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관한 그 물(物)은 딴 게 아니라 곧 명덕(明德)이요 신민(新民)이다. 인의(仁義) 도덕(道德)은 다 명덕에 속한 일이요, 예악(禮樂) 형정(刑政)은 다 신민에 속한 일이다. 한자(韓子)의 이 글은 사람과 더불어 근원과 끝을 거스르고 사무쳐 그 실(實)을 다하자는 것이다. 한(漢)으로부터 이후로 당(唐)의 초기에 이르러는 학을 하는 자들이 많이 광박(廣博)에만 치달리고 그 근본은 궁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의 도덕의 실상이 왕왕 상실되었다. 그러나 인의는 가르칠 수 있지만 도덕은 이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도와 덕은 허위(虛位)가 된다."라고 말한 것이며 오직 그것이 허위가 되기 때문에 도는 근원을 거스르지 않으면 밝혀지지 못하는 것이며 그 "박애(博愛)를 인(仁)이라 이른다." 한 것은 오로지 인의 용(用)을 들어 말한 것이요 상하와 표리를 들어 말한 것은 아니다. 한·진(漢晉) 이래로 학자들이 받들고 스승 삼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었고 공용(功用) 또한 핵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이 어찌 일단(一端)일 따름이겠는가. 말이란 진실로 각기 해당이 있는 것이다." 한 것이다. 이러므로 성경(聖經)을 술하는 문은 격치에 미치지 않았으니 대개 전편(全篇)의 실제가 격치(格致)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의 도덕의 지(旨)와 예악 형정의 의(義)로부터 궁실(宮室)·의복(衣服)·속미(粟米)·사마(絲麻)에 이르러서는 가위 격치의 용을 다했다 할 것이니 격치란 몸과 일로써 체험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를 안다면 한자의 이 글이 격치의 공에 대하여 생각이 반을 넘은 것이다. 더구나 글을 만드는 법은 허와 실이 상승(相乘)하므로 역시 다시 격치를 끌어들여 정위(正位)를 차지하게 하지는 않은 것이니 어찌 이로써 이 글의 의문을 삼을 수 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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