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에게 주다[與草衣][33] |
세밑의 한 서한은 해가 지나도 오히려 소매 속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 또 봄바람이 문득문득 불어와서 하마 화조(花朝)에 미쳤으니 흘러가는 세월은 법계도 역시 마찬가지인가.
나무는 우줄우줄 번영으로 향하고 샘물은 자질자질 흐르기 시작하는데 선송은 멈추지 않으며 단포는 가볍고 편안한가. 그립고 또 그리워요.
천한 몸은 한결같이 나무와 돌인 양 굳고 무딘데 상기도 강상에 머물러 있다오.
금월 십이일에 또 계수의 상을 당하니 정리가 너무도 슬퍼서 보지 않은 것이 나은 것만 같지 못하나 어찌하겠소.
지난날에 《법원주림(法苑珠林)》을 들어 말한 바 있거니와 뒤미쳐 또 《종경전부(宗鏡全部)》 일백 권을 얻었으니 이것도 한 가지 문자의 인연인데 사(師)와 더불어 함께 고증할 수 없어 한이외다.
또 한 가지 들려줄 만한 일이 있으니, 옹정(雍正) 연간에 종풍(宗風)이 크게 현창하여 역대 조사(祖師)의 어록을 고정(考正)하는데 대혜(大慧)의 글 같은 것은 진종(眞宗)에 합하지 못하고 투관(透關)의 안목이 없다고 여겨 대개는 녹(錄)에 넣어 두지 않았으며 또 오종(五宗)이 파가 갈림으로써 문호가 갈등이 생겼다 해서 크게 간별(揀別)을 더하여 심지어 위로부터 조서(詔書)까지 내려서 천하의 선림(禪林)이 봉행하고 유통하여 두 말이 없게 되었는데 한모퉁이 동방은 모두 다 이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망념광참(妄拈狂參)을 하고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연민(憐愍)을 느끼게 할 따름일세.
내가 평소에 대혜를 마음에 마땅치 않게 여겼는데 지금 이 실증(實證)을 얻게 되었으니 이 눈도 역시 그르치지 않는 데가 있는가 보오.
천리가 멀고 먼데 생각나는 대로 말을 못다 하니 자못 서글프기만 하네.
마침 가는 인편을 만나 대략 알리며 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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