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청빈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

천하한량 2007. 3. 22. 05:46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80평생을 청빈하게 사셨다. 그는 일생을 집 한 칸 없을 정도로 물질에는 욕심이 없었다. 일본 고위층이 엄청난 돈으로 유혹했어도 거절했다. 이상재 선생님이 "기독교 청년회" 총무로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선생님 댁을 찾아왔다. 그때가 바로 추운 겨울이었는데 선생이 계신 방은 얼음장같았다. 그 청년은 늙으신 선생께서 너무 추위에 고생하시는 것을 민망히 생각해서 가지고 있던 약간의 돈을 선생님 앞에 내놓으며 "이것으로 나무(땔감)나 좀 사십시오"하니, 선생은 그저, "고마우이"하시며 그 돈을 받아들였다. 조금 있다가 어떤 학생 한 명이 찾아와서 학비가 군색함을 호소하자, 선생은 또 거침없이 그 돈을 학생에게 주시면서 "공부나 잘하라"고 말했다. 이윽고 학생이 나간 다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손님이, "선생님, 그 돈을 학생에게 주시면 나무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걱정하면서 얼마의 돈을 내 놓았다. 이것을 보더라도 선생님이 물질에 욕심이 없이 사셨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선생님자신이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도와주는 일이 흔했다. 이처럼 남을 사랑하며 가난한 것이, 애정없이 부유하게 사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이조 선조 때의 학자 이 지함은, 말년에 친구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포천 현감으로 가게 되었다. 옷은 베옷을 입고, 신은 짚신에, 갓은 헤진 것을 쓰고 갔다. 그날 저녁 현감의 부임이어서, 그 고을 관리들은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진미를 갖추어, 상을 올리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수저를 들어보지도 않고서 상을 그대로 내보냈다. 아전(지방관리)들은 아마도 상이 시원치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황송하여 부랴 부랴 다시 그 보다도 훨씬 더 잘 차려서 두 번째로 상을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전히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내 보냈다. 아전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 부절하다가, 드디어 뜰 아래 엎드린 후 "황송하옵니다. 저의 고을은 한양(서울)과는 달라서 이 이상은 도저히 더 잘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살려 주십시오"라고 빌었다. 이지함은 온화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아니다. 내 생각을 몰라서들 그러는군. 나는 그런 좋은 음식은 먹어본 일이 없어서 두려워 그런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넉넉지 못하게 된 까닭은 분수에 맞지 않게 사는 때문이다. 이런 음식 같은 것, 그리고 호화로운 옷 같은 것으로 사치를 피는 때문이다. 너희 고을에 잡곡 밥 있지? 그것을 가져오너라. 나는 오직 잡곡밥과 나물국이면 족하다. 이후 우리 모두가 부해질 때까지는 그런 사치스런 음식을 먹지 말기로 하자" 그리고 부임 한지 한 달 후에 이지함은 그 고을 아전과 유지들에게 한 턱을 냈다. 그런데 상이라고 내오는 것을 보니까 잡곡밥에 시래기국 한 그릇씩이 놓였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가 막힐 지경이어서 숟가락도 못 들고 있는데, 주인 사또는 맨 먼저 숟가락을 들고 후루룩 후루룩 맛있게 들어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유지들도 하는 수 없이 국을 떠 입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국은 너무 맛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감은 전과 같이 맛있게 들고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사치는 나라와 가정을 망치는 것이니, 우리는 분수에 알맞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매사에 검소했을 뿐 아니라, 백성을 잘 선도하여, 그가 3년간 포천에 있는 동안 포천은 실로 눈여겨 볼만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현감과 백성의 사이는 마치 부모와 자녀의 사이처럼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아산 현감으로 발령이 나 포천을 떠날 때는, 온 고을 백성이 길을 막아 이임을 싫어하며,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또 이조 세종 때, 유관이란 정승은 어찌나 결백했던지, 흥인문 밖에 두어 칸 짜리 오막살이에 울타리도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이를 딱하게 여기던 세종 왕이 공감을 불러 정승이 모르게 갈대발로 울타리만이라도 둘러 주라고 일렀다. 집이 허술한 데다 방안까지 다 들여다보이니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 여름, 장마가 계속 되자 방안에는 비가 줄줄 새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찌그러진 삿갓 하나가 있어 정승은 방안에서 그것을 쓰고 앉아 비를 피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인에게 이렇게 걱정하는 것이었다. "삿갓이 없는 백성은 이 빗속에서 어떻게 지낼까?"

 


가난한 유대인의 교사 랍비에 대한 일화이다. 어느 날 랍비가 없는 돈을 모아 이집트 상인으로부터 당나귀 한 마리를 샀다. 평소 "청빈한 스승"을 따르던 제자들이 기뻐하며 당나귀를 시냇가로 끌고 가 몸을 씻기던 중 당나귀 목에서 다이아몬드가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제자들은 '횡재'했다며 랍비에게 뛰어가 다이아몬드를 보여주며 "이제 가난은 끝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랍비는 준엄하게 말했다. "당장 상인에게 돌려주거라. 나는 당나귀만 샀지 다이아몬드를 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