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호봉에게 써서 보이다[書示虎峯]

천하한량 2007. 3. 9. 20:42
호봉에게 써서 보이다[書示虎峯]

"수보리(須菩提)야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항하사(恒河沙) 같이 많은 제몸으로 보시(布施)를 하고 저렇듯 한량없는 백천억겁에도 몸으로써 보시한다. 만약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마음에 믿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이 저보다 낫다. 더구나 서사(書寫)에 있어서랴." 했는데 이는 바로 《금강반야경》에서 여래가 이미 증명한 것인데 지금 호봉이 손수 《화엄경》팔십 권을 써 냈으니 그 복이 의당 어떻겠는가.
근일의 선림(禪林) 속에는 다 참선을 구실 삼아 혹은 칠불암(七佛庵) 아자방(亞字房) 안에서 입을 다물고 말이 없는 표본[榜樣]을 지으며 이십 년 삼십 년을 지내고 무자(無字)의 화두(話頭)백수자(柏樹子)의 공안은 다 이 흑산 귀굴(黑山鬼窟)에 타락하고 말 따름이며, 호공의 서사한 공덕이 바로 곧 선의 제일의로 불의 선증(先證)이 이미 이와 같이 또렷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모르고 있으니, 대혜(大慧)를 일으켜 와서 묘체(妙諦)와 진전(眞詮)으로 깨우치지 못하여 천하 만세의 아손배(兒孫輩)들을 그르치면서도 끝내 회관(回觀) 반조(返照)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승련(勝蓮) 노인은 강상(江上) 사각(寺閣) 중에서 써서 호공에게 보이다.

[주D-001]수보리(須菩提) : 석가모니의 제자이다. 여기서 인용한 말은 《금강경(金剛經)》에 있다.
[주D-002]항하사(恒河沙) : 약칭은 항사(恒沙)인데 항하 모래의 수효로서 물(物)의 많음을 비유한 것임.
[주D-003]무자(無字)의 화두(話頭) : 공안(公案). 승(僧)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구자(狗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없는가?" 하자, “없다."고 대답했다. 이를 조주의 무자라고 칭하여 선가(禪家)의 공안이 되었음.
[주D-004]백수자(柏樹子)의 공안 : 제4권 주 3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