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여성전이 그린 매란국죽의 족자에 제하다[題呂星田畫梅蘭菊竹幀]

천하한량 2007. 3. 9. 18:35
여성전이 그린 매란국죽의 족자에 제하다[題呂星田畫梅蘭菊竹幀]

오난설(吳蘭雪)이 수장한 왕원장(王元章)의 묵매(墨梅) 한 폭에는 소재(蘇齋) 이하 여러 명석(名碩)들의 제증(題證)이 매우 많다. 성전(星田)이 그린 것은 그 뜻을 의방했다.
전 시랑(錢侍郞 택석(擇石)을 말함)의 화란(畫蘭)은 근세에서 종(宗)으로 여기거니와 신의 경지에 들어가서 서가(書家)의 유석암과 더불어 병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자고의 필필(筆筆)이 왼편으로 나간 것과 조구파(趙鷗波 조맹부(趙孟頫)의 호)의 삼전(三轉)의 묘로써 진결(眞訣)과 비체(祕諦)를 삼은 것이다.
근일에 양국(洋菊)이 중국에 들어온 것만 쳐도 백 수십 종이 된다. 화가들이 흔히 큰 화판(花瓣)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동리(東籬)의 지취를 잃지 않았다.
장포산(張浦山)제일여(諸日如)의 죽을 들어 잎잎이 균등하여 변할 줄을 모른다 했는데 진실로 지언(至言)이다. 이 죽은 홀로 누습(陋習)을 벗어났다 하겠는데 일찍이 임이선(林以善)의 죽을 보니 역시 이와 같았다. 성전이 반드시 임을 배운 것은 아니니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이처럼 인(印)을 합친 듯이 된 것은 역시 이태동잠(異苔同岑)의 묘인가.

[주D-001]오난설(吳蘭雪) : 청 강성(江西) 동향인(東鄕人)으로 이름은 숭량(嵩梁), 자는 난설, 호는 연화박사(蓮花博士), 일호는 석계노어(石溪老漁)이다. 관(官)은 내각중서(內閣中書)로 시재(詩才)는 황경인(黃景仁)과 대등하였으며 서실은 향소산관(香蘇山館)이라 일렀음. 저술로는 《향소산관집》이 있음.
[주D-002]왕원장(王元章) : 이름은 면(冕)인데 명(明) 제기인(諸曁人)으로 회계(會稽)에 살았으며 호는 노촌(老村), 일호는 자석산농(煮石山農)임. 어려서 가난하여 염소를 쳤으며 죽석(竹石)을 잘 그리고 더욱 묵매(墨梅)에 공하여 양보지(楊補之)에 내리지 아니하니, 구하는 자가 마구 밀려들어서 화폭의 장단(長短)으로써 득미(得米)의 차이를 두었다. 《明史 王冕傳》
[주D-003]동리(東籬)의 지취 : 도잠(陶潛)의 시에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의 구가 있으므로 나온 말임.
[주D-004]장포산(張浦山) : 청 수수인(秀水人)으로 이름은 경(庚), 원명은 도(燾), 자는 보삼(溥三)인데 뒤에 포산으로 바꾸어 호를 하였음. 어렸을 적에 과거의 업을 하지 아니하고 시와 고문(古文)에 사력(肆力)하였으며 서(書)에 공하고 그림을 잘 그렸다. 산수는 동(董)·거(巨)·예(倪)·황(黃)의 실(室)에 들어 자성일가(自成一家)하였음. 저술로는 《강서재시문집(强恕齋詩文集)》이 있음.
[주D-005]제일여(諸日如) : 청 인화인(仁和人)으로 이름은 승(昇), 자는 일여(日如), 호는 희암(曦庵)인데 난(蘭)·죽(竹)·석(石)을 잘 그렸으며, 그 중에도 설죽(雪竹)이 더욱 아름다웠음. 《國朝畫徵錄》
[주D-006]임이선(林以善) : 명 광동인(廣東人)으로 이름은 양(良), 자는 이선인데 천순(天順) 중에 내정(內廷)에 공봉(供奉)하여 화조(花鳥)·난죽(蘭竹)에 공(工)하여 사람이 능히 미치는 자가 없었음. 《明畫錄》·《無聲詩史》
[주D-007]이태동잠(異苔同岑) : 뜻을 함께 하는 친구를 이른 것임. 곽박(郭璞)의 증온교시(贈溫嶠詩)에 "人亦有言 松竹有林 及爾臭味 異苔同岑"이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