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농장인 재규 에게 주다[與李農丈人 在奎] |
단산(丹山)이라 벽수(碧水)라 옛비 이젯구름에 바라보고 쳐다보길 삼십여 년이었소. 신선에 비열(比列)하는 유가(儒家)로서 의당 구름처럼 유연하고 솔처럼 청고하여 세상에 머물러 긴 수명을 누리며 반드시 날리는 다붓과 흐르는 마름이 표류하고 전전하여 정처가 없는 것과는 같지 않으리니 매양 우러르고 외어 마지않으나 흰 구름 한 가닥이 아득만 하여 더위잡을 수 없는 것이 마치 선풍(仙風)이 속세와는 너무도 먼 것과 같음에야 어찌하리까?
생각지도 않았는데 진귀한 서찰이 멀리서 내 앞에 떨어지니 완연히 숙세(夙世)의 재현이요 전 꿈의 이음이라 종이에 가득 차고 줄줄에 넘실대어 끊임없는 수천 백 마디 말은 존무(存撫)와 관흡(款洽)이 진지하고 구비되어 자못 받들어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지요.
하물며 영포(令抱)가 책을 가지고 멀리 서로 찾아줌을 보게 되니 아마도 이는 오정공(梧亭公)의 끼친 향기와 남은 덕택이 몇 대를 연장하여 경사를 흘려 내림이 아니겠소. 흠앙하고 탄복함을 어찌 다 아뢰리까.
연운의 공양으로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양 또 이 슬하(膝下)를 둘러싼 좋은 자손마저 두셨으니, 이 얼마나 대등 없는 복이겠소.
더구나 후원에는 온갖 나무가 꽃을 피우고 뭇 꾀꼬리는 수대로 나와 울음을 우는데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소요자적하며 농가의 오행(五行)도 따라서 길조를 맞추어 바람 불 때 바람 불고 비 올 때 비 오며 청아(淸雅)한 체력도 날로 강성하신지요? 빌고 비외다.
아우는 죽어야 마땅한데도 죽지 않고 목석보다 더 무디어 바로 하나의 진인(陳人)을 이루었으니 실상 무슨 인연으로 이 한가한 세월을 버티어 나는지 모르겠소. 천지가 아득만 하니 이 무슨 사람이라 하오리까.
십년 사이에 난표봉박(鸞飄鳳泊)의 물건들이 눈에 지나면 환멸(幻滅)되어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유독 오정공이 제첨(題簽)하신 서책 두어 질만 다행히 유실되지 아니하여 보배처럼 간수하고 신처럼 귀히 여기며 스스로 수장하여 저 조자고(趙子固)의 낙수 난정(落水蘭亭)이 수중에 있다는 듯이 여기고 있는 실정이외다.
영포는 수십 일 동안 곁을 떠나지 않으며 구익(求益)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이 몸을 생각하면 비록 기기(驥騏)처럼 성장(盛壯)한 시절에도 족히 남에게 미쳐 갈 것이 없었는데 지금처럼 초췌하고 고고하고 확락(濩落)한 쓸데없는 물건이 무슨 수로 적셔주고 불려주고 할 수 있겠소.
머리는 벗겨지고 이는 빠지고 눈곱 끼고 팔 뻣뻣하여 일어나자면 남을 기다리고 앉으나 누우나 베개를 기대는 백천 가지 추하고 졸한 꼴을 보면 한창 장성한 소년들은 반드시 크게 웃고 돌아가서 그 꼴을 말할 것이니 너무도 부끄럽고 너무도 가련한 신세이외다.
안력이 조금 버틸 만하여 밝은 창 아래서 몇 자의 글씨를 썼는데 그것을 거두어 갔으니 이 어찌 멀리 찾아온 뜻을 맞춰주었다 하겠소. 구름 그늘이 지붕을 내리 눌러 음침한 속에서 간신히 되는 대로 적어 올리니 양찰하여 주소서.
[주D-001]영포(令抱) : 타인의 손자를 칭하는 말임. 《예기(體記)》곡례(曲體)의 "君子抱孫不抱子"에서 나왔음.
[주D-002]농가의 오행(五行) : 오행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이름인데 사시(四時)를 분행(分行)하여 각기 그 덕이 있음.
[주D-003]진인(陳人) : 진구(陳舊)한 사람을 이름. 《장자(莊子)》우언(寓言)에 "人而無人道 是之謂陳人"이란 대문이 있음.
[주D-004]난표봉박(鸞飄鳳泊) : 진귀한 물건이 다 이산(離散)된 것을 이름. 청(淸) 공자진(龔自珍)의 《정암문집보(定盦文集補)》회인관사금루곡(懷人館詞金縷曲)에 "我又南行矣 笑今年鸞飄鳳泊"이 있음. 또한 서법에 비유하여 쓰기도 함.
[주D-005]조자고(趙子固)의 낙수 난정(落水蘭亭) : 조자고는 송(宋)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맹견(孟堅)인데 일찍이 당모(唐摸) 난정첩을 가지고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배가 뒤집혀 그 서첩이 물에 떨어졌는데 사공의 도움으로 간신히 건져냈음. 그래서 그 첩이 세상에 유명하여 낙수본이라는 이름이 붙었음.
[주D-006]기기(驥騏)처럼……시절 : 자신의 장건(壯健)한 때를 비유한 것임.
[주D-002]농가의 오행(五行) : 오행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이름인데 사시(四時)를 분행(分行)하여 각기 그 덕이 있음.
[주D-003]진인(陳人) : 진구(陳舊)한 사람을 이름. 《장자(莊子)》우언(寓言)에 "人而無人道 是之謂陳人"이란 대문이 있음.
[주D-004]난표봉박(鸞飄鳳泊) : 진귀한 물건이 다 이산(離散)된 것을 이름. 청(淸) 공자진(龔自珍)의 《정암문집보(定盦文集補)》회인관사금루곡(懷人館詞金縷曲)에 "我又南行矣 笑今年鸞飄鳳泊"이 있음. 또한 서법에 비유하여 쓰기도 함.
[주D-005]조자고(趙子固)의 낙수 난정(落水蘭亭) : 조자고는 송(宋)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맹견(孟堅)인데 일찍이 당모(唐摸) 난정첩을 가지고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배가 뒤집혀 그 서첩이 물에 떨어졌는데 사공의 도움으로 간신히 건져냈음. 그래서 그 첩이 세상에 유명하여 낙수본이라는 이름이 붙었음.
[주D-006]기기(驥騏)처럼……시절 : 자신의 장건(壯健)한 때를 비유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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