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11]

천하한량 2007. 3. 9. 04:08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11]

황량하고 적막한 곳에 뉘가 있어 따뜻이 물어주겠소. 파심(婆心)을 지니지 않으셨다면, 이 몸이 무슨 수로 지우(芝宇)를 얻어보아 삼일토록 궤(几)와 탑(榻)에 향기가 스미게 할 수 있었겠소. 돌아가는 수레가 너무도 저녁에 가까웠으니, 물시계가 걷히기 전에 성에 당도하게 되었는지 불안한 마음이 맺힌 듯하여 때를 지내도 풀리지 않으외다. 곧 혜서를 받들어 비로소 시하 영체가 고이 회정하여 안복하심을 살폈으니 심히 흐뭇하오며, 아우는 강이 차고 해가 다가니 온갖 심사가 고달프고 어지러워 멈출 곳이 어디멘지 모르겠사외다. 가전(佳箋)과 명고(名糕)는, 이와 같은 후향(厚餉)을 입어 옛날의 풍미를 여복잉고(餘馥剩膏)로써 맛보게 되었으니, 감사를 외치는 나머지에 실로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감개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겠구려. 오직 영감의 복이 광채를 더하여 붓을 들 적마다 크게 길하기를 빌며, 남은 말은 뒤로 미루고 갖추지 못하외다.

[주D-001]지우(芝宇) : 당(唐) 원덕수(元德秀)의 자는 자지(紫芝)인데, 재상(宰相) 방관(房琯)이 항상 덕수를 보면 탄식하며 하는 말이 '자지의 미우(眉宇)를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의 마음이 다 녹아나게 한다. " 하였음. 그래서 지금 서한(書翰)에 상대방의 미우(미우)를 칭하여 지우라고 하는 것도 이에 근거한 것임.
[주D-002]삼일토록……있었겠소 : 동한(東漢) 순욱(荀彧) 영군(令君)의 고사임. 《세설(世說)》에 "유화계(劉和季)는 일찍이 말하기를 '순영군(荀令君)이 남의 집에 왔다가 가면 그가 앉았던 곳에는 항상 3일 동안 향기가 머물러 있다.'고 했다." 하였음.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橋南荀令過 十里送衣香"의 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