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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 김인전선생의 부음을 접하고도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못한 부인 박관애씨는 이후 47년 사망할 때까지 남편의 묘소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천하한량 2007. 3. 21. 03:57

독립운동가의 대부분 후손들처럼 김인전 선생의 주변 가족들도 선생이 상해로 망명한 이후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경재의 부음을 접하고도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못한 부인 박관애씨는 이후 47년 사망할 때까지 남편의 묘소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언니 마저 48년 떠나보낸 뒤 남은 유일한 직계 혈육이 설영씨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선천성 언어장애자였던 그는 15세 때 헤어진 아버지를 93년 유해로라도 만나 평생의 한을 푼 뒤 94세를 일기로 지난해 작고했다.


전북지사를 지낸 김가전씨가 김인전 선생의 바로 아래 동생. 청렴한 도백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김가전씨 역시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가전씨가 전주고 교장에서 전북지사로 전격 발탁된 데 대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경재를 생각하고 배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난에 찌든 생활에 포한이 진 때문인지 김가전 지사의 아들 김철순씨는 전주고-서울대-독일유학까지 마치고도 학계에 투신하지 않고 사업쪽에 눈을 돌렸지만 사업 수완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민화(民畵) 관련 몇권의 책과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이 분야 권위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경재의 막내 작은 아버지며 「김인전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대전 장로의 부친인 김영배씨가 전주에 정착한 또다른 가족. 김제여고·이리여고·전주북중 교장 등을 역임한 김영배씨 역시 일제 치하 재직하던 멜보린 학교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들 경재 가족들은 독립운동가 집안답게 단 한명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연히 일본 경찰들의 감시의 눈초리에다 가족 모두 변변한 직업 조차 가질 수 없는 형편에서 광복은 더욱 감격적이었다고 김대전 장로는 회고했다.

- 김원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