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영모암 편액 후면의 제지에 대한 발[永慕庵扁背題識跋]

천하한량 2007. 3. 9. 18:27
영모암 편액 후면의 제지에 대한 발[永慕庵扁背題識跋]

이는 우리 증조고께서 영모암 편배(永慕庵扁背)에 제지(題識)하신 수묵(手墨)이다. 산 아래의 일은 우리 집에서 전관해 온 지가 팔구십 년이었으나 불초 후생은 다만 무인년 이후의 사리(事理)가 혹 그랬으리라고만 알았고 고조부의 유훈이 계셔 증조고께서 막중한 부탁을 받으신 것은 알지 못했는데 지금 편배의 제지로 인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영훈(楹訓)과 정고(庭誥)가 거의 묻혀 깜깜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난표봉박(鸞飄鳳泊)의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깨닫게 된 것은 자못 조상의 영령이 이를 개발해 주신 것이어서 몸이 오싹하여 두렵고 떨리며 이마의 땀이 더욱 솟으니 불초의 죄상은 면할 길이 없을 것 같다.
하물며 해상(海上)에 귀양살이하는 몸이 되어 오래도록 첨전(瞻展)을 궐(闕)함에 있어서랴! 감히 편배의 제지를 모(摹)하여 또렷이 새겨 높이 걸며 아울러 암(庵)을 중수(重修)하여 새롭게 하도록 하였다.
무릇 상재(桑梓)에 대한 공경은 사람마다 동일한 바이지만 오직 우리 자자손손은 대대로 고계(告戒)하여 남보다 한 등(等)을 더한다면 전규(前規)를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우러러 선지(先志)를 추술(追述)하는 일이 될 것이며 혹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는 바 있다면 증조고의 제지하신 수묵이 해와 달같이 굽어보실 것이다. 암을 세운 뒤 팔십구 년 임인(壬寅) 월일에 증손 정희 삼가 씀

[주D-001]상재(桑梓) : 선향(先鄕)을 칭하는 말임.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반(小弁)에 "維桑與梓 必恭敬止"에서 나온 것인데, 대개 옛사람은 주택(住宅)의 후원에 반드시 상재를 심었다. 상은 양잠(養蠶)하여 부모의 옷을 마련하기 위함이고 재는 부모의 관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