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히 앉았노라니 석차(席次)에 한 시종(侍從)이 있어 "어떤 것이 바로 소적(小的)의 진아(眞我)입니까?" 물어온다. 주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바로 나다."라 하자, 종자는 "소적이 어찌 감히 당하오리까." 주인은 "실지이다." 종자는 "만약 그렇다면 주공(主公)은 무엇을 가지고서 나가 되었습니까?" 주인은 "바로 너다." 시자(侍者)가 이해하지 못하자, 주인은 "불법(佛法)이란 평등하여 남이니 나니 귀하니 천하니 옳으니 그르니의 분별이 없느니라." 종자는 "만약 그렇다면 아들 손자를 가지고서 할아비 아비로 불러도 됩니까?" 주인은 "훌륭하도다, 이 물음이여! 일체 중생이 다 환아(幻我)를 고집하기 때문에 효자도 역시 다 환(幻)을 이룬다. 유아(有我)를 고집하기 때문에 효(孝)니 불효(不孝)니 자(慈)니 부자(不慈)니가 있게 되는 것이고, 보살은 무아(無我)를 인하기 때문에 위로 제불(諸佛)과 자력(慈力)이 동일하며 아래로 중생과 더불어 비앙(悲仰)이 동일하다. 조부(祖父)를 효경(孝敬)함에 있어서는 비앙이 동일하고 자손(子孫)을 자애함에 있어서는 자력이 동일하다. 이와 같이 한다면 다만 효자만 있을 뿐이요 불효(不孝) 부자(不慈)를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다. 이를 이름하여 진효(眞孝) 진자(眞慈)라 하는데 곧 이 효자(孝慈)가 진아(眞我)인 것이다."라 했다. 미루어 말하자면 온갖 일, 온갖 이치가 다 그러하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보살의 마음으로써 집을 삼고 여리(如理)의 수행으로써 가법(家法)을 삼으라." 하였고,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불법은 세간(世間)의 상(相)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하였다. 우물 바닥의 개구리가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 같은 범우(凡愚)들이 석(釋)을 비방하여 "임금도 없고 애비도 없으니 양주(楊朱)·묵적(墨翟)과 같다."느니 하고 있으니, 이는 다 안색(顔色)을 보지 못하는 고론(瞽論)이다. 우리 유가(儒家) 성인(聖人)은 세간의 법을 절실하게 말하면서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한 것은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범우(凡愚)들이 공견(空見)에 집착할까 염려한 때문이요, 불씨(佛氏)는 출세간법을 절실하게 말하면서 시(是)와 비(非)를 드물게 말한 것은 세간의 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범우들이 유견(有見)에 집착할까 염려한 것이다. 성(聖)과 불(佛)의 은미한 뜻은 범부의 지식으로는 능히 추측하거나 구필(口筆)로써 능히 보여줄 바가 아니요 오직 증(證)해야만 알게 된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선가(禪家)가 공연스레 유·불의 동이(同異)로써 망령되이 갈등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근일에 백파의 결사문(結社文)에서 말한 것이 나의 말과 부합되는 점이 있으니 선림(禪林) 속에서는 불가불 알아야 한다. [주D-001]여리(如理) : 여리사(如理師)는 불(佛)의 덕호(德號)임. [주D-002]고론(瞽論) : 《논어(論語)》 계씨(李氏)에 "未見顔色而言 謂之瞽"라 하였음. [주D-003]결사문(結社文) : 백파의 저술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이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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