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오대산 창렬 에게 주다[與吳大山 昌烈]

천하한량 2007. 3. 9. 04:52
오대산 창렬 에게 주다[與吳大山 昌烈]

하늘가나 땅 모퉁이나 어디고 다 가물거리고 아득만 한데 유독 그대에게만 치우치게 매달리고 매달려 옛 비와 이젯 구름이 모두 마음속에서 녹아지고 굴러가곤 하여 그칠 새가 없다네.
곧 인편을 통해 서한을 받으니 완연히도 봄비 밤등불에 자리를 마주하고 반갑게 정을 논할 때와 같아 더욱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설레게 하네그려.
봄이 지난 뒤로 사이(仕履)가 복되고 편안하며 상평(向平)의 남혼여가(男婚女嫁)도 이미 필했음을 살폈거니와 다만 오악(五嶽)의 참인연은 그대로서 마련할 수 없는 일이니 열 자의 붉은 티끌과 더불어 얽히고 설켜 환경에 따라 은안장에 좋은 말로 기쁨을 누리는 것도 하나의 쾌한 일이며 어찌 꼭 푸른 짚신에 베버선 신고 잔목냉조(殘牧冷曹)의 행동을 해야만 한다던가. 생각하고 생각하여 말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런 곳이라네.
천한 몸은 쇠한 나이 육십에 꽉 찼는데 육 년을 바다에 칩복(蟄伏)하여 이제껏 버티어오니 역시 이상한 일이로세.
연초에 까닭없이 모진 병이 파고 들어 꼭 죽을 줄만 알았는데 무슨 인연인지 되살아나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칠팔십일을 신음하는 동안 원기가 크게 탈진되어 다시 여지가 없네. 게다가 구비(口鼻)의 풍화(風火)는 한결같이 덜함이 없어 하마 삼 년이 되었으니 이는 또 무슨 병이란 말인가.
날마다 코푸는 것을 일로 삼는데 그 굳음이 돌과 같고 입술은 타서 한 점의 윤기도 없으며 눈은 짓물러 눈곱은 너덜너덜하고 사대색신(四大色身)이 하나도 편한 곳이 없으니 이러고서야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지황탕(地黃湯)은 보여준 방문에 의거하여 시험하고 있으나 이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내기 어려울 것 같네.
내 아우의 병세는 근자에 과연 어떠하던가. 천리 밖의 편지가 날아와도 종이에 가득한 것이 모두가 근심 걱정뿐이니 나그네의 가슴이 더욱 촉발되어 스스로 가누기 어려울 지경일세.
정신은 가물거리고 눈은 꺼끄러워 간신히 이만 적네. 불선.

[주D-001]사대색신(四大色身) : 불가의 용어인데 사대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이고 색신은 삼종신(三種身)의 하나이다. 즉 사대오진(四大五塵) 등의 색법(色法)으로부터 이루어진 몸을 색신이라 이름. 오진(五塵)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오경(五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