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이등방문까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게한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독설

천하한량 2007. 3. 22. 05:45

월남 이상재가 기독교 대표로 일본을 시찰했을 때의 일화다.

일본은 시찰단을 거대한 병기창으로 안내했다.

그러더니 환영행사까지 열었다. 이상재의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병기창을 둘러본 소감을 물었다. 이상재는 거침없이 한마디했다.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병기창을 보았더니 대포, 총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과연 일본이 강국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성서에 이르기를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그것이 걱정이다."

 

'한일합방' 직전의 일화도 있다. 이상재가 조선미술협회 창립행사에 참석했다. 식장에 매국노 이완용과 송병준이 이등박문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모양을 본 이상재는 속이 뒤틀렸다. 뼈 있는 한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두 분 대감은 동경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갑자기 이사가라는 말을 꺼내자 매국노들이 무슨 뜻인가 물었다. "대감들은 무엇이든 망하게 만드는 데에는 천재 아닙니까. 동경으로 이사를 가면 일본도 망하게 될 것 아닙니까."

 

이상재의 독설(?)은 이처럼 날카로웠다.

우리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등박문까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고 한다.

 

이번 '독도 사태'로 반일감정이 또 끓고 있다. '조용한 외교'에 대한 비판론이 나오고 '극일(克日)'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재의 말을 오늘날 그대로 따라서 해보면 어떨까. 이완용, 송병준에게 이사를 가라고 한 것처럼 우리 정치판을 일본으로 '수출'하면 된다. 그러면 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극일'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정치판을 일본으로 보내면 그곳에서도 '편가르기'를 할 것이 뻔하다. 우리나라에서 일삼던 '편가르기'를 일본에서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치판의 노하우인 '편가르기'가 저절로 전수될 것이다.

 

이번 독도 사태로 일본 외무성 차관이 파견되었을 때 일본 의원들은 자기들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한다. 뒤에 남아서 응원을 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 사이를 참지 못했다. "분노의 정서가 없다. 독도 사태보다 사학법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등 여전히 입씨름을 벌였다는 보도다. 국가 이익보다는 지방선거의 '표'에 신경을 더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편가르기를 가르쳐주면 일본 의원들이 이번 사태처럼 똘똘 뭉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좋은 일본 정치판은 편가르는 방법도 쉽게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본도 국론보다는 당론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돈을 받아 챙기는 방법도 저절로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받고 공천해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우리 정치판은 돈의 무게는 물론, 부피를 계산하는 데 탁월하다. 돈의 규모에 따라 사과 상자, 선물 상자, 쇼핑백 등을 가장 잘 선택해서 담을 수 있다. 또 어떤 차에 실어서 '차떼기'해야 돈의 무게를 지탱할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돈 대신 미국 달러를 받아서 '자금추적'을 따돌리는 방법도 전해줄 수 있다.

 

우리 정치판은 이 분야만큼은 대단한 경험을 쌓아왔다.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가르쳐주면 그들을 순식간에 타락시킬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정치판을 모조리 보낼 필요도 없다. 대표적인 몇몇이면 충분하다. 편가르기 전문가, 차떼기 전문가 등 '꾼'만 골라서 보내면 그만이다. 이들은 소질을 발휘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도로도 일본을 충분히 오염시킬 수 있다.

 

정치판을 수출하고 나면 국내적으로도 대단한 이익이 될 수 있다. 편가르기가 사라지면 나라가 조용해질 수 있다. 국론도 통일된다. 불필요한 국력의 낭비도 저절로 없어진다. 작게는 정치꾼만 나오면 TV 채널을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진다.

 

반면 일본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에게 편가르기를 배운 덕분에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국론이 분열된다. 그 결과 국력이 낭비된다. 국민이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마침내 '사쿠라'처럼 사그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김영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