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백파비의 전면 글자를 지어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 썼음 써서 그 문도에게 주다[作白坡碑面字 書以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書贈其門徒]

천하한량 2007. 3. 9. 20:41
백파비의 전면 글자를 지어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 썼음 써서 그 문도에게 주다[作白坡碑面字 書以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書贈其門徒]

우리나라가 근세에는 율사(律師)의 일종(一宗)이 없었는데 오직 백파만이 이에 해당할 만하므로 때문에 율사로 썼으며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바로 본시 백파의 팔십 년 동안 자수(藉手)하고 착력(着力)한 곳이다.
혹자는 기(機)·용(用)·살(殺)·활(活)로써 지리하고 천착한 바 있다고 하나 이는 절대 그렇지 않다.
무릇 범부(凡夫)를 상대하여 다스리는 자는 어디고 살·활·기·용이 아닌 것 없으니 비록 팔만의 대장(大藏)으로도 한 가지 법이 살·활·기·용의 밖에 벗어난 것은 없다. 특히 사람들이 그 의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살·활·기·용을 들어 백파의 구집(拘執)한 착상(着相)으로 삼는 것은 이야말로 다 하루살이가 큰 나무를 흔드는 격이다. 이 어찌 백파를 안다 할 수 있으랴.
예전에 백파와 더불어 자못 왕복하고 변란(辨難)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곧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한 곳은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아는 것이니 아무리 만 가지로 입이 닳게 말한다 해도 사람들이 다 해오(解悟)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하면 다시 사(師)를 일으켜 와서 서로 마주앉아 한번 웃을 수 있으리오.
지금 백파의 비면(碑面) 글자를 지음에 있어 만약 대기대용의 한 구절을 대서(大書)로 특서(特書)하지 않는다면 족히 백파의 비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써서 설두(雪竇)·백암(白巖) 여러 문도(門徒)에게 보이는 바이다. 찬(贊)에 이르되,
가난은 송곳 꽂을 땅이 없으나 / 貧無貞錐
기개는 수미산을 누를 만하네 / 氣壓須彌
부모 섬김을 부처 섬기듯 하니 / 事親如事佛
가풍이 가장 진실도 하도다 / 家風最眞實
그 이름 긍선이라 일렀으니 / 厥名兮亘璇
전전한다 말할 수 없도다 / 不可說轉轉

[주D-001]설두(雪竇) : 이름은 유형(有炯), 초명은 봉기(奉琪), 속성은 이씨로 완산인(完山人)이다. 순조(純祖) 갑신년에 전남 옥과현(玉果縣)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영오(穎悟)하여 대략 유전(儒典)을 섭렵하고 19세에 백암산(白巖山) 백양사(白羊寺)에 가서 정관쾌일대사(正觀快逸大師)에게 득도(得道)하였음. 뒤에 제산(諸山)을 두루 돌고 업(業)을 영구산(靈龜山) 법회(法會)에서 마쳤는데 그 법회의 좌주(座主)는 백파였음.
[주D-002]백암(白巖) : 백암도원(白巖道圓)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