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8] |
한 차례의 감고(甘膏)가 옥초(沃焦)를 이룰 만한데 기다리던 편지마저 마을과 들녘이 흐뭇하고 즐기는 속에 떨어져오니 기쁨이 관정(灌頂)에 맞서는구려. 더더구나 비가 갠 이때 시하에 계신 영체 복안(福安)하시다니 축하를 드려 마지않사외다.
아우는 갈수록 병이 더하여 살맛이 없다오. 서본(書本)과 묵항(墨缸)은 잘 받았으나 늙은 힘이 갈수록 낡고 둔하여 하인을 세워놓고 빨리 쓸 수는 없으니 부득불 삼사일을 두고 기다려서 다시 계획할 수밖에 없소. 서태(徐台)에게도 참고 기다리라고 알려줌이 어떻겠소. 펄흙길에 하인이 간다기에 간신히 이만 적어 회사하며 갖추지 못하옵니다.
보(寶) 자는 붓끝이 신(神)을 따라 분방(奔放)하여 구애받는 것이 없으니 깊이 감복하는 바이나 다만 옛사람들의 거둬들이고 놓곤 하는 묘리는 매양 사자가 용쓰는 곳에서도 역시 일단의 원정(圓定)의 태가 있으니, 붓을 종이에 대고 팔을 운전할 때는 전혀 놓지도 않고 전혀 거둬들이지도 않지요. 이는 세심하고 눈 밝은 사람도 세 번 생각을 다하는 곳이지요. 한갓 서도만이 그런 게 아니라, 온갖 일에도 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영감에게는 어찌 하나의 서도에만 그칠 뿐이겠소. 글씨로 인하여 유를 미루어 큰 데로 나아가길 바라는 때문이외다.
[주D-001]관정(灌頂) : 불가에서 물이나 또는 제호(醍醐)로써 사람의 두정(頭頂)에 적시는데, 물과 제호는 불지(佛智)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지혜로써 사람의 이마에 적시어 그로 하여금 불과(佛果)를 얻게 하는 것임.
'▒ 완당김정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10] (0) | 2007.03.09 |
---|---|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9] (0) | 2007.03.09 |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7] (0) | 2007.03.09 |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6] (0) | 2007.03.09 |
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5] (0) | 200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