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장 병사 인식 에게 주다[與張兵使 寅植][14]

천하한량 2007. 3. 9. 04:28
장 병사 인식 에게 주다[與張兵使 寅植][14]

백로가 지났는데도 노열(老熱)은 오히려 다시 이러하고 초량(初涼)은 땅밑에 잠긴 양(陽)과 같으니 어느 때나 베개 자리가 서늘기운을 맞고 둥근 부채가 수고롬을 놓게 될는지 모르겠소.
바로 곧 혜서를 받들어 삼가 살핀 근간에 영감 정후가 사뭇 평화롭지 못하시다니 근심을 놓지 못하겠구려. 더위도 이제는 과경(過境)에 속하는데 기후가 이처럼 어긋나니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병들지 않게 하리까. 염려됨이 다시금 지극하외다.
누인도 역시 위가 막혀 열리지 않고 안화(眼花)는 더욱 더하며 쑤시는 팔도 한결 심하기만 하니 사람을 소생시키는 가을바람이 유독 초췌(憔悴)하고 감름(坎壈)한 땅에는 오지 않는 겁니까? 진실로 괴로울 뿐이오. 가서(家書)는 과연 사뭇 막힌 나머지에 얻어 보았으니 병든 가슴이 조금 위안되외다.
월례(月例)의 도움은 또 이렇듯 마음을 쏟아 마치 시간이 어긋나지 않는 밀물과 같으니 거룩하신 뜻은 진실로 후함과 동시에 낯가죽이 두꺼움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니 역시 하나의 비웃음거리에 족할 밖에 또 무엇이 있겠소.
가르쳐 주신 일은 삼가 한 서찰을 만들어 집 편지와 함께 부치고 이곳의 부득이한 사정을 대단히 말했으나 종경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있겠소? 보초(報草)도 역시 편지 속에 넣어 보내고 따로 돌리지 아니하니 헤아리소서. 남은 말은 남겨 두고 갖추지 못하외다.

[주D-001]초췌(憔悴)하고 감름(坎壈)한 : 초췌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顔色憔悴"가 있고, 감름은 뜻을 얻지 못함을 이른 것으로 《楚辭 九辯》에 "坎壈兮貧士 失職而志不平"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완당 자신의 적거(謫居)한 처지에 견주어 쓴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