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선 상적 에게 주다[與李藕船 尙迪][6] |
세한시(歲寒詩) 중에 나타난 조궁첨 진조(趙宮詹振祚)는 과시 어느 정도의 인물이던가? 능히 그의 깊고 옅음을 파악했는가? 시의 장소 술의 자리에 덧없이 노닐며 세월 보내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던가?
이 사람은 신수(申受) 선생의 생질이 되는 사람인데 신수 선생이 여러 생질 중에도 특별히 궁첨을 중히 여겼으니 신수 선생이 특별히 중히 여긴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무리에 솟고 유에 뛰어나서 반드시 외가의 기풍을 지녔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에 여러 해를 두고 마음이 끌리었으나 서로 통할 인연과 계제가 없었던 거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나 다행인지 세한시 중에서 만나게 되었지뭐요. 반드시 나를 위해 전갈하여 그로 하여금 해외에도 조궁첨 선생의 풍채를 상상하고 바라는 자가 있음을 알게 하는 것도 좋을 거외다.
따라서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으니 신수 선생의 공양(公羊)설은 바로 그가 묵수(墨守)한 것으로서 성인의 ‘나를 알아 주고 나를 죄준다.[知我罪我]'는 대의도 이것이 아니면 밝혀지지 못하고 칠십 자(七十子)의 미언(微言)과 유의(遺義)도 이를 힘입어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바로 저 장고문(張皐文) 선생의 우역(虞易)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짝할 뿐더러 보다 넘어섬이 있다 할 것이오.
서경(西京) 금문(今文)의 가법(家法)이 비로소 세상에 크게 밝혀진 것은 이 때문이니 이는 천하 사람이 함께 존숭할 바이요 나 한 사람이 감히 사사로이 할 것은 아니외다.
더구나 그 체설(禘說)은 대향(大饗)이 합(祫)이 된다는 실수를 바로잡고 소목(昭穆)을 심체(審諦)한 잘못을 물리쳐 깨뜨렸으니 또한 해와 달에 매달아서 변동하지 못할 것이며 혜송애(惠松厓) 손 관찰(孫觀察)의 서(書)에 비해도 더욱 정하고 핵실한 곳이 있으며 위군 묵심(魏君黙深)도 역시 통관(統貫)을 찾기가 어려우나 시리(䚡理)가 문(文)을 이루어 대략 지취만은 나타냈다고 여겼으니 그 마음이 수그러졌음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아래 다시 "체곡(禘嚳)의 예(禮)는 끝내 알 수 없다." 하였고 또 "모르괘라, 오년의 하체(夏禘)와 같은 것인지……"라 하여 살짝이 벽파해 놓은 것같이 하였으니 이 점이 크게 위설(魏說)에 의심이 가는 까닭이외다.
위군은 바로 경에 심오한 자인데 뒷사람들은 매양 궐사(闕史)와 잔경(殘經)을 가지고서 이회 관통(理會貫通)하여 하나로 귀결지으려 하지만 이 학(學)은 궐의(闕疑)·신언(愼言)의 의에 결함됨이 있으니 위군으로서는 반드시 이 허물은 밟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오.
다만 위군의 뒤를 이어 말하는 자가 이로 인하여 갈수록 기이한 것만 좋아하고 다투며 또 따라서 말살해 버릴까 염려되니 대단 가외(可畏)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시험 삼아 한 가지 설이 있으니 복희(宓犧)씨가 비로소 팔괘(八卦)를 긋고 또 부연하여 육십 사괘를 만들었는데 이는 위로 하늘을 보고 아래로 땅을 살피어 개물 성무(開物成務)함으로써 처음으로 역(易)을 만들어냈고 이 역의 이전에는 아마도 다른 역이 없을 터인데, 감히 모르괘라, 귀조(龜兆)는 어느 성인의 세운 법에서 나온 것인지요.
예전부터 귀조를 장(長)으로 삼아 도리어 역 서(筮)의 위에 두었던 것인데 지금 귀(龜)로써 서(筮)를 의심한다면 되겠는가?
주관(周官 《주례(周禮)》를 말함)의 설은 차치하고 홍범(洪範 서경의 편명)에서만 보더라도 역시 두 가지 다 존립하고 일찍이 이회(理會) 관통(貫通)하여 하나로 만들지는 않았던 것이외다.
더구나 하나의 역인데 역의 단사(彖詞)는 그것이 초효(初爻)·이효·삼효·사효·오효·상효를 나누지 아니하여 여섯 효의 의가 그 가운데 통섭(統攝)되어 있고 상사(象詞)는 초·이·삼·사·오·상효를 나누어 각기 한 효의 의를 밝혔으니 비록 나뉘고 나뉘지 않은 다름은 있을망정 그 사(詞)는 마땅히 이동(異同)이 없어야 할 터인데 일체 한 가지가 아니니 지금 상사로써 억지로 단사를 통하여 일치하게 할 수 있겠으며 또 단사로써 상사를 의심하거나 상사로써 단사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좋게 여겨지는 것은 이신기(李申耆) 선생의 말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말에 "경(經)이란 매양 통하지 못할 대문이 있는데 강한 자는 한 끝만 붙들고서 억지로 통해 나가고 약한 자는 아울러 대체마저 우선 덮어두자는 식이다. 억지로 통하는 것은 그 막힘을 더욱 더하게 할 뿐이요, 그대로 두는 것은 바로 통하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 능히 대체를 구하고 그 통종(統宗)을 얻으면 따라서 이해된다." 하였소.
이러기에 신기 선생의 학은 고금을 박종(博綜)하여 없는 것도 같이 빈 것도 같이 나갔으며 신수 선생도 역시 한탄하여 "나는 그만 못하다." 여겼던 것이니, 지금 한두 군데 통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서 신수 선생의 대체를 구하여 그 통종을 얻는다는 확론(確論)을 의심해서는 안 되는 거외다.
오늘날 신수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마치 구자(窶子)가 유리(琉璃)의 보기를 받은 것과 같아서 혹시라도 실추됨이 있을까 두려우므로 참망(僣妄)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번독(煩瀆)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칠 줄 모르는 것이외다.
이를 인하여 또 한 가지의 말을 하겠으니 《해국도지(海國圖志)》에 중서기년통표(中西紀年通表)가 있는데 이는 단연코 통할 수 없는 것이오. 중·서의 한 해는 머리와 끝이 절대 서로 같지 않으니 지금 도광(道光) 이십 년 경자(庚子) 십이월 초팔일 갑자는 서이(西夷)의 일천팔백사십일년의 원조(元朝)가 되는데 서이는 이미 해가 고쳐지고 중국은 아직 해가 고쳐지지 않았으니 어떻게 억지로 통할 수가 있소. 이는 안 되는 일이고말고요.
또 연(年)이란 바로 중국에서 벼가 한 번 익는 것을 연으로 기록하는 그 연이니 연·세·사·재(年歲祀載)가 각기 취(取)한 바가 있는데 서이의 기년(紀年)에 있어 어찌하여 중국의 ‘연’자를 주어서 서이 몇 년이라 한단 말인가? 지금 또 만약 서이의 몇 사(祀)라 한다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또 사교(邪敎)에서 일컫는 천주(天主)라는 것은 더욱 만만 번 말이 되지 않으니 사교의 ‘천(天)'을 말하는 것이 중국의 ‘천’을 말하는 것과 같은가, 다른가? 서광계(徐光啓)·이지조(李之藻) 같은 일종의 사당(邪黨)·귀괴(鬼怪)의 무리들이 억지로 사교의 방언(方言)을 번역하여 감히 중국의 ‘천’자와 맞서게 하려드니 이 어찌 말이나 되겠는가?
이 하나의 하늘천자를 가지고서 무식한 사교도들을 고창(鼓倡)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고 혹하게 하여 무궁한 앞날에 해독을 끼치고 있으니 마땅히 이 〈하늘천〉자에서부터 먼저 벽파해야 하겠거늘 무슨 까닭으로 그 성어(成語)를 인습하여 어려움 없이 마구 혼동하여 일컬어댄단 말인가?
불서(佛書)의 대반야경(大般若經)에 ‘천주품성명문(天主品聲明門)’의 인명론(因明論)이 있어 천주보살(天主菩薩)이 지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른바 ‘천주’란 또 서이의 천주와는 다르지요. 그러나 천주(天主)란 두 글자만 논한다면 미상불 불서에서 시작된 것인데 또 어찌 전혀 서이에게만 책망할 수 있소.
역장(譯場)의 문자는 또 다 중국 사람이 조성하여 윤색한 것이니 역장의 사람들이 화의 으뜸이 된 것은 어찌 면할 수가 있겠소. 이는 중국 문자에 근거하여 억지로 통할 수 없는 한 큰 안건이니 더욱 이는 정명(正名)의 훈(訓)에 해당하므로 엄히 변정하고 통렬히 배척해야 할 것이외다.
[주D-001]세한시(歲寒詩) : 완당(阮堂)의 세한도(歲寒圖)에 관하여 중국의 명사 16인이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의 청에 의하여 시를 썼는데 이를 세한시라 이름. 조 궁첨 진조(趙宮詹振祚)는 주 322)에 보임.
[주D-002]신수(申受) : 청 유봉록(劉逢祿)의 자임. 무진인(武進人)이요, 가경 진사로 관은 예부주사(禮部主事)이며, 그의 외조 장존여(莊存與)와 구씨(舅氏) 장 술조(莊述祖)에게서 배워 《공양춘추(公羊春秋)》에 정통하고 또 《우씨역(虞氏易)》및《구장소학(九章小學)》을 통하여 청대 금문학자의 으뜸이 되었음.
[주D-003]묵수(墨守) : 묵적수성(墨翟守城)의 약칭. 전국 시대에 묵적이 성을 잘 지켰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소견을 고수하는 자를 들어 묵수라고 하였음. 이에 근거하여 임성(任城) 사람 하휴(何休)가 공양학(公羊學)을 배워 《공양묵수(公羊墨守)》라는 책을 저술하였음.
[주D-004]나를……죄준다[知我罪我] : 《춘추(春秋)》를 말한 것임. 《맹자(孟子)》등문공하(滕文公下)에 "孔子曰 知我者其惟春秋 罪我者其惟春秋乎"라 하였음.
[주D-005]장고문(張皐文) : 청 무진인(武進人)으로 이름은 혜언(惠言)이요, 자는 고문(皐文)이며 가경 진사로서 관은 편수(編修)이다. 수학역행(修學力行)·돈례자수(敦禮自守)하여 《예(禮)》를 말하면 정현(鄭玄)을 주로 삼고 《역(易)》을 말하면 우번(虞翻)을 주로 삼았으며, 저술로는 《주역우씨역의(周易虞氏易義)》·《우씨소식(虞氏消息)》등이 있음.
[주D-006]체설(禘說) : 체는 대제(大祭)이다. 혹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시(四時)의 제(祭)로서 《예기》 왕제(王制)에 '春礿夏禘秋嘗冬烝'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상(夏商)의 예이고, 하나는 은제(殷祭)이니 오세(五歲)에 일체(一禘)하고 삼세(三歲)에 일합(一祫)으로 다 군묘(群廟)의 주(主)를 합하여 대조묘(大祖廟)에 제(祭)하는 것이고, 하나는 대체(大禘)로서 《예기》대전(大傳)에 '禘其祖之所自出 以其祖配之'라 하였으니, 바로 그것이다."고 하였다.
[주D-007]소목(昭穆) : 옛 종묘의 제도에 태조(太祖)의 묘(廟)는 중앙에 있고 2세·4세·6세는 왼편에 있어 소(昭)라 하고 3세 5세 7세는 오른편에 있어 목(穆)이라 이름.
[주D-008]혜송애(惠松崖) : 송애는 청 혜동(惠棟)의 호임. 오현인(吳縣人)으로 자는 정우(定宇)이며 사기(士奇)의 차자(次子)인데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하여 《고문상서고(古文尙書考)》와 《구경고의(九經古義)》등의 책을 저술하였음.
[주D-009]손 관찰(孫觀察) : 청 손성연(孫星衍)을 말함. 양호인(陽湖人)으로 자는 연여(淵如)요, 건륭(乾隆) 진사로 관(官)은 산동독량도(山東督糧道)이며 저술로는 《상서금고문주소(尙書今古文注疏)》등이 있음.
[주D-010]위군 묵심(魏君黙深) : 묵심은 청 위원(魏源)의 자임. 위원은 소양인(邵陽人)으로 도광(道光) 진사로 관은 고우주 지주(高郵州知州)에 이르렀으며, 장고(掌故)에 익숙하고 더욱 시사(時事)에 유심(留心)하여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성무기(聖武記)》등의 책을 저술하였음.
[주D-011]체곡(禘嚳) : 곡(嚳)은 제곡(帝嚳)을 이름. 《예기(禮記)》제법(祭法)에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이라 하였음.
[주D-012]궐의(闕疑)·신언(愼言) : 《논어(論語)》위정(爲政)의 "多聞闕疑 愼言其餘"에서 나온 것임.
[주D-013]개물 성무(開物成務) : 《역(易)》계사(繫辭)에 "未易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라 하였고, 그 주에 "역(易)은 만물의 뜻을 개통하여 천하의 무(務)를 이룬다." 하였음.
[주D-014]귀조(龜兆) : 귀는 귀복(龜卜)을 이름이고 조는 거북을 불로 지져 금이 벌어지는 것을 이름. 《좌전(左傳)》소공(昭公) 5년에 "龜兆告吉"이 있음.
[주D-015]귀조를……삼아 : 《좌전(左傳)》희공(僖公) 4년에 "筮短龜長 不如從長"이 있는데, 대개 귀는 상(象)을 나타내고 서는 수(數)를 부연하는 것이니 물(物)은 먼저 상(象)이 있은 뒤에 수(數)가 있기 때문에 서는 짧고 귀는 길다고 한 것임.
[주D-016]이신기(李申耆) : 청 무진인(武進人). 이름은 조락(兆洛)이고 자는 신기(申耆)임. 가경 진사로 벼슬은 지현(知縣). 시·고문(古文)에 능하고 더욱 고증(考證)에 정하였다. 저술로는 《이씨오종(李氏五種)》·《양일재문집(養一齋文集)》등이 있음.
[주D-017]서광계(徐光啓) : 명(明) 상해인(上海人)으로 자는 자선(子先)이요, 호는 현호(玄扈)인데 숭정(崇禎) 초에 예부 상서로 입각(入閣)하여 기무(機務)에 참예하였고 이태리(伊太利) 사람 이마두(利瑪竇)를 상종하여 천문·산법(算法)·화기(火器)를 배워 다 그 술에 통하였고 그 중에서도 역서(曆書)에 정하였으며, 그 《기하원본(幾何原本)》의 전 6권은 더욱 저명하다. 이마두를 상종한 뒤로는 천주교지(天主敎旨)를 독신하여 세례를 받고 그 이름을 고쳐 보록(保祿)이라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定)임.
[주D-018]이지조(李之藻) : 명 인화인(仁和人)으로 자는 진지(振之)요, 만력(萬曆) 진사로 관은 태복시 소경(太僕寺少卿)에 이르렀다. 서광계와 더불어 서양 사람 이마두(利瑪竇)의 학을 독신하였다. 저술로는 《반궁예악소(泮宮禮樂疏)》·《신법산서(新法算書)》등이 있음.
[주D-002]신수(申受) : 청 유봉록(劉逢祿)의 자임. 무진인(武進人)이요, 가경 진사로 관은 예부주사(禮部主事)이며, 그의 외조 장존여(莊存與)와 구씨(舅氏) 장 술조(莊述祖)에게서 배워 《공양춘추(公羊春秋)》에 정통하고 또 《우씨역(虞氏易)》및《구장소학(九章小學)》을 통하여 청대 금문학자의 으뜸이 되었음.
[주D-003]묵수(墨守) : 묵적수성(墨翟守城)의 약칭. 전국 시대에 묵적이 성을 잘 지켰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소견을 고수하는 자를 들어 묵수라고 하였음. 이에 근거하여 임성(任城) 사람 하휴(何休)가 공양학(公羊學)을 배워 《공양묵수(公羊墨守)》라는 책을 저술하였음.
[주D-004]나를……죄준다[知我罪我] : 《춘추(春秋)》를 말한 것임. 《맹자(孟子)》등문공하(滕文公下)에 "孔子曰 知我者其惟春秋 罪我者其惟春秋乎"라 하였음.
[주D-005]장고문(張皐文) : 청 무진인(武進人)으로 이름은 혜언(惠言)이요, 자는 고문(皐文)이며 가경 진사로서 관은 편수(編修)이다. 수학역행(修學力行)·돈례자수(敦禮自守)하여 《예(禮)》를 말하면 정현(鄭玄)을 주로 삼고 《역(易)》을 말하면 우번(虞翻)을 주로 삼았으며, 저술로는 《주역우씨역의(周易虞氏易義)》·《우씨소식(虞氏消息)》등이 있음.
[주D-006]체설(禘說) : 체는 대제(大祭)이다. 혹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시(四時)의 제(祭)로서 《예기》 왕제(王制)에 '春礿夏禘秋嘗冬烝'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상(夏商)의 예이고, 하나는 은제(殷祭)이니 오세(五歲)에 일체(一禘)하고 삼세(三歲)에 일합(一祫)으로 다 군묘(群廟)의 주(主)를 합하여 대조묘(大祖廟)에 제(祭)하는 것이고, 하나는 대체(大禘)로서 《예기》대전(大傳)에 '禘其祖之所自出 以其祖配之'라 하였으니, 바로 그것이다."고 하였다.
[주D-007]소목(昭穆) : 옛 종묘의 제도에 태조(太祖)의 묘(廟)는 중앙에 있고 2세·4세·6세는 왼편에 있어 소(昭)라 하고 3세 5세 7세는 오른편에 있어 목(穆)이라 이름.
[주D-008]혜송애(惠松崖) : 송애는 청 혜동(惠棟)의 호임. 오현인(吳縣人)으로 자는 정우(定宇)이며 사기(士奇)의 차자(次子)인데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하여 《고문상서고(古文尙書考)》와 《구경고의(九經古義)》등의 책을 저술하였음.
[주D-009]손 관찰(孫觀察) : 청 손성연(孫星衍)을 말함. 양호인(陽湖人)으로 자는 연여(淵如)요, 건륭(乾隆) 진사로 관(官)은 산동독량도(山東督糧道)이며 저술로는 《상서금고문주소(尙書今古文注疏)》등이 있음.
[주D-010]위군 묵심(魏君黙深) : 묵심은 청 위원(魏源)의 자임. 위원은 소양인(邵陽人)으로 도광(道光) 진사로 관은 고우주 지주(高郵州知州)에 이르렀으며, 장고(掌故)에 익숙하고 더욱 시사(時事)에 유심(留心)하여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성무기(聖武記)》등의 책을 저술하였음.
[주D-011]체곡(禘嚳) : 곡(嚳)은 제곡(帝嚳)을 이름. 《예기(禮記)》제법(祭法)에 "殷人禘嚳而郊冥 祖契而宗湯 周人禘嚳而郊稷 祖文王而宗武王"이라 하였음.
[주D-012]궐의(闕疑)·신언(愼言) : 《논어(論語)》위정(爲政)의 "多聞闕疑 愼言其餘"에서 나온 것임.
[주D-013]개물 성무(開物成務) : 《역(易)》계사(繫辭)에 "未易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라 하였고, 그 주에 "역(易)은 만물의 뜻을 개통하여 천하의 무(務)를 이룬다." 하였음.
[주D-014]귀조(龜兆) : 귀는 귀복(龜卜)을 이름이고 조는 거북을 불로 지져 금이 벌어지는 것을 이름. 《좌전(左傳)》소공(昭公) 5년에 "龜兆告吉"이 있음.
[주D-015]귀조를……삼아 : 《좌전(左傳)》희공(僖公) 4년에 "筮短龜長 不如從長"이 있는데, 대개 귀는 상(象)을 나타내고 서는 수(數)를 부연하는 것이니 물(物)은 먼저 상(象)이 있은 뒤에 수(數)가 있기 때문에 서는 짧고 귀는 길다고 한 것임.
[주D-016]이신기(李申耆) : 청 무진인(武進人). 이름은 조락(兆洛)이고 자는 신기(申耆)임. 가경 진사로 벼슬은 지현(知縣). 시·고문(古文)에 능하고 더욱 고증(考證)에 정하였다. 저술로는 《이씨오종(李氏五種)》·《양일재문집(養一齋文集)》등이 있음.
[주D-017]서광계(徐光啓) : 명(明) 상해인(上海人)으로 자는 자선(子先)이요, 호는 현호(玄扈)인데 숭정(崇禎) 초에 예부 상서로 입각(入閣)하여 기무(機務)에 참예하였고 이태리(伊太利) 사람 이마두(利瑪竇)를 상종하여 천문·산법(算法)·화기(火器)를 배워 다 그 술에 통하였고 그 중에서도 역서(曆書)에 정하였으며, 그 《기하원본(幾何原本)》의 전 6권은 더욱 저명하다. 이마두를 상종한 뒤로는 천주교지(天主敎旨)를 독신하여 세례를 받고 그 이름을 고쳐 보록(保祿)이라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定)임.
[주D-018]이지조(李之藻) : 명 인화인(仁和人)으로 자는 진지(振之)요, 만력(萬曆) 진사로 관은 태복시 소경(太僕寺少卿)에 이르렀다. 서광계와 더불어 서양 사람 이마두(利瑪竇)의 학을 독신하였다. 저술로는 《반궁예악소(泮宮禮樂疏)》·《신법산서(新法算書)》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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