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읍내 인편으로부터 범함(梵椷)을 받게 되니 산중이나 강상(江上)은 역시 다른 세상이 아니고 한 하늘 밑으로 모두 침개(鍼芥)가 서로 끄는 사이에 있다 하겠는데 어찌하여 지난날은 그렇게도 동떨어졌는지요. 세밑의 한 추위는 벼룻물을 얼리고 다순 술을 얼릴 만하나 남방에는 들판에도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또 더구나 초암의 속이겠소. 근자의 상황은 많은 복을 입어 단포와 향등이 한결같이 가볍고 편안한지요. 염원이 간절하외다. 이 몸은 연달아 강상에 있으니 설을 지내고 봄이 오면 다시 호남에 갈 신과 막대를 매만질 듯하오. 다품(茶品)은 이 갈증난 폐를 적셔 주겠으나 다만 얼마 되지 않으며 또 훈납(熏衲)과도 일찍이 차에 대한 약속을 정녕히 한 바 있는데 왜 하나의 창(槍) 하나의 기(旂)도 보내주지 않으니 한탄스런 일이로세. 부디 이 뜻을 그에게 전달하고 그 차바구니를 뒤져내어 봄에 오는 인편에 보내주면 대단히 좋겠네. 글씨 쓰기도 어렵거니와 인편도 바빠서 이만 불식(不式).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도무지 먼 사람 생각은 아니하는 건가. 삼십 대의 봉(棒)을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려. 새 책력은 부쳐 보내니 대밭 속의 일월(日月)로 알고서 보오. 호의(縞衣)는 무양하며 자흔(自欣)과 향훈(向熏)도 역시 편안한지요. 각각 책력을 보내니 나누어 전해주고 또한 이 먼 마음을 말해 주기 바라오. 김세신(金世臣)에게도 책력이 미쳐가도록 해주오.[주D-001]하나의‥‥‥기(旂) : 창·기는 갓 움튼 다아(茶芽)를 이름. 《피서록(避暑錄)》에 "차의 극 품(極品)은 오직 쌍정(雙井)·고저(顧渚)인데, 그 첫 움이 작설(雀舌)과 같은 것은 창(槍)이라 이르고 조금 벌어져 잎이 벌어진 것은 기(旂)라 이름. 구양수(歐陽脩) 시에 "共約試春芽 槍旂幾時綠"의 구가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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