작록(爵祿)하여 길이 잊지 않음을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 전하께서는 나라를 재조(再造)하시고 정난(靖難)한 뒤에도 계속하여 좌익(佐翼)에게 특별한 총고(寵顧)가 있음은, 전후(前後)에 비할 것이 없습니다. 아아! 삼성(三聖)께서 공신을 후하게 대우함이 지극하시니, 대저 위(位)는 교만하기를 기약하지 않는데도 교만이 스스로 이르고, 녹(祿)은 사치하기를 기약하지 않는데도 사치가 스스로 이르렀습니다.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생각은 한 번 생기면 반드시 방탕하고 음일(淫泆)한 행실이 있게 되니, 이것은 역대 공신이 왕왕(往往) 문호(門戶)를 보전하지 못하고, 또 처음은 있으나 끝이 없게 된 소이(所以)입니다. 그렇다면 인신(人臣)이 된 자는 부귀가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함으로써 그 충의(忠義)의 절개(節槪)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가(可)하지 않겠습니까?

우러러 생각하건대, 성훈(聖訓)의 이른 바, ‘항상 의식의 넉넉함과 행복이 다하는 이치가 있음을 생각하라.’는 그 정녕(丁寧)하고 심절(深切)한 뜻이 말 밖에서 넘치고, ‘기쁜 것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하늘이 반드시 도우리라.’ 한 말에 이르러서는 적심(赤心)을 미루어서 사람의 마음속에 두고 사람으로 더불어 착하게 하는 정성을 즐거워함이니, 진실로 제왕(帝王)의 대도(大度)이십니다. 대저 군신(君臣)은 한몸이니, 임금은 신하 보기를 수족(手足)과 같이 하고, 신하는 임금 보기를 복심(復心)과 같이 하여, 의로써 군신이 되고 은혜(恩惠)로써는 부자(父子)가 되며, 정의(情意)는 서로 믿고 지성(至誠)은 간격이 없는 까닭으로 상하가 서로 친할 수 있고, 국운[運祚]은 이것으로써 신령스럽고 길 것입니다. 지사(智詐)로써 아랫사람을 지배하고, 신하의 과실(過失)을 살펴서 문득 귀양보내거나 주륙(誅戮)을 가할 것만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어찌 임금의 도리이겠습니까? 누가 우리 전하같이 군사의 도를 다하여 임금으로서 기르고 스승으로서 가르쳐 군신이 허물없는 데에 이르게 하여 함께 태평한 복을 누리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군신이 신한(宸翰)을 받들어 깊이 생각하며 읽음[玩讀]은 운한(雲漢)이 높은 하늘에 비껴서 만물이 그 빛을 보는 것 같으며, 성훈을 전송(傳誦)하는 것은 전모(典謨)를 당우(唐虞)에 드리우고 만세토록 그 아름다움을 우러르는 것 같습니다. 기쁨을 어찌할 줄 몰라 각각 마음속에 펴고 시가(詩歌)에 나타내어서 그 충애(忠愛)하는 마음을 붙이어 한가지로 삼가 생각하고 마음으로 공경합니다. 태화(泰和)한 기상(氣像)은 진실로 갱재(賡載)하는 날에 부끄럽지 않으며 만세토록 무궁한 업(業)을 점칠 만하니, 아아! 성(盛)합니다.”

하고, 좌의정 강맹경(姜孟卿)이 시(詩)에 말하기를,

“황천(皇天)이 진주(眞主)를 보살피사

천운(天運)이 덕 있는 이에게 돌아왔네.

뛰어난 무덕(武德)은 화란을 평정하고

요사한 기운을 쓸어내어 묘당을 맑게 하였네.

큰 도량은 가어(駕馭)에 능하시고

영웅은 장책으로 드날리셨네.

제제(濟濟)한 운대(雲臺)의 현인이시니

공업(功業)이 어찌 빛나고 성하지 않으리오?

대려(帶礪)로 산하에 맹세하였고

명성은 죽백(竹帛)에 드리우셨네.

소신(小臣)은 하나도 도움됨이 없거늘

어찌 요행히 성렬에 참여하오리까?

춘풍은 전각(殿閣)을 서늘케 하고

잠로(湛露)는 자리에 질질(秩秩)하네.

천재(千載)에 한 번 기이하게 만났으니

고기와 물도 기뻐서 즐거워하네.

지극한 어짐은 천지를 덮었고

슬기로운 교화는 일월(日月)과 같이 밝히셨네.

보전하는 길을 지시하여 주시니

두터운 은혜는 골육에 사무칩니다.

머리 조아려 절하고 찬양할 뿐

무엇으로 지극한 은택을 갚으오리까?

날마다 성인(聖人)의 장수를 축원하오며

만세토록 신극(宸極)을 앙망하리다.

거의 미미한 수고로 보답하오나

영세토록 충성을 바치오리다.”

하고, 영중추원사 이계전(李季甸)이 사(辭)를 드려 말하기를,

“신(臣)이 일찍이 《주역》의 겸괘(謙卦) 단전(彖傳)을 보니 ‘인도(人道)는 가득한 것을 싫어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 하였고, 신의 할아비 신(臣) 이색(李穡)은 시(詩)에 말하기를, ‘단지 장차 청백함만을 자손에게 남겨 주겠다.[只將淸白遺諸孫]’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지조를 지키는 데 간절하고 긴요한 것입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사람의 마음은 수(壽)하려 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수한 자는 드문데, 신은 귀밑털[鬢]이 이미 호백(皓白)하였고, 사람의 마음은 부(富)하려 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부한 자는 적은데 신은 지위[位]가 숭반(崇班)에 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가난함을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가난한 자가 모두인데, 신은 비록 집이 대대로 청빈하다고 하나 다행히 말단의 영광에 의지하여 두 번 맹부(盟府)에 참여하였으며, 깊은 은혜가 매우 중하여 토전(土田)과 노비[臧獲]를 넉넉히 하사받았고, 또 벼슬은 높고 녹(祿)은 중하여 의식(衣食)이 궁핍하지 않으니, 완전히 가난하다고는 이를 수 없습니다. 인사(人事)에 있어서 영광됨이 이미 10분의 극진한 데에 이르렀습니다. 이지러지고 가득 차는 이치를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고, 할아비의 훈계를 저버려서 세상의 기롱을 초래할까 두려웠는데, 엎드려 윤지(綸旨)를 보니 더욱 간절하고 감격합니다. 공경하여 벽(壁) 위에 써 붙이어서 항상 눈으로 보고 경계하고 살펴서, 가문(家門)에 전하여 청백(淸白)을 지킬 것을 맹세하며 성덕의 만에 하나라도 갚기를 원합니다.”

하고, 시(詩)에는 말하기를,

“정녕한 천어(天語)가 간절하시니

잠깐이라도 그 말씀을 어기리이까?

작록(爵祿)이 혹 높을 것 같으면

교만과 사치를 응당 기약하겠으나

공자의 가르침[尼父訓]을 정신에 새기고

할아비의 시[祖翁詩]를 뼈에 새겨서

아침저녁으로 욕됨이 없기를 생각하고

남의 비웃는 바가 되지 않겠습니다.

천지는 생성하는 묘리가 있고

크고 작은 것에 품부(稟賦)를 고루 하였으나

쇠하여 썩은 자질을 가지고는

우러러 화공(化工)의 신통함에 보답키가 어렵습니다.

조금만 어긋나 화기(和氣)를 어기면

재상(災傷)으로 지인(至仁)을 보여 줍니다.

언제나 모름지기 불경하지 말면

하늘이 어찌 사사로이 친압하겠습니까?”

하고, 양산군(梁山君) 이징석(李澄石)은 시(詩)에 말하기를,

“성주(聖主)께서 부지런히 금궐을 무애하시며

신복(臣僕)을 불러다 술자리 앞에 앉혔습니다.

자리를 베푼 운각(雲閣)에는 아름다운 글이 동하였고,

하상(霞觴)에 채운 술 녹의(綠蟻)가 신선합니다.

기쁜 기운은 부부(浮浮)하여 한전(漢殿)에 오르고

환성은 애애(靄靄)하여 요견(堯肩)에 올랐습니다.

미신(微臣)은 임금 은혜를 조우(遭遇)함이 중하였습니다.

천년 만년 수(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고, 신숙주(申叔舟)가 시(詩)에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소식이 있사오나

인사(人事)는 가득하면 엎어지오니,

생각마다 공(功)으로 먹는다 하면

거의 장구히 복을 누리오리다.

성훈이 떳떳하고 소소(昭昭)하니

소신은 마음으로 감격하옵니다.

원컨대 충성된 진심을 보전하여

길이 태평한 즐거움을 입게 하소서.”

하고, 우찬성 황수신(黃守身)은 시(詩)에 말하기를,

“요괴한 기운이 막혔을 때는 둔곤(屯困)하더니

반석같이 견고함은 천위(天威)를 힘입었습니다.

백성을 이미 구제하고 오히려 정사에 부지런하시니

만이(蠻夷)도 다 복종하여 부지런함을 숭상하였습니다.

훈신이 날을 가려 상수(上壽)를 드리니

잔을 받들고 다투어 만세를 부르며 기원합니다.

상서로운 연기 얽히고 설키니 선악(仙樂)이 울리었고

취한 이를 부축하는 깊은 은혜는 세상에 드뭅니다.

하물며 정녕한 경계를 내려 줌이 중하였으니

이몸이 가루가 된들 잊고 어기기 어렵습니다.

좌우명으로 새겼다가 자손에게 전하면

저의 집에 오래도록 다시 빛나리이다.

반린(攀鱗)하여 산하의 맹세에 참여했으나

스스로 재주가 없고 공이 적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사군(事君)하는 마음은 두 가지가 없음을 아오니

단지 단심(丹心)만 두어 그른 것을 꾸미지 않으리이다.

매양 청사 중에서

충현(忠賢)과 간녕(奸侫)이 많음을 보오니

귀감이 되어 후세의 기롱을 면하기 원하옵니다.”

하고, 권남(權擥)의 시(詩)에는,

“하늘이 참된 임금을 내어 형창(亨昌)하여 무휼하시니

어수(魚水)의 서로 즐거워함을 일당(一堂)에서 함께 하였습니다.

산하(山河)를 가리켜 맹세하니 은혜가 망극하고

상(賞)이 자손까지 미치니 경사는 끝이 없습니다.

신심(臣心)은 강릉(岡陵)의 수를 다투어 드리고

성훈(聖訓)은 일월의 빛과 빛남을 다투옵니다.

다시 침면(沈綿)을 다하여 보답하기를 생각하니

벽곡(辟穀)할 마음 없고 장양(張良)을 본받겠습니다.”

하고, 한명회(韓明澮)의 시에는,

“용이 날아서 흥운(興運)을 만났으니

홀로 성덕(聖德)을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큰 꾀로 처음 건선(乾旋)하시니

신공(神功)은 지축(地軸)을 굴렸습니다.

삼한(三韓)은 종사를 정(定)하였고

사역(四域)엔 상마(桑麻)가 무성합니다.

밝은 때는 5백을 즈음하고

대업(大業)은 천억을 드리웠습니다.

접한 땅엔 풍운을 모우고

여천(麗天)엔 일월을 밝히셨습니다.

차차(嗟嗟)히 신공(臣功)을 생각하니

절절히 계칙(戒勅)을 거듭하셨습니다.

우러러 성훈의 깊은 뜻을 생각하고

구부려 면력(綿力)이 엷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임금은 본시 요(堯)와 순(舜)임금인데

신하는 직(稷)과 설(契)이 아니옵고

임금은 성왕(成王)·강왕(康王)의 다스림을 지나치시는데

신하는 소하(蕭何)·조삼(曹參)의 계책에 부족합니다.

종시(終始)로 산하에 서약하니

충의는 금석(金石)같이 보존하리.

마땅히 이 마음을 다하여서

영세토록 홍택(洪澤)을 입으리이다.”

하고, 박중손(朴仲孫)의 시에는,

“다행히 비룡(飛龍)하는 날을 즈음하여

일찍이 한마(汗馬)의 공훈이 적었으니

사호(絲毫)라도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천지는 아득히 지경[垠]이 없는데

남산(南山)의 수를 봉헌하며

기쁘게 북궐(北闕)의 구름을 바라봅니다.

원컨대 복속(覆餗)함을 경계하고

만세토록 우리 임금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박원형(朴元亨)의 시에는,

“아비로 동토(東土)에 임하여 이 백성을 아들로 삼으시니

반부(攀附)하여 기쁘게 일월의 새로움을 바라보았습니다.

대려(帶礪)로 일찍이 한나라의 맹세 전하였음을 알았고

녹평(鹿苹)으로 이제 주빈(周賓)을 잔치함을 보았습니다.

10행(十行)의 전아(典雅)는 처음 반포한 명이요,

일좌(一座)의 영웅은 모두 정신이 상쾌합니다.

취포(醉飽)하여 노래한 나머지는 소식(素食)을 부끄러워하고

밤낮으로 다시 좇아 더욱 공경함을 생각합니다.”

하고, 홍윤성(洪允成)의 시에는,

“하늘이 우리 성주(聖主)를 돌보시니

때를 건져 태평함을 열었습니다.

경륜은 연익(燕翼)을 끼치었고

가어(駕馭)는 호걸·영웅을 거느리셨습니다.

성업은 전열(前烈)보다도 빛났고

원훈(元勳)은 수성(守成)을 도왔습니다.

스스로 촌보(寸補)도 없음을 부끄러워하는데

어떻게 다행히 훈맹(勳盟)에 참여하오리까?

총우(寵遇)는 인각(麟閣)을 넘었으며

화려한 자리는 녹평을 드렸습니다.

중동(重瞳)은 지척에 임하였고

대훈(大訓)은 다시 정녕하였습니다.

규장(奎章)의 찬란함을 받들어 보니

견마(犬馬)의 정성 보낼 것을 생각합니다.

밝습니다! 내세를 경계하며

끝끝내 공명을 보전하겠습니다.”

하고, 조효문(曹孝門)이 시(詩)에 말하기를,

“황천(皇天)이 덕 있는 이를 돌보시니

부(符)를 잡고 육룡을 타셨습니다.

신무(神武)는 하늘로부터 내시고

가어(駕馭)는 영웅을 기필하셨습니다.

제제한 한 세대의 호걸들이

경부(景附)하여 풍운을 좇았고

산하로 대려(帶礪)를 맹세하니

철권으로 훈용(勳庸)을 보이셨습니다.

항차 아름다운 절기를 만났으니

잔치 베풀기를 봉래궁에서 하셨습니다.

명량(明良)이 천년에 한 번 있는 모임이라

어수(魚水)가 즐거움을 함께 하였습니다.

소신은 촌효(寸效)도 없사온데

망령되게 군은의 높음을 입어서

담로(湛露)의 자리에 참여를 얻었으니

지척에서 중동(重瞳)을 바라보옵니다.

천지의 덕을 무엇으로 갚으리이까?

조심하고 두려워 몸 두기 어려운데

다시 밝은 교훈의 소상함을 들었으니

권면하고 경계하여 혼몽함을 열어서

감히 휴명(休命)에 대하여

어리석은 마음속을 다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날마다 성인의 수를 비오니

만세토록 대동(大東)을 보존하소서.

대대로 미로(微勞)로 복무하며

천지로 시종을 삼겠습니다.”

하고, 이흥상(李興商)의 시에는,

“풍운에 반부(攀附)하여 성상의 돌보심이 융숭하였는데

저산(樗散)으로 관직 높음을 매우 부끄러워합니다.

외람되게 무강수(無彊壽)를 올리는 데 참여하여서

산하가 대려(帶礪)되도록 끝까지 맹세합니다.”

하고, 예문 제학(藝文提學) 황효원(黃孝源)의 시에는,

“성주(聖主)가 요도(瑤圖)를 잡으시니

경운(景運)을 천년에 한 번 무수(撫綏)하였습니다.

회회(恢恢)함은 큰 도량을 열었고

가어(駕馭)하기는 모두 호걸들입니다.

제회(際會)는 풍운을 의지하니

영웅이 주책(籌策)을 떨쳤습니다.

신무(神武)는 시둔(時屯)을 구제하니

천지[乾坤]가 한 번 확청(廓淸)하였습니다.

대덕(大德)은 공을 잊지 못하고

철권(鐵券)으로 수석(殊錫)을 내려 주니

산하가 대려(帶礪)되도록 맹세합니다.

단청(丹靑)은 인각(麟閣)을 빛냈는데

하물며 이 화연(華筵)을 열음이겠습니까?

일일이 총악(寵渥)을 내리시니

담로(湛露)의 은혜에 취포(醉飽)하였습니다.

깊은 어짐은 살과 뼈에 사무치고

예훈(睿訓)은 다시 정녕하셨으니

누가 감격을 더하지 않으리이까?

신은 연애(涓埃)의 공도 없으니

무엇으로 하악(河嶽)을 갚으오리까?

어쩌다가 다행히 욕되게 반부(攀附)하여

그릇되이 천지의 덕을 입었습니다.

미분(糜粉)이 되어도 갚을 수 없으니

길이 금석(金石)으로 보존하리이다.

단지 지극한 어짐을 받들어

만세토록 동국(東國)을 어거하기 원합니다.”

하고, 최항(崔恒)의 시에는,

“크도다! 대어(大語)는 한결같은 마음인데

시초(始初)를 생각하면 공경하지 않을 수 있으리이까?

이미 여러 호걸을 어거하여 경운(景運)에 응하고

다시 신한(宸翰)을 반사하여 경계를 보이셨습니다

수홍(垂鴻)이 혁혁하니 장차 누구를 짝하리

이연(貽燕)하시니 이제부터 두려워하고 삼가하겠습니다.

원컨대 훈맹(勳盟)으로 천년의 귀감이 되어

휴척(休戚)을 한가지로 하고 창천에 임하소서.

광망함이 저같은 신하도 주위[小心]를 더하니

보는 글자마다 도탑고 공경하는 마음이 동합니다.

간엄(簡嚴)하고 원매(遠邁)함은 삼풍(三風)의 경계이요,

친절한 휴론(休論)은 사물의 경계함[四勿箴]입니다.

규조(奎藻)의 운장(雲章)은 진실로 옛것을 지났고

은구(銀鉤)의 옥저(玉筯)는 이제 다시 없습니다.

수운(需雲)이 처음 합하니 노래를 화답하고 연주하고

다시 큰 계책을 하례하니 아는데 접하여 임하셨습니다.

적심(赤心)을 서로 주니 천심을 알았으며

시종을 보존하려 함은 오직 공경함에 있습니다.

넘치지 않고 위태하지 않음은 매양 쉽지 아니하나

교만치 않고 태만하지 않는다면 경계할 바 없을 것입니다.

공은 높고 문장은 빛나니 옛것만을 들었고

도량이 크고 인의가 깊으니 지금만을 봅니다.

스스로 헤아려도 무엇을 인연하여 돌을 물에 던졌으니

대풍(大風)의 노래 속에는 밟기를 얼음에 임한 듯합니다.

거듭 깊은 은혜를 입으니 이미 세심(洗心)하였는데

하물며 명훈(明訓)을 받았으니 매양 공경케 합니다.

신공은 삼척검(三尺劍)을 쳐들어 쓸 필요가 없었으니

성덕(盛德)은 어찌 일찍이 육잠(六箴)을 기다렸겠습니까?

탁탁(卓卓)함은 천백만 년에 만나기 어렵고

광광(洸洸)함은 응당 거래금(去來今)을 비추리이다.

기린(麒麟)의 옛일은 청간(靑簡)에 비었는데

척오(尺五)는 해가 모퉁이에 임함을 즐겨 봅니다.

대려(帶礪)하니 어찌 이날의 마음을 잊으리이까?

끝을 잘 맺고 가득참을 유지하려면 공경보다 지남은 없소.

영특한 꾀는 어찌 위간(危竿)의 유시뿐이겠습니까?

신성(宸省)은 더욱 대보(大寶)의 경계에 엄숙합니다.

어조(魚藻)가 영화함을 즐김은 지나간 옛을 뛰어넘었고

운대(雲臺)의 성한 아름다움은 오늘을 당해 사양합니다.

외람되게 반부(攀附)에 참여하니 은혜를 어찌 보답하리오?

다만 규성(葵誠)으로 조림(照臨)함을 우러러 보겠습니다.”

하고, 조석문(曹錫文)의 시에는,

“황천(皇天)이 덕 있는 이를 돌보시어

부(符)를 잡고 육룡을 타셨습니다.

천과(天戈)는 요분(妖氛)을 물리치셨고

가어(駕馭)는 모두가 영웅이었습니다.

산하(山河)로 시종(紿終)을 맹세하고

큰 공을 정종(鼎鐘)에 아로새겼습니다.

잔치를 내려 총영(寵榮)을 보이시니

은혜가 깊어 잠로(湛露)가 짙습니다.

이어서 규벽(奎璧) 같은 글을 반포하니

기약은 옛 공을 온전히 하셨습니다.

살 길을 지시하여 주시니

누가 진충(盡忠)하기를 생각지 않으리이까?

지언(至言)은 요긴함을 몸받음이 귀하고

지도(至道)는 무궁함을 드리웠습니다.

신이 이제 규복(圭復)을 배사하니

절연(晣然)히 어리석음을 개발한 듯합니다.

거의 마음과 가슴에 아로새겨서

신공(臣工)을 규간(規諫)하고 받들겠습니다.”

하고, 윤자운(尹子雲)의 시에는,

“천과(天戈)는 당일에 요분(妖氛)을 물리치시니

반부(攀附)한 뭇 영웅들은 일찍이 책훈되었습니다.

작은 공을 돌보아 주며 대려(帶礪)에 참여하게 하시니

오직 대덕(大德)을 알아 해와 달과 같이 우러러봅니다.

일제히 만세 부르며 이미 배사하니 동궁(彤弓)을 주었고

이미 취하고 다시 노래하니 잠로(湛露)의 은혜입니다.

하물며 다시 정녕하게 성훈이 간절하시니

운잉(雲仍)은 영세토록 충근(忠勤)으로 복무하리이다.”

하고, 김질(金礩)의 시에는,

“성군이 태운(泰運)을 열으시니

반부(攀附)는 풍운을 즈음하였습니다.

다행히 산하의 맹세에 참여하니

편벽되이 운로(雲露)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언(睿言)은 일월보다 밝으시니

대덕(大德)은 해와 달과 견주었습니다.

보답할 길 없음을 아오나

정녕히 자손에게 보이겠습니다.”

하고, 박종우(朴從愚)의 시에는,

“황천이 대동(大東)을 보우하사

정연(挺然)히 우리 임금을 낳으셨습니다.

국운은 중간에 비운(否運)을 만났으나

어려움을 구제하셨으니 공력이 무강합니다.

용지(勇智)는 천고를 뛰어넘었고

성교(聲敎)는 사방에 미치었습니다.

함지(咸池)에서 해돋음을 붙드셨고

대려(帶礪)는 길이 잊지 못합니다.

상전(賞典)은 전렬보다 더 하시었고

은영(恩榮)은 더욱 평상보다 달랐습니다.

유택(流澤)이 후손[苗裔]에게까지 미치니

감괴(感愧)가 심장에 얽혔습니다.

매양 교만하고 사치하는 마음이 생김을 생각하여

밝게 훈계를 자세히 보이셨습니다.

누가 소절(素節)을 갈지 않으리이까?

대대로 길이 꽃다움을 전하겠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항상 성산(聖算)이 오래시기 비옵니다.”

하고, 권반(權攀)의 시에는,

“잔치를 동지(彤墀)에 내려 주신 날

훈신이 취포(醉飽)하니 영광입니다.

높은 예우는 골수에 사무쳤고

흡족한 은택은 생성(生成)을 짝하였습니다.

찬찬(璨璨)하게 신장(宸章)은 빛났고

소소(昭昭)하게 성훈은 밝았습니다.

깊은 은혜는 하늘같이 망극하니

작은 정성을 본받을 곳이 없습니다.”

하고, 윤사윤(尹士昀)의 시에는,

“군왕의 신무(神武)는 영웅을 어거하였고

신속히 군흉(群兇)을 소탕하니 납후(拉朽)함과 같습니다.

흑우(黑羽)는 외외(巍巍)함이 백우(白羽)보다 지났고

신궁(神弓)의 혁혁함은 동궁(彤弓)보다 낫습니다.

현능(賢能)은 스스로 홍업(鴻業)을 붙들어 떨쳤고

나겁(懦怯)은 성궁(聖躬)을 도울 길이 없었습니다.

어찌 다행히 반부(攀附)의 반열에 참여하였겠습니까?

단지 충적(忠赤)을 가지고 중동(重瞳)을 바라봅니다.”

하고, 권개(權愷)의 시에는,

“상제(上帝)께서 백성의 질고를 구하시니

민심은 어진이를 생각하였습니다.

신무(神武)는 스스로 죽이지 아니하니

묵은 것을 고치고 이어서 혁신[鼎新]하였습니다.

가어(駕馭)하기는 영웅을 기필하였고

제회(際會)하기는 풍운을 의지하였습니다.

대려(帶礪)로 공을 잊지 않으시고

잠로(湛露)로 깊은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성훈이 더욱 정녕하셨으니

종시 공신을 보전함입니다.

누가 감격을 더하지 않으리이까?

몸이 가루가 되도록 우리 임금께 갚으리이다.

소신은 촌효(寸效)도 적은데

다행히 창신(昌辰)을 만났습니다.

총악(寵渥)은 일찍이 물가를 넘었으니

밤낮으로 오직 공경함을 생각합니다.

거의 미로(微勞)를 펴서

노력하여 한 사람을 받들겠습니다.

다시 무위(無爲)를 누리기 축하하오니

단곤(丹袞)은 천년을 임하소서.”

하고, 조원수(趙元壽)의 시에는,

“성주(聖主)께서 신통한 운수를 열으니

능연각 옛 신하를 생각합니다.

산하로 대려(帶礪)를 기약하니

자손[苗裔]은 모조리 고관[簪紳]입니다.

천지 같은 은혜를 어찌 갚겠습니까?

방가(邦家)의 경사는 더욱 새롭습니다.

마루에 임하여 선유(宣諭)가 간절하시니

봉인(封人)의 삼축(三祝)을 본받겠습니다.”

하고, 이극감(李克堪)의 시에는,

“용연(龍淵)에 반부하여 명량(明良)을 경하하였고

어수(魚水)가 서로 즐기니 한 당(堂)에 모였습니다.

사호(絲毫)도 대조(大造)에 보답이 없음이 부끄러운데

스스로 용라(庸懶)함을 가지고 용광(龍光)을 입었습니다.

황금과 백벽(白璧)의 은혜는 분수가 아니옵고

철권과 단서의 총애는 한량 없었습니다.

훈사(訓辭)를 배독하니 다시 감읍(感泣)하옵고

운잉(雲仍)은 서로 경계하여 잊지 말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원전】 7 집 25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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