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장 병사 인식 에게 주다[與張兵使 寅植][12]

천하한량 2007. 3. 9. 04:27
장 병사 인식 에게 주다[與張兵使 寅植][12]

며칠 사이 날씨가 활짝 개고 좋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폐부(肺腑)가 열리려 하게 하는구료. 다만 복날이 박두한 장열(瘴熱)을 녹여 깨트릴 꾀가 없으니 저 수궁(隋宮)에서 더위를 피하고 송대(宋臺)에서 습기를 흩날린다는 것은 도무지 범부로서는 비겨 생각할 바도 아니지요.
우공(藕孔)의 일월과 침두(鍼頭)의 세계에는 한 점 바람도 들어오지 않으니 다만 노자(老子)의 고요함으로써 이겨낼 밖에 없는데 이겨낸다는 것도 역시 졸(拙)한 것이외다.
바로 곧 혜서를 받들어 살폈거니와 이렇게 쇠가 녹고 돌이 부스러지는 열기 속에 정무의 나머지 영감 체력이 피부의 질환으로 평화롭지 못하시다니 퍽이나 염려되는구려. 만약 증세가 더해 간다면 사근(莎根 향부자(香附子) 뿌리)을 즙을 내어 바르거나 혹은 짙게 달여서 김을 쐬고 씻곤 하는 것도 대단히 묘한 방법인데 과연 시험해 보셨는지요? 근심이 놓이지 않사외다.
누인의 병은 여러 날 동안 물설사를 한 나머지에 원기를 수습할 수 없어 겨우겨우 한 터럭과 같구려.
월혜(月惠 달마다 보내주는 물품)는 늘 계속해 주시니 진실로 정념에 감격함과 동시에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하는군요. 아무리 되풀이해 봐도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소. 우습기만 하외다. 나머지는 뒤로 미루고 갖추지 못하외다.
기문(記文)을 개정(改定)하는 일은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으며 그 중에는 또 부득불 약간의 글자를 산삭하고 천동해야 할 곳이 있으니 그렇게 해야만 구법(句法)이나 서사(敍事)에 있어 체격(體格)이 용장(冗長)하게 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산삭하여 전문(全文)의 하자가 됨이 없어야만 마침내 아름다울 거외다.
상량문(上樑文)도 역시 영감이 지은 거요? 비단 오늘날 도금가(韜鈐家)로서 쉽게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문단의 선수(善手)라 할지라도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겠소. 설혹 반·육·서·유(潘陸徐庾)의 옛격식에는 다 어울리지 못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병체(騈體)는 임진(壬辰)년 뒤로부터 갑자기 변하여 송·원 이후의 풍기를 만들어 마침내 하나의 공령의 웅[功令之雄]이 되었으니 이는 근자의 형편으로 보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비록 문원(文苑)의 대수필(大手筆)이라도 거개가 이와 같은 형편이외다.
대저 우리나라 임진년 왜란은 이것이 어떠한 백륙(百六)의 큰 액운인지 모르지만 조가(朝家)의 전장(典章)에서부터 여항 풍속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없어 지금까지도 옛것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문장이나 서화의 소도(小道)에 있어서도 다 따라서 변천되고 쇠사(衰謝)되어 마침내 만회할 길이 없으니 명종(明宗)·선조(宣祖) 이상의 융성하던 대아(大雅)의 풍 같은 것은 얻어 볼 수 없게 되어 늘 한탄하고 애석히 여기던 바이라 지금 보내 온 글월을 인하여 부질없이 이와 같이 언급하는 바이외다.
이 고을 읍지(邑誌) 안에 운주헌서(運籌軒序)의 대편(大篇) 문자가 있어 이는 동인의 사륙문 중 큰 것인데 그 솜씨를 보니 옛법이 아직도 남아 있더군요. 혹시 이미 보셨는지 모르겠소. 행여 나를 위해 한 통만 베껴내어 보내 줌이 어떻겠소. 정하게 베껴 그르침이 없어야만 읽을 수 있을 거외다.
찬유헌(贊猷軒)은 자못 열백 번 생각해 보아도 이곳 당·각(堂閣)의 편제로는 끝내 적당하지 못하외다. 혹시 내지(內地 서울)에서 졸필(拙筆)을 청구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가 하고 의심도 했으나 명확하게 알지 못해서 지난 번 편지에 질문한 바 있었는데 지금 회시(回示)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는구려.
찬유(贊猷) 두 글자는 만약 의정부(議政府) 대신의 청사에 건다면 적당하며 또 혹 비국(備局)의 제재(諸宰)가 거처하는 곳이라면 어울리려니와 이 어찌 해도(海島)의 한낱 소리(小吏)가 휴게하는 곳에 이것으로 서편(署扁)을 한대서야 되겠소.
가령 지금 한 기문(記文)을 지으면서 이르기를 "통판(通判)의 직은 바로 찬유(贊猷)하는 것이다."라 한다면 타당하겠소, 않겠소? 이렇기 때문에 전번 답서에 아순(雅馴)하지 못하다고 말했고, 지금 또 츤당(襯當)하지 못하다고 거듭거듭 말하는 것이외다.
속담에 한 가지 크게 웃을 만한 일이 있으니 "묘지기 집 제사에 대광보국(大匡輔國)의 계호(階號)를 썼다."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통판은 바로 치경생(治經生)인데 다만 외기만 하고 문의(文義)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이런 유오(謬誤)가 있었으니 왜 바르게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는거요. 이는 확실히 하나의 작은 일이지만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거외다. 인정(仁政)의 두 글자는 상하를 통하여 다 쓸 만도 하지만 인정만을 뽑아서 호를 건다면 이는 법전(法殿 대궐을 말함)에나 츤당하며 아순하지만 만약 감·병영(監兵營)의 징청각(澄淸閣) 운주헌(運籌軒)에다 이 두 글자를 건다면 츤당하다 하겠소, 아순하다 하겠소? 이는 감히 제(題)를 하지도 못할 거고 함부로 걸지도 못할 거외다.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빨리 고치는 것이 온당할 것이며 만일 고친다면 좌연각(左演閣)으로써 게(揭)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좌연(左演)의 의(義)는 곧 연무정(演武亭)의 곁에 한 각(閣)을 부설한 것이며 좌(左)는 바로 고자(古字)로 좌(佐)의 뜻이어서 연무(演武)를 참좌(參佐)하는 의이니 의향에 어떨는지 모르겠소.
상량문에도 다만 찬유헌 세 글자를 고쳐서 좌연각으로 한다면 원문이 이미 완성된 뒤라도 역시 무방할 것이며 상량문 끝 글귀에 나타난 팔천리(八千里)의 글자는 중국에 있어서는 된다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어울리지 않을 성싶으니 팔(八)의 글자를 이(二)의 글자로 고치는 것이 아무래도 무방할 듯싶사외다. 이 역시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편액 글씨는 신기(神氣)가 조금 안정될 때를 기다려서 쓰겠다고 전번 편지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지금 또다시 거듭 청하오니 잠시 늦추고 다그침이 없기를 바라오. 찬유(贊猷)도 고쳐 정한 뒤에 아울러 써서 봉정할 생각이니 편의에 따라 재량하여 다시 가르쳐 주시오.

[주D-001]수궁(隋宮)에서……피하고 : 수궁은 수 나라 인수궁(仁壽宮)을 말함인데 위징(魏徵)이 찬한 구성궁예천명서(九成宮醴泉銘序)에 維貞觀六年 孟夏之月 皇帝避暑于九成之宮 則隋之仁壽宮也……" 하였음.
[주D-002]송대(宋臺)에서……것 : 송 고조(宋高祖)가 지은 능효대(凌歊臺)인데 면세(面勢)가 허광(虛曠)하여 분애(氛埃)의 밖에 높이 벗어나 남으로 청산(靑山)을 바라보면 용산(龍山) · 구정(九井) 등 제봉(諸峯)이 있는 것 같다고 함. 허혼(許渾)의 능효대시에 "宋祖凌歊樂未回 三千歌舞宿層臺"의 구가 있음. '효(歊)'는 증열(蒸熱)의 뜻임.
[주D-003]우공(藕孔)의.....세계 : 극히 협소한 것을 말함.
[주D-004]용장(冗長) : 잉여 무용(剩餘無用)을 이름.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要辭達而理擧故無取乎冗長"이라 하였고, 또한 관(官)의 무용을 용장관(冗長官)이라고 함.
[주D-005]도검가(韜鈐家) : 고대의 병서(兵書)에 《육도(六韜)》 및 《옥검(玉鈐)》이 있으므로 군략(軍略)을 들어 도금이라고 함.
[주D-006]반·육·서·유(潘陸徐庾) : 고대의 문장가인 반악(潘岳)·육기(陸機)·서릉(徐陵)·유신(庾信)을 이름.
[주D-007]병체(騈體) : 병려체(騈儷體)인데 사륙문(四六文)으로 즉 표(表)를 말함.
[주D-008]공령의 웅[功令之雄] : 학자의 과공(課功)을 영(令)에 나타내는 것을 이름인데 즉 과장(科場)의 문자임. 《사기(史記)》유림전서(儒林傳序)에 "余讀功令 至於廣勵學官之路 未嘗不廢書而歎也"라 하였음.
[주D-009]백륙(百六) : 고대에 백륙과 양구(陽九)를 들어 액운이라 일컬었음. 여기서는 임진왜란이 우리나라의 대액운이었다는 뜻임. 일설에는 천액(天厄)을 양구, 지휴(地虧)를 백륙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