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재김인전 ▒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인전 선생은 누구인가.

천하한량 2007. 3. 21. 04:05
 

1923년 서천에서 김인전 선생 추도 행사가 열렸다.

조선일보 1923년 5월 23일자에 김인전씨를 추도하는 행사가 열렸다는 기사가 있다. 즉 “고 김인전씨가 상해에서 세상을 리별하얏다 함은 이미 보도 하엿거니와 이 소식을 들은 충남 서천군 완포리 예수교회당에서는 남녀 수백명이 모이여 지난 십오일 오후 세시에 추도회를 개최한 바 장세환(張世煥)씨의 사회하에 식을 행하얏는데 ‘고 목사 김인전씨’ 라고 초혼(招魂) 삼창이 잇섯고 일반 교도들은 그를 생각하고 슯흔 마음을 이기지 못하야 통곡으로 식을 마치엿는데 즉석에서 조위금(同慰金) 으로 연출한 것이 사십여원이더라”


그럼 김인전 선생은 누구인가?


김인전 선생은 1876년 한산군 남하면 지촌리 지사울에서 김규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규배는 남포군수, 수원부사를 역임하였는데 기독교를 일찍부터 수용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입문한 김인전은 한영학교에 재직하면서 평양신학을 재학하였으며 졸업 후 전주 서문밖 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 전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그후 일경에 쫓겨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였으나 과로 쓰러져 1923년 상해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93년 다시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이미 김인전 선생은 국가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서천군에는 그 어떤 것도 그를 추모하는 것이 없었다. 사실 조선일보 1923년 5월 23일자는 우리 서천 사람들을 다소나마 위안하는 신문기사이다. 우리는 김인전 선생을 위하여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참 스승으로 아니 목회자로 또 독립운동가로 삶을 살다 가신 분이다. 우리 서천군에서 김인전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교사로 있던 한영학교 출신들이 1919년 마산 신장 3·1운동을 주도하였기에 더욱 뜻이 깊은 것이다.
한영학교는 1906년 감리교 재단의 지원과 노력으로 오늘날 화양면 와초리 지사울에 세워진 중등학교이다. 설립 당시 교장은 군산 구암 교회 부위렴 선교사였으며 교직원이 5명, 보통과 학생 10명, 고등과 학생 16명이 있었다. 그 후 1916년까지 학업을 계속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일부 학생을 군산 영명학교로 전학시키고 폐교하였다. 당시 한영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던 분이 바로 김인전 선생이다.


선생의 큰 뜻은 한영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실을 우리는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제헌국회 의원으로 초대 체신부 장관을 역임한 윤석구, 전라북도 초대 도지사 김가전, 마산 신장 3·1운동을 주도한  임학규, 이근호 등이 한영학교 출신들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인전 선생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그가 세상을 떠났던 당시에도 서천에서 추도회가 개최될 정도로 그는 범국가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가 꼭 80주년이다. 이제 80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기 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하니 참 반가운 소식이다.


김인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선생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고 연구하여 널리 군민에게 홍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김인전 선생에 대하여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어서 몇몇 사람들의 추모행사로 끝날 염려가 있다. 따라서 김인전 선생에 대한 선양 사업을 교육기관과 연계하여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김인전 선생의 유족, 친지, 제자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그 분들이 동참하는 추모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인전 선생의 대부분의 친지들이 전주에 살고 있으며 그들은 전주 서문밖 교회에 나가고 있다. 또 이미 그들 나름대로 김인전 선생 추모 기념전을 개최한 적이 있어 그분들과 교섭을 한다면 더욱 알찬 추모 행사가 될 것이다.

 

셋째, 김인전 선생에 대한 업적을 평가할 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서천 사람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주 3·1운동을 주도하였거나 임시 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김인전 선생을 추모하고자 하는 것은 서천에서 그의 업적이 뛰어나기에 그를 추모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1906년 서천사람들을 개화시키기 위해서 교육에 헌신 사람이다. 그래서 80 주기를 맞이하여 김인전 선생을 추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