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오각감 규일 에게 주다[與吳閣監 圭一][1]

천하한량 2007. 3. 9. 04:53
오각감 규일 에게 주다[與吳閣監 圭一][1]

모든 것은 자네 어른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들어있으니 따로 덧붙여 말하지 않겠네. 네 인장과 인니(印泥)는 오히려 가슴속에 이 바다 밖의 비쩍 말라 붙은 신세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겠으니 매우 느꺼웁네.
인각(印刻)은 더욱 나아간 경지를 보겠으니 얼마 안 가서 정목천(程穆倩 청(淸) 정수(程邃)) 하설어(何雪漁 명(明) 하진(何震))의 묘경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매양 양문(陽文)에 대하여 더욱 마음을 써주면 좋겠네.
천리의 밖이라 언어나 문자로는 낱낱이 미칠 수 없으니 극히 답답만 하네. 다시금 완당(阮堂)이란 한 작은 인을 만들어 인편에 보내주었으면 하네. 나머지는 부진.
근일에 자못 무전(繆篆)의 옛법을 깨쳤는데 이것이 바로 인전(印篆)의 비법이로세. 대개 한인(漢印)은 바로 다 무전(繆篆)의 옛식인데 이를 발명한 사람이 없었네. 무전을 모르고서 인을 각하면 비록 종정(鐘鼎)의 옛글자라도 다 제격이 아니라네. 마주 앉아 이 한 안건을 상론할 길이 없어 그대로 하여금 또다시 한 경지에 나아가게 못하는 것이 한이로세.
만약 내가 말을 아니하거나 또 그대에게 전수하지 않는다면 이 한 법은 마침내 알 사람이 없을 것이니 실로 한탄스러운 일이로세. 이는 마음과 입이 서로 대하지 않고서는 문자로 나타낼 수 없으니 말일세. 바닷구름 천리에 기울(奇鬱)하여 김이 솟아 버섯을 이루고 싶을 지경이로세.
요구한 모든 글씨 및 난화(蘭畫)는 그윽이 소망에 맞추어 주고 싶은 생각이나 종이라곤 한 조각도 없으니 혹시 서너 본의 가전(佳箋)을 얻으면 마땅히 힘써 병든 팔을 시험해 보겠네. 두터운 백노지(白露紙) 같은 것도 매우 좋으나 반드시 숙지(熟紙)라야만 쓸 수 있는 거라네. 난화는 여기 온 뒤로 절필하고 하지를 않았네. 그러나 청해온 뜻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주D-001]무전(繆篆) : 《설문(說文)》서(敍)에 "亡新六書 五曰繆篆 所以摸印也"라 하였고, 단주(段注)에는 "인(印)의 대소와 글자의 다소(多小)를 헤아려서 새기는 것을 말한다." 하였음. 무(繆)는 주무(綢繆)의 무로 읽음.
[주D-002]김이……지경이로세 :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樂出虛 蒸生菌"이라는 대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