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에게 주다[與草衣][27] |
지난번에 한 장의 편지와 아울러 주부자(朱夫子 주희(朱熹))의 글씨 목숨 수 자(字) 및 시헌력(時憲曆)을 동봉하여 보냈는데 생각지 않게 배가 바람에 멀리 표류되었다니 편지랑 물건이 전달되지 못한 것은 비록 가석(可惜)한 일이지만 미처 이를 헤아리기도 전에 너무나 놀라서 상기도 정신이 안정되지 않는구려. 배 안의 사람들은 마침내 《관음경(觀音經)》한 구절도 읽을 줄 아는 자가 없었더란 말인가.
봄 일이 날로 화창한데 선안이 길하고 상서로우며 무슨 좋은 일이 서로 들려줄 만한 게 있는지요? 하면(河面)도 능히 주름지지 않는지요?
이 몸은 더욱더 퇴방(頹放)만 하니 산중의 법려(法侶)를 향하여 이야기하기가 자못 부끄러워 낯이 붉을 지경이라오.
날마다 허치에게 시달림을 받아 이 병든 눈과 이 병든 팔을 애써 견디어 가며 만들어 놓은 병(屛)과 첩(帖)이 상자에 차고 바구니에 넘치는데 이는 다 그 그림 빚을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이 대신 갚게 하니 도리어 한번 웃을 뿐이외다. 나머지는 뒤로 미루고 불구(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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