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김동리 경연 에게 주다[與金東籬 敬淵][3]

천하한량 2007. 3. 9. 04:44
김동리 경연 에게 주다[與金東籬 敬淵][3]

물어 온 《상서》 금문에 대하여 질(秩)은 질(豑)로 되고 광(光)은 광(桄)으로 되고 치홀(治忽)은 칠시영(七始詠)으로 되어 창졸간에는 그 수를 다 셀 수도 없으니 이는 실로 학자가 마땅히 옛것에 넓어야 할 것이며 또한 옛것에 얽매이기를 설상주(薛常州)의 두찬(杜撰)같이 해도 안 되는 것이외다.
어찌 일찍이 친히 고문을 보고서 하나하나 써 내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소. 이는 신사(愼思)·궐의(闕疑)의 교훈이 아니니 옛을 배우는 이는 또 불가불 알아야 할 것이외다.

[주D-001]창졸간에는……없으니 : 《예기(禮記)》유행(儒行)에 "갑자기 세자면 능히 그 수를 마치지 못하고 다 세자면 남겨 두어 사람을 대신시켜도 마칠 수 없다.[遽數之 不能終其物 悉數之 乃留 更僕未可終也]"라 하였음.
[주D-002]설상주(薛常州)의 두찬(杜撰) : 설 상주는 송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계선(季宣), 자는 사룡(士龍)이며 호는 간재(艮齋)인데 일찍이 원개(袁漑)를 섬기게 된 바 원개는 그를 대리사 주부(大理寺主簿)를 삼았다. 외직으로 나가 호주(湖州)를 맡고 곧 상주(常州)로 고쳤는데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학자들은 간재 선생이라 불렀다. 《서고문훈(書古文訓)》·《시성정설(詩性情說)》·《춘추경해지요(春秋經解指要)》·《대학설(大學說)》·《논어소학약설(論語小學約說)》등을 지었는데, 벽잡부정하여 두찬이라는 말을 들었음. 두찬이란 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야객총담(野客叢談)》에 "두묵(杜黙)이 시를 짓는데 많이 율(律)에 어울리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일이 합격되지 못하는 것을 두찬이라 한다."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