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록 ▒

世宗 51卷 13年 2月 25日 (庚申) 002 / 문과 초장에 두가지 경서를 택하여 출제할 것을 청하다

천하한량 2007. 3. 23. 02:26

世宗 51卷 13年 2月 25日 (庚申) 002 / 문과 초장에 두가지 경서를 택하여 출제할 것을 청하다


○詳定所啓: “歷代之儒, 皆通一經, 謂之業經, 如歐陽玄及本國李穡亦業一經, 故其學至精。 今文科初場, 只出二經題, 是欲學者通五經也。 然學者不專一經, 其學文不精熟, 實爲無益也。 乞出五經題, 使熟一經。” 上曰: “雖有此弊, 然出五經題, 則不通五經者, 亦得幸中, 是豈取人之義乎?” 先是, 議初場只出一經題, 是則通五經者赴試, 四經者不赴, 故更議出二經題, 右議政孟思誠啓: “凡儒者, 雖有業經, 若業經之題難, 而他經之題易, 則必捨業經, 而就他經, 出五經題似可。” 上曰: “然則入門時, 令搜挾官嚴加搜探, 使不得挾冊, 又不得與朋友議問, 則不知經義, 而中試者, 未之有也。” 衆議紛紜, 互有異同, 終以出二經題爲定。

세종 51권 13년 2월 25일 (경신) 002 / 문과 초장에 두가지 경서를 택하여 출제할 것을 청하다


상정소(詳定所)에서 아뢰기를,

“역대의 유학자(儒學者)들이 모두 한 가지 경서[經]만을 연구 정통하는 것을 업경(業經)이라 일러 왔사온데, 저 〈중국의〉 구양현(歐陽玄)과 본국의 이색(李穡) 같은 이도 역시 한 가지 경서만을 전업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학문이 지극히 정치(精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문과 초장(文科初場)에 다만 두 가지 경서의 문제만을 내는 것은 학자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경서에 다 능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학자가 한 가지 경서만을 전공하지 않으면 그 학문이 정숙(精熟)하지 못하여 실상 무익할 것이오니, 비옵건대 다섯 가지 경서의 문제를 내어 각기 한 가지 경서에 능숙하도록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이 같은 폐단이 있긴 하나 다섯 가지 경서의 문제를 낸다면 다섯 가지 경서에 다 통하지 않는 자도 역시 요행히 맞히는 자가 있을 것이니, 이 어찌 인재를 선발하려는 본의이겠는가.”

하였다. 이에 앞서 초장(初場)에 다만 한 가지 경서의 문제만을 낸다면 다섯 가지 경서에 다 능통하는 자는 시험에 응할 것이나, 네 가지 경서에 통하는 자도 응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논의가 있어 이를 다시 두 가지 경서에서 출제할 것을 의논하니,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이 아뢰기를,

“대저 유학자 가운데 비록 업경(業經)이란 것이 있긴 하오나 그 업경의 출제가 어렵고, 다른 경서의 문제가 쉬우면 반드시 그 업경을 버리고 다른 경서로 나아갈 것이오니, 오경(五經)을 모두 출제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면 문에 들어올 때 수협관(搜挾官)으로 하여금 엄중한 수색을 가하여 책을 끼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벗들과도 상의하거나 묻지 못하게 하면 경의(經義)를 알지 못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였다. 중론이 분분하고 서로 이동(異同)이 있어 마침내 두 가기 경서를 택하여 출제할 것으로 정하였다.

【원전】 3 집 296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참(兵站) / *농업-개간(開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