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함성중에게 주다[與咸聖中]

천하한량 2007. 3. 9. 04:53
함성중에게 주다[與咸聖中]

귀신고(鬼神考)의 설은 극히 정밀하고 자상하나 다만 정기(精氣)와 유혼(遊魂)에 있어 처음으로 화(化)한 것을 백(魄)이라 이르고 백(魄)의 양(陽)이 혼(魂)이 된다고 했는데 이는 갓 생기는 배태(胚胎)로 나아가 말한 것이며 이에 대하여 비명(胐明) 선생이 이미 정론을 내린 바 있거니와 ‘백의 양이 혼이 된다.’는 것은 이미 음과 양의 분속(分屬)을 들어 말한 것이며 혼은 양이요 백은 음이라는 것도 또한 옛 해석이니 지금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외다.
혼은 양이요 백은 음이라 한 것도 또한 혼·백을 하나로 하여 음·양을 일치하게 하는 것에 방해되지 않으며 백은 비록 단독적인 음(陰)만으로써 말할 수는 없으나 백의 양이 혼이 되면 백의 음은 또한 어느 곳에서 본단 말이오.
귀성(鬼盛)·신성(神盛)이란 성(盛)의 글자는 풀이한 것이 견강(牽强)하여 아무래도 천착을 면하지 못할 성싶소. 경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말이 잘 가지 않는 곳이라 해서 딴 것을 끌어다 내게로 연관시켜 서로 어울리게 하려는 것은 부당한 것이외다.
대저 정기·유혼·귀신의 정상 등의 구절은 다 《역(易)》 계사(繫辭)에서 나온 것이니 이는 마땅히 《역》에서 찾아 보는 것이 요법이며 하나라도 함부로 언급한 바 있다면 문득 본뜻과 더불어 서로 어긋나게 되는데 송·원(宋元) 이후의 경 풀이한 것을 보면 서에서 잡아오고 동에서 끌어와서 기필 귀일(歸一)을 요한 것은 역시 하나의 고황(膏肓)이오.
이 때문에 경을 고치고 훈고를 고쳐서 손이 가지 않은 데가 없었던 거지요. 비록 면전에서 억세게 말하여 사람을 향해 유쾌함을 내보이고자 했지만 세밀히 그 근원을 연구하고 돌이켜 찾아보면 남원(南轅)에 북철(北轍)이 아닌 것 없으니 마땅히 많이 듣고 또 의심나는 것은 빼놓으며 또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할 거외다.
심의고(深衣考)에 대한 설은 비록 강신수(江愼修) 선생 같은 정밀 해박으로도 능히 적확하지는 못하며 그 설 또한 강씨 자신이 만든 의제(衣制)에 지나지 않으니 약간 예와 가깝다는 이로도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보다 아래에 있는 자이겠소.
옛사람의 기용(器用) 복식(服飾)의 제도는 천 년이 지나간 오늘에 있어 어떻게 하나하나 공중에 매달고 억측하여 눈으로 본 것 같이 한단 말입니까?
운회(云回)의 부(罍)와 정신(丁辛)의 정(鼎)은 지금 그 기(器)가 없는데 어떻게 함부로 모나니 둥그니 말한단 말이오. 이는 왕숙(王肅)이 망녕되이 우형(牛形)의 기(器)를 가지고서 희준(犧尊) 파사(婆沙)의 의(義)를 바꾸려 한다면 그게 가한 일이겠소.
지금 보존된 상·주(商周)의 고기(古器)에는 간혹 선문(蟬文)을 지닌 것이 있는데 이것을 ‘선정(蟬鼎)’이라 이른다면 되겠소.
옛사람의 남긴 모범이 영락하여 거의 다 없어졌는데 하나하나의 고훈(誥訓)은 다 경사(經師)의 가법이니 낡은 것을 간수하고 빠진 것을 안고 조심하고 경계하기를 목을 잡은 듯이 가득 찬 물그릇을 잡은 듯이 하여 오직 실수하여 떨어뜨릴까 두려워해야 할 터인데 어떻게 마멸 혼란에 빠지게 해서야 되겠소. 원컨대 동지들과 널리 하여 십분 힘써 주기 바라오.

[주D-001]유혼(遊魂) : 《역(易)》계사(繫辭)에 "정기(精氣)는 물(物)이 되고 유혼은 변(變)이 된다." 하였고, 그 소(疏)에 "물(物)이 이미 적취(積聚)의 극에 달하면 분단이 된다. 장차 흩어질 때에 정혼(精魂)이 부유(浮遊)하여 물형(物形)을 버리고 떠나 개변(改變)이 된다. 개변이 되면 곧 생(生)이 사(死)가 되고 성(成)이 변해 패(敗)가 되며 혹은 내사(來死)의 사이에 변하여 이류(異類)가 된다." 하였음.
[주D-002]배태(胚胎) : 물(物)의 갓 생김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또한 일의 시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본초(本草)》에 "胚胎將兆"라 하였음.
[주D-003]비명(朏明) : 청(淸) 나라 호위(胡渭)의 자임.
[주D-004]고황(膏肓) : 인체의 한 부위로서 심격(心膈)의 사이에 있음. 《좌전(左傳)》성공(成公) 10년에 "疾不可爲也 在肓之上膏之下"라는 대문이 있으므로 지금 병이 심한 것을 일러 병이 고황에 들어 갔다고 함.
[주D-005]남원(南轅)에 북철(北轍) : 역(逆)으로 가서 가까움을 구하고자 하면 갈수록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이름. 《국책(國策)》위책(魏策)에 "猶之楚而北行也"라는 대문이 있는데, 곧 이 뜻임.
[주D-006]심의고(深衣考) : 심의는 고대의 제복(制服)인데 의(衣)와 상(裳)이 서로 연하여 몸에 입
[주D-007]강신수(江愼修) : 청(淸) 무원인(婺源人)으로 이름은 영(永) 자는 신수이며, 강희(康熙) 시에 제생(諸生)으로 금고(今古)를 박통(博通)하고 더욱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정심(精深)하여 장년으로부터 늘그막에 이르도록 단황(丹黃)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보산(步算)·종률(鍾律) 성운(聲韻)에 정밀하여 십여 종의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에 드러난 것은《주례의의거요(周禮疑義擧要)》·《향당도고(鄕黨圖考)》·《고운표준 (古韻標準)》등이다. 일찍이 대진(戴震)이 그를 종학(從學)하여 힘을 얻은 것이 많았는데 세상에서 강·대(江戴)라고 칭함.
[주D-008]희준(犧尊) 파사(婆娑) : 제4권 주 1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