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12] |
북으로 온 이후에 어느 곳인들 혼을 녹이지 않으리요마는 유독 영감에게만 유달리 간절하다오.
이와 같은 말세의 요박(澆薄)한 때에 있어, 고가(故家)의 봉모(鳳毛)요 후래의 인각(麟角) 같은 존재라서 기대와 소망이 보통 사람과는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영감을 빙자하여 만경(晩境)을 즐기며, 차츰 흐뭇하고 윤택함을 얻어 적막하고 고고한 몸이 거의 평생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는데, 신명에게 거슬림을 쌓은 탓으로 유리되고 낭패되어, 영감과 더불어 작별하고 또 천리의 변새 밖에 오게 되었으니 어쩌잔 말이오.
매양 화피(樺皮)의 지붕 아래서 밤마다 누워 죄를 참회하며, 바닷물은 넘실거리고 하늘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오는데, 강루에서 팔목을 붙들고 노닐던 옛일을 회고하면, 이 즐거움을 다시 갖기는 어려우니, 이 경지가 과연 사치스러운 것이었던가요. 이 소원이 과연 분에 넘친 것이었던가요. 이는 궁한 사람으로서 감히 받아 차지하지 못할 것이었던가요. 그저 귀신이 비웃고 야유하기에 족할 뿐이었던가요?
문득 낭함(琅函 진귀한 편지)을 멀리 나에게 보내주니, 이웃 사람도 찾아와 안부 묻는 일이 없는데, 이와 같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있음을 볼 때 불 속에서 솟아난 연꽃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며, 오경(鼯徑)의 경해(謦咳)쯤이야 어찌 말할 나위나 있겠소.
서신이 있은 후 철이 바뀌어 변새에는 한 길의 눈이 쌓이고 해조차 저물었는데, 이 즈음 영체 동정이 복되고 편하며 훤음(萱蔭)의 자가(慈嘏)를 받들고 죽보(竹報)의 평안을 전하여 온갖 일이 순조롭고 한 가지 구김살도 없으신지 정성껏 빌어 마지않사외다.
누인(累人)은 올 때에 백 가지 어려움과 천 가지 고초를 다 겪으며 이십팔 일의 큰 물에 막히어 한 달 정도를 허비하고야 여기에 당도하였으니, 만일 왕령(王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낡은 몸으로 버티어 냈겠소.
그 사이 또 황달병으로 하나의 금색신(金色身)이 되어서 이번에는 꼭 죽을 줄 알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예전 얼굴로 되돌아가 차츰 누른 빛은 가시게 되었으나, 그 기는 상기도 많이 남아서 정신이 잘 지속되지 않는구려.
겨우 이만 함부로 적어 갖추어 사례할 따름이니 헤아리소서. 다 전달 못하외다.
[주D-001]고가(故家)의……존재 : 남의 집 어진 자손을 예찬하는 말임.
[주D-002]불 속에서 솟아난 연꽃 : 《유마힐경(維磨詰經)》에 "불 속에서 연화가 나는 것은 이 이른바 드물게 있는 일인데, 욕(欲)을 지니고서 선(禪)을 행하는 것은, 역시 드물게 있는 것이 이와 같다." 하였음. 소식의 육연암시(陸蓮庵詩)에 "陸地生花安足怪 而今更有火中蓮"의 구가 있음.
[주D-003]오경(鼯徑)의 경해(警咳) : 다람쥐나 다니는 깊은 산길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쁘다는 뜻임.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에 "夫逃虛空者 藜藿柱乎鼪鼯之逕 跟位其空 聞人足音跫然而喜矣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라고 하였음.
[주D-004]훤음(萱蔭)의 자가(慈嘏) : 상대방의 자친(慈親)을 칭하여 훤당(萱堂)이라 하는데, 자가는 자친의 복을 이름. 《시경(詩經)》위풍(衛風) 백혜(伯兮)에 "焉得諼草 言樹之背"라 하였는데 '훤(諼)'은 '훤(萱)'과 같고, '배(背)'는 북당(北堂)을 칭한 것임.
[주D-005]죽보(竹報) :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북도(北都)에는 오직 동자사(童子寺)에만 죽(竹) 한 과(窠)가 있어 길이가 겨우 두어 자쯤 되는데, 그 절에서 매일 죽의 평안을 올렸다." 하였다.
[주D-006]누인(累人) : 누(累)는 박(縛)의 뜻으로 유배자(流配者)의 자칭임. 양웅(楊雄)의 반이소(反離騷)에 "欽吊楚之湘纍"라 하였는데 그 주에 "죄로써 죽지 않은 것을 누(纍)라 한다.
[주D-007]금색신(金色身) : 부처를 말함. 《전등록(傳燈錄)》에 "西方有佛 其形長丈六而金身"이라 하였음. 여기서는 황달이 들어 몸이 노랗다는 뜻으로 쓴 것임.
[주D-002]불 속에서 솟아난 연꽃 : 《유마힐경(維磨詰經)》에 "불 속에서 연화가 나는 것은 이 이른바 드물게 있는 일인데, 욕(欲)을 지니고서 선(禪)을 행하는 것은, 역시 드물게 있는 것이 이와 같다." 하였음. 소식의 육연암시(陸蓮庵詩)에 "陸地生花安足怪 而今更有火中蓮"의 구가 있음.
[주D-003]오경(鼯徑)의 경해(警咳) : 다람쥐나 다니는 깊은 산길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쁘다는 뜻임.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에 "夫逃虛空者 藜藿柱乎鼪鼯之逕 跟位其空 聞人足音跫然而喜矣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라고 하였음.
[주D-004]훤음(萱蔭)의 자가(慈嘏) : 상대방의 자친(慈親)을 칭하여 훤당(萱堂)이라 하는데, 자가는 자친의 복을 이름. 《시경(詩經)》위풍(衛風) 백혜(伯兮)에 "焉得諼草 言樹之背"라 하였는데 '훤(諼)'은 '훤(萱)'과 같고, '배(背)'는 북당(北堂)을 칭한 것임.
[주D-005]죽보(竹報) :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북도(北都)에는 오직 동자사(童子寺)에만 죽(竹) 한 과(窠)가 있어 길이가 겨우 두어 자쯤 되는데, 그 절에서 매일 죽의 평안을 올렸다." 하였다.
[주D-006]누인(累人) : 누(累)는 박(縛)의 뜻으로 유배자(流配者)의 자칭임. 양웅(楊雄)의 반이소(反離騷)에 "欽吊楚之湘纍"라 하였는데 그 주에 "죄로써 죽지 않은 것을 누(纍)라 한다.
[주D-007]금색신(金色身) : 부처를 말함. 《전등록(傳燈錄)》에 "西方有佛 其形長丈六而金身"이라 하였음. 여기서는 황달이 들어 몸이 노랗다는 뜻으로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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