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록 ▒

世祖 2卷 元年 12月 8日 (己酉) 001 / 좌찬성 이계린의 졸기

천하한량 2007. 3. 23. 02:40

世祖 2卷 元年 12月 8日 (己酉) 001 / 좌찬성 이계린의 졸기


○己酉/左贊成李季疄卒, 輟朝二日, 賜賻米豆幷四十石、紙一百卷、松脂、油芚、蠟燭。 季疄子耕, 韓山君之孫, 以貞順公主女壻。 補敦寧府丞, 遷至判繕工監事, 世宗擢爲承旨, 累歷議政府右贊成。 世祖卽位賜佐翼功臣號, 封韓山君。 至是卒, 年五十五。 性剛直廉介, 居官奉法, 臨事果決, 守正不撓, 門無私謁, 然無文武長材。 有子四, , 諡恭武, 執事堅固恭, 性剛理直武。

세조 2권 1년 12월 8일 (기유) 001 / 좌찬성 이계린의 졸기


좌찬성(左贊成) 이계린(李季疄)이 졸(卒)하였다. 이틀을 철조(輟朝)하고, 쌀·콩 아울러 40석, 종이 1백 권, 송지(松脂)·유둔(油芚)·납촉(蠟燭)을 사부(賜賻)하였다. 이계린의 자(字)는 자경(子耕)이요,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의 손자요, 정순 공주(貞順公主)의 사위였다. 돈녕부 승(敦寧府丞)에 보임(補任)하였다가 옮겨서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에 이르렀는데, 세종(世宗)이 발탁(拔擢)하여 승지(承旨)로 삼았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이 되었다. 세조(世祖)가 즉위(卽位)하자 좌익 공신(佐翼功臣)의 호(號)를 내려 주고, 한산군(韓山君)에 봉(封)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55세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관직(官職)에 있으면서 법을 받들고, 일을 처리하는 데 결단성이 있으며, 바른 것을 지켜 굽히지 아니하였으며, 문전에는 사알(私謁)이 없었으나, 문무(文武)에 큰 재주는 없었다. 아들 넷이 있는데 이숙(李塾)·이훈(李壎)·이해(李垓)·이규(李圭)이다. 시호(諡號)는 공무(恭武)인데 일을 맡아 보는 것이 굳건한 것을 공(恭)이라 하고 성품이 강직(剛直)하고 이치(理致)가 곧은 것을 무(武)라 한다.

【원전】 7 집 99 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