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운구에게 보이다[示雲句]

천하한량 2007. 3. 9. 20:42
운구에게 보이다[示雲句]

제일기(第一機)가 바로 제이기(第二機)라는 것은 월천화상(月泉和尙)이 여종을 부인으로 삼는다는 것이요, 제일기가 바로 제이기가 아니라는 것은 활거화상(豁渠和尙)이 제이월(第二月)이 천상(天上)에 있다는 것이다.
여종이 부인이 된 것은 본시 양흔(羊欣)의 글씨요 제이월이 천상에 있다는 것은 바로 당(唐)에서 모(摹)한 진첩(晉帖) 십이 부(部)인데 곧 양흔의 글씨이다.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것은 바로 당에서 모한 진첩인데 전삼(前三)과 후삼(後三)은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
어처구니 없다 《오처경(吾妻竟)》은 칠등(七藤)에다 팔갈(八葛)이로세. 다만 본 것으로부터 보고 보니 어찌 낭아게(狼牙偈)를 알리오. 가소롭다 심행(心行)의 사라짐이여 제일극(第一極)의 십만팔천 리가 아닌 것을.
금강의 산매에 참하고 / 參金剛三昧
낭아의 한 인을 가졌네 / 持狼牙一印
운구는 곧 구름에서 보니 / 雲句卽雲見
보다 더 큼이 없는 정상안일레 / 摩醢頂上眼
홀로 높은 봉 마루에 앉으니 / 獨坐高峯頂
수레와 말은 내왕이 하나 없네 / 輪蹄絶往還
가련토다 한 쌍의 발은 / 可憐一雙足
일찍이 인간에 가지 않았네 / 會不到人間
그림의 이치가 선(禪)과 통하는 것은 왕마힐(王摩詰) 같은 이나 그림이 삼매(三眛)에 들어간 것은 노능가(盧棱伽)·거연(巨然)·관휴(貫休) 같은 무리들이 다 유희(遊戲)에 신이 통하였다. 그 결(訣)에 "길은 끊기려다 끊기지 아니하고 물은 흐르려다 흐르지 않는다."라 한 것은 바로 선지(禪旨)의 오묘(奧妙)이며 "걸음이 물이 막진 곳에 이르자 앉아서 구름이 일 때를 보네"라는 한 글귀에 이르러는 또 지경이 신과 더불어 융화되어 시리(詩理)·화리(畫理)·선리(禪理)가 머리머리 어울려 있으며 화엄누각(華嚴樓閣)이 한 손가락을 퉁기어 솟아나고 해인(海印)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도 그림의 이치가 호현(互現)이 아님이 없다.

[주D-001]여종을……것이요 : 원앙(袁昂)의 서평(書評)에 "양흔(羊欣)의 글씨는 마치 대가(大家)의 여종이 부인이 된 것과 같아서 비록 그 자리에 처해 있지만 거지(擧止)가 수삽(羞澁)하여 마침내 참과 같지 않다." 하였음. 그래서 세상이 모의(摸擬)가 심히 같지 않음을 들어 비학부인(婢學婦人)이라 이름.
[주D-002]제이월(第二月) : 눈이 병든 사람. 이 제이월을 보는 것으로서 물체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것에 비유한 것임. 《원각경(圓覺經)》에 "妄認四大 爲自身相 六麤緣影 爲自心相 譬如彼病目 見空中華及第二月"이라 하였음.
[주D-003]《오처경(吾妻竟)》 : 서명인데 일본 구사(舊史)로 동감(東鑑)이라고도 한다. 모두 52권인데 작자의 성명은 미상이다. 주이준(朱彝尊)의 오처경발(吾妻竟跋)에 보임.
[주D-004]노능가(盧楞伽) : 육조(六祖) 혜능(慧能)을 말함.
[주D-005]거연(巨然) : 송승(宋僧)인데 산수화에 능하여 묘경(妙境)에 이르렀음.
[주D-006]관휴(貫休) : 당승(唐僧)인데 자는 덕은(德隱), 속성은 강(姜)씨로 난계인(蘭谿人)이다. 7세에 출가하여 시를 잘하고 서화에 능하였다. 일찍이 지은 글귀 중에 "一甁一鉢垂垂老 萬水千山得得來"가 있어 사람들이 득득화상(得得和尙)이라 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