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오 진사에게 주다[與吳進士][4]

천하한량 2007. 3. 9. 04:35
오 진사에게 주다[與吳進士][4]

생공(生公)이 설법하자 뭇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는데 이곳의 돌은 그 불성(佛性)이 없는건가. 다만 설법하는 것이 생공과 같지 못한 때문이겠지요. 그대를 만남으로부터 인합(印合)의 반가움을 얻게 되니 이는 또 한산(寒山)의 한 조각이로세.
이곳 사람들이 의당 그대를 애석히 여겨야 할 터인데 비단 애석히 여길 줄을 모를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 말살하려고까지 하니 이러기에 완적(阮籍)의 도궁(途窮)이 있게 되는 까닭이라 바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오지용력(五指用力)의 어려움은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고말고요. 매양 일은 얼핏 들으면 쉬운 것 같은데 실지에 다다르면 말대로 되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하나의 서법(書法)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이는 바로 훈련 못 받은 백성을 졸지에 풍운조사(風雲鳥蛇)의 전진(戰陣) 속으로 몰아 넣는다면 그들이 능히 구율(彀率)에 맞을 리가 있겠는가.
적구도(摘句圖)는 서로 면대하여 건네줄 생각으로 지금까지 보유하고 기다리는 중이며 하권(霞卷)도 역시 만나서 한번 상론하고 돌리고자 하여 짐짓 늦추는 것이니 어느 제나 한번 찾아 주려는가.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니 한번 생각해 보게. 문기(文祺)의 가승(佳勝)을 빌며 불비.

[주D-001]생공(生公)이……끄덕였다는데 : 생공은 양(梁) 나라 때의 고승(高僧) 축도생(竺道生)을 이름인데 일찍이 호구사(虎丘寺)에서 경(經)을 강하면서 돌을 모아 청중으로 가장한 바 그 돌이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생공설법(生公說法) 완석 점두(頑石點頭)라는 말이 있게 되었음.
[주D-002]한산(寒山)의 한 조각이로세 : 양(梁) 나라 유신(庾信)의 자는 자산(子山)인데 일찍이 북방에 가서는 오직 한산사(寒山寺)의 비(碑)를 사랑하였다. 뒤에 남방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북방은 어떻더냐고 물으니, 유신이 말하기를 "오직 한산사의 한 조각 돌이 함께 말할 만하고 나머지는 다 개가 짖고 나귀가 우는 것 같다."라 하였음.
[주D-003]완적(阮籍)의 도궁(途窮) : 완적은 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데 자는 사종(嗣宗)이요 진류인(陳留人)으로 일찍이 구직(求職)하여 보병교위(步兵校衛)가 되어 완 보병이라고도 칭함. 길을 가다가 그 길이 막히면 문득 통곡하고 돌아왔음. 《晉書 阮籍傳》. 두보 시에 "窮途阮籍幾時醒"의 구가 보임.
[주D-004]오지용력(五指用力) : 서결(書訣)에서 나온 말임.
[주D-005]풍운조사(風雲鳥蛇) : 진(陣)의 이름인데 옛날에는 천지풍운용호조사(天地風雲龍虎鳥蛇) 팔진(八陣)이 있었음. 《李衛公問對》에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