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16] |
마을 버들도 금을 발랐으니 황금이 천하기가 흙과 같다 하겠구려. 귀천을 막론하고 시절이 오게 되면 필경은 이와 같아서, 비등(飛騰)하고 기려(綺麗)한 땅에만 특별히 있는 게 아니라 황한(荒寒)하고 적막한 곳에도 널리 다 흡족하게 되는데, 다만 세상 사람들이 그 진행의 빠르고 느린 조그마한 차별로써 원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서, 일파(一波)가 움직이면 만파가 뒤를 따르게 되니, 이는 마땅히 자기 처지에 따라 알맞게 나갈 일이며, 반드시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오르내리어 양순봉갈(揚瞬棒喝)하는 무리들의 놀리고 깔깔댐을 받아서는 아니 되겠지요.
신년의 축원이오니 모름지기 이 관문을 뚫고 가야만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으리니 영감은 바로 해인(解人)이라 반드시 인가(印可)가 있을 것이외다.
해가 바뀐 뒤에도 한 번 만나기가 이렇게 더디고 근일에는 왕래하는 인편마저 들쑥날쑥하여 화답마저 이렇게 늦어지니 매양 병중에 고개를 쳐들고 생각하면 영감에게는 정이 잊혀지지를 않는구려. 마른 나무 차가운 재도 다 녹아나고 다 닦여버리지 않아서 그렇단 말입니까? 붓을 쥐고 애달파 할 따름이외다. 오늘에도 시체 한결같이 왕성하여 만복이 봄과 함께 형통하신지요. 다시 비외다.
아우는 초목처럼 나이가 칠순이 꽉 찼으니 온갖 추한 꼴이 다 드러나서 사람을 대하면 부끄럽고 두려울 뿐이오. 이는 업경(業鏡) 속의 선현(善現)인지 악현(惡現)인지 모르겠소.
보내온 종이는 가르침에 의해 받들어 주선하겠사외다. 갖추어 신사(申謝)하며 불비하외다.
이 벼루는 바로 단계석(端溪石)이며 벼루 만든 식도 극히 고아(古雅)하니 반드시 유명한 솜씨의 제작이요, 보통 장(匠)으로서는 방불하게도 못할 것이외다. 지금 하마 4백 년이 지났으니 근세의 돌이나 근세의 제작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벼루의 면이 살짝 오목하니 육방옹(陸放翁)의 이른바 옛 벼루 살짝 오목하여 먹이 많이 모인다[古硏微凹聚墨多]라는 것이 실담이외다. 주영(周瑛)의 명사(銘詞)도 심히 아름다우며 필의도 깊이 종·색(鍾索)의 고법을 터득하여 하나의 법서로 봄직한데 무슨 인연으로 굴러굴러 동쪽으로 와서 잡된 손에 들어가 전혀 벼루를 보호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소. 아우는 이 벼루를 얻은 뒤로 노상 좌우에 두었는데 지금 영감을 위해 꺼낸 거요. 영감은 과시 눈 밝고 세심한 사람이니 아마도 인가할 거외다.
[주D-001]양순봉갈(揚瞬棒喝) : 눈을 치뜨고 호통치는 것. 봉갈은 불가 용어로 사람의 미오(迷誤)를 깨우치는 것임.
[주D-002]해인(解人) : 이취(理趣)를 밝게 아는 사람을 두고 이른 말임. 《세설(世說)》문학(文學)에 "완유(阮裕)는 말하기를 '非但能言人不可得 正索解人亦不可得'이라 하였다." 하였음.
[주D-003]업경(業鏡) : 저승에서 중생의 선악업(善惡業)을 사취(寫取)한 거울을 이름. 《자지기(資持記)》에 "正五九月 冥界業鏡 輪照南洲 若有善惡 鏡中悉現"이라 하였음.
[주D-004]육방옹(陸放翁) : 송(宋) 시인 육유(陸游). 산음인(山陰人)으로 자는 무관(務觀)인데
[주D-005]종·색(鍾索) : 종요(鍾繇)와 색정(索靖)을 이름. 종요는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영천
[주D-002]해인(解人) : 이취(理趣)를 밝게 아는 사람을 두고 이른 말임. 《세설(世說)》문학(文學)에 "완유(阮裕)는 말하기를 '非但能言人不可得 正索解人亦不可得'이라 하였다." 하였음.
[주D-003]업경(業鏡) : 저승에서 중생의 선악업(善惡業)을 사취(寫取)한 거울을 이름. 《자지기(資持記)》에 "正五九月 冥界業鏡 輪照南洲 若有善惡 鏡中悉現"이라 하였음.
[주D-004]육방옹(陸放翁) : 송(宋) 시인 육유(陸游). 산음인(山陰人)으로 자는 무관(務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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