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천송 금강경 뒤에 제하다[題川頌金剛經後]

천하한량 2007. 3. 9. 18:28
천송 금강경 뒤에 제하다[題川頌金剛經後]

나는 묘향산에 들어가면서 이 경(經)과 개원(開元) 연간의 고경(古竟)을 산에 들어가는 호신의 부적(符籍)으로 삼았다.
성사(星師)는 그 구장(舊藏)인 정국옹(鄭菊翁)의 합주본(合注本)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그 뜻은 나더러 아울러 가지고 가게 하려는 것이니 또한 금강을 돌려 도화(度化)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본으로써 바꾸어 옥대(玉帶)의 고사에 대비하였으니 양존(兩存)하는 것이 해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본은 고려 시대의 구판(舊板)으로 역시 드물게 있는 법보(法寶)이니 길이 산문(山門)을 진수(鎭守)할 만한 것이다.
국옹의 주는 좁고 누한 것이 많아서 결코 국옹의 수필(手筆)이 아니라 생각된다. 또 천로(川老)를 들어 촉(蜀) 나라 사람이라 하여 천(川) 자를 부회하여 말했는데 천은 바로 곤산(崑山) 사람이요 천촉(川蜀)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천로는 적씨(狄氏)의 아들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삼(狄三)이라 불렀고 뒤에 법명을 도천(道川)이라 했는데 삼횡천직(三橫川直)의 의를 취한 것이다. 어찌 국옹이 모르고서 이와 같이 망정(妄訂)을 했겠는가. 또 그 발문(跋文)이 주본(注本)에 대한 한 마디 말도 없으니 이로써도 그 수필이 아님을 증명할 만하다.
함허(涵虛)의 설의(說義)는 대략 국옹을 따라 흉내를 냈으나 전혀 파악한 곳이 없어 이미 국옹의 의를 잃었는데 하물며 본 뜻에서랴. 지금 선림(禪林)에서 받들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으니, 증개(曾開)의 이른바 "애닯다, 할려(瞎驢)여." 하는 말과 불행히도 가깝다.

[주D-001]고경(古竟) : 곧 고경(古鏡)인데, 옛 글자는 경(鏡)과 경(竟)이 서로 통하였음.
[주D-002]옥대(玉帶)의 고사 : 《돈재문화(遯齋聞話)》에 "불인(佛印)의 이름은 요원(了元)인데 금산사(金山寺)에 주거하였다. 소동파가 방장(方丈)에 들어가서 농담으로 말하기를 '화상(和尙)의 사대(四大)를 빌려 선상(禪床)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자, 사(師)가 말하기를 '산승(山僧)도 일전어(一轉語)가 있으니 내한(內翰)은 곧 마땅히 소청(所請)을 따라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옥대(玉帶)를 풀어놓아 산문(山門)을 지키게 해주기를 원한다.' 하였다. 동파가 옥대를 풀어 궤상(几床)에 두니, 사가 말하기를 '사대는 본시 공(空)이요 오온(五蘊)은 있지 않은데 내한(內翰)은 어느 곳에서 앉고 싶은가?' 하였다." 하였음.
[주D-003]할려(瞎驢) : 불가어로서 지극히 어리석은 자를 비유한 것임. 《임제록 서(臨濟錄序)》에 "正法誰傳 瞎驢邊滅"이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