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연산뢰기(硏山瀨記)

천하한량 2007. 3. 9. 18:26
연산뢰기(硏山瀨記)

도천(陶泉)은 고을 서쪽 시오리 지점에 있는데, 크고 작은 여나무 덩이의 돌이 섬돌 놓이듯 성가퀴마냥 연대고 엉클어져 마치 미가(米家)의 연산도(硏山圖)와 같다. 그 아래는 샘이 흘러 비단결같이 곱게 돌아 쏟아지니 새파랗고 조촐하여 함부로 침도 못 뱉을 지경이라 굳이 비교하자면 대치(大癡)의 반폭(半幅)과 운림(雲林)의 소경(小景)이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하겠으며, 다른 송설(松雪) 이하의 습기(習氣) 같은 것은 한 점도 미치지 않았으니 한 치 한 자를 벗어나지 않는 사이에서 천연으로 격이 어울린 것이다.
대개 신산(神山)의 신령하고 맑고 곱고 빼어난 기운이 모두 합쳐 여기에다 쏟았으나 역시 무작정 횡잡(橫雜)하게 휘두르고 요란스레 발라놓은 것이 아니요 이를테면 천공(天工)의 붓 끝과 같아 먹 아끼기를 금과 같이 하였으며, 또 공작(孔雀) 꼬리의 넘치는 벽색(碧色), 나비 날개의 부스러진 금과 같이 약간 점철(點綴)만 하였으니, 그 머금은 볕과 저축한 정(精)을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로써 보여 주고 함부로 풀어놓고자 아니한 것이 마침내 이와 같음에랴. 비로소 치로(癡老)와 우선( 迂仙 운림(雲林)을 이름)이 선뜻 반폭과 소경으로써 흔히 정취를 고담(枯淡)하고 황한(荒寒)한 지경에 부쳐 마치려 하면서도 마치지 못한 뜻을 내포한 것은 자못 이와 동일한 묘체(妙諦)요 비부(秘符)임을 알겠으니, 세상 사람들이 의당 모를 수밖에 없으리라.
무릇 어느 경(境)을 막론하고 면(面)과 배(背)가 있는데 사람들은 경의 배에서만 노닐고 경의 면에서 탐승(探勝)할 줄은 모르니 역시 한탄스러운 일이다.
나는 여기를 지나보니 돌은 다 여의(如意)요 샘은 반드시 공덕(功德)이라, 선재(善才)가 참여한 석천(石泉)에 비교하여 나을 뿐만이 아니다. 샘이 은어(銀魚)를 생산하여 관·민들은 단지 은어잡이로 낙을 삼기에 이 두어 마디 말을 써서 마을 사람 장계룡(張啓龍)에게 주어 오늘의 기특한 인연을 기록함으로써 다른 때의 고사(故事)에 대비하는 바이며 사공(司空)의 시품(詩品)으로써 샘의 찬(贊)을 짓는다. 찬에 이르기를,
다니거나 그치거나 / 載行載止
비고 푸르러 유유하이 / 空碧悠悠
신이 절로 솟아나서
예롭고도 기이하니 / 神出古異
거두지도 못 거둘레
담담한 그 맛일랑 / 淡不可收

[주D-001]미가(米家)의 연산도(硏山圖) : 송 미불(米芾)이 산수(山水)를 잘하여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는데 아들 우인(友仁)이 능히 가학(家學)을 전하여 소작(所作)한 산수가 초초하면서도 참뜻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세속이 그 화파(畫派)를 미가산(米家山)이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