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정유산 학연 에게 주다[與丁酉山 學淵]

천하한량 2007. 3. 9. 04:42
정유산 학연 에게 주다[與丁酉山 學淵]

누른 암꿩이 숫놈으로 변하고 벙어리 종(鐘)도 다시 울고 몇 생을 닦고 닦아서야 매화의 골격에 이르렀다오.
사당에 배알할 포홀(袍笏)은 바로 계족산(鷄足山) 중에 있는 하나의 금란가사(金襴袈裟)로서 필경에는 미륵(彌勒)이 세상에 나와 사용하길 기다리는 것이니 물이 지나가면 똘이 이루어지고 과일이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기 마련이라 각각 그 때가 있거늘 사람이 스스로 발광 조급하여 잠시 동안을 참지 못하고 공연스레 갈등을 부리는 게 아니겠소.
근연(巹筵)의 축하는 매양 칠십으로 하고 매양 감역(監役)으로써 하는데, 모르괘라, 선생이 합초(合醮)할 때에 누가 선생을 위해 꼭 이렇게 되라고 잘 빌었습니까. 이 무슨 기험(奇驗)이란 말입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 놀라고 기뻐 절도할 지경이외다.
북방에 있을 적에 보내주신 두 통의 서한은 돌아와서도 소매 속에 품고 있으며 비록 즉시 사(謝)하지는 못했지만 이 마음이 위로 이마를 뚫고 아래로 발밑까지 통하는 것을 어떻게 다 헤아려 주시겠소.
오늘 이후로는 바로 선생이 세상을 다시 사는 새 일월이니 다시 늙었다거니 병들었다거니 칭하는 것은 마땅치 않고 빠른 노와 경쾌한 배로 나는 듯이 왕림하여 새 면목을 옛 늙은이 앞에 나타내주면 어떻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늙은 아우 같은 자는 쇠하고 삭아 여지가 없으나 살아서 옥문(玉門)에 들어온 것만도 다행이외다. 장차 형과 더불어 한번 뵐 양이기에 먼저 쌓이고 쌓인 회포를 펴며 일체는 다 물리쳐 버리오. 머지않아 누옥 속에서 촛불을 켜고 추위를 녹이며 예전 일과 묵은 꿈을 깨뜨리길 믿으며 불비.

[주D-001]누른……변하고 : 《구당서(舊唐書)》호행지(五行志)에 "高宗文明後 天下頻奏雌雉化爲雄"이라 하였음. 기이한 일에 대한 비유임.
[주D-002]벙어리……울고 : 당 태종(唐太宗) 시대에 예악을 창제하여 장문수(張文收)와 조 효손(祖孝孫)을 불러 아악(雅樂)을 참정(參定)하게 하였는데, 태상(太常)에 고종(古鐘) 12개가 있어 근대에는 그 중 7개만 사용하고 나머지 5개는 쓰지 아니하여 세상에서는 아종(啞鐘)이라 불렀다. 그것을 능히 통하는 자가 없었는데 장문수가 율(律)을 불어 조화하니 소리가 다 메아리쳐 사람들이 모두 그 묘(妙)를 탄복하였다고 한다. 《舊唐書》그 실상이 있으면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뜻임.
[주D-003]몇 생을……이르렀다오 : 송말(宋末) 사방득(謝枋得)은 익양인(弋陽人)으로 자는 군직(君直)이다. 덕우(德祐) 초에 원병(元兵)이 강동(江東)을 침략하므로 방득은 신주(信州)를 맡아 맞아 싸우다가 화살이 다하여 패배하여 변성명하고 산중으로 들어갔다. 원 나라 초기에 붙잡혀 북으로 가서 원도(元都)에 당도하자, 통곡하여 먹지 아니하고 죽으니 세상에서는 첩산 선생(疊山先生)이라 일컬었다. 그의 무이산중시(武夷山中詩)에 "十年無
[주D-004]계족산(鷄足山) : 산의 이름인데 중국 운남(雲南) 빈천현(賓川縣)에 있는데, 일정(一頂)에 삼족(三足)이므로 이름이 된 것임. 산정에는 가섭(迦葉)의 석문동천(石門洞天)이 있는데 세속에서 전하기를, 바로 불제자(佛弟子) 음광가섭(飮光迦葉)이 불의(佛衣)를 지키고 미륵을 기다린 곳이라고 함.
[주D-005]금란가사(金襴袈裟) : 금루(金縷)로 짜서 만든 가사인데 금색의(金色衣)라고도 함. 불(佛)이 열반하려 할 때에 지난날 이모(姨母)에게서 받은 금란가사와 법장(法藏)을 다 대가섭(大迦葉)에게 넘겼는데, 가섭은 즉시 그 뜻을 받들어 정법(正法)을 주지(主指)하고 결집(結集)을 마쳤다. 제20년에 이르러 스스로 열반하고자 하여 마침내 계족산에 올라 정상 삼봉(三峯) 사이에서 불(불)의 가사를 받들고 삼매(三昧)에 들어가면서 맹세하기를 "자씨세존(慈氏世尊)이 세상에 일어나는 때에 미륵에게 주고자 한다."고 했다 함.
[주D-006]근연(巹筵) : 근은 표주박으로 만든 술잔인데 혼례에 사용함. 《예기(禮記)》혼례(昏禮)에 "合巹而飮"이 있음. 여기서는 회혼(回婚)을 두고 한 말인 듯함.
[주D-007]합초(合醮) : 초는 작(酌)만 하고 수작(酬酌)이 없는 것을 이름. 옛 관혼(冠婚)의 예에 다 쓰고 있음. 《예기(禮記)》혼의(昏儀)에 "父親醮子 而命之迎"이라는 대문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