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암 희순 에게 주다[與沈桐庵 熙淳][6] |
푸른 잎은 살이 찌고 붉은 꽃은 여위어져 봄은 하마 여름이라 날마다 가람 빛을 마주 함에 그리움이 아득만 하더니, 바로 곧 성한을 받아, 삼가 살피건대, 곱고 따뜻한 철에 시하에 계신 영체 다복하시다니 칭송하길 마지않사외다.
아우는 너무도 재미진[勝境] 일은 없고 갈수록 더욱 치둔(癡鈍)할 따름입니다.
파도(坡圖 소동파의 그림)는 받들어 영수하온바, 시어(詩語)와 필의(筆意)가 모두 극히 아름답고 좋으며, 기탁(寄托)마저 이처럼 정중하오니 승당(承當)하기 불감하외다.
이 그림은 당초 북에서 올 때부터 연운(煙雲)의 변환(變幻)을 겪고 겪다가 필경 이 아우에게 돌아온 것은, 너무도 신기하여 자못 귀신이 감싸준 것 같았는데, 또 영감으로부터 보내올 줄을 어찌 뜻했겠소. 마치 주환벽귀(珠還璧歸)와 같아서 절대 우연은 아니라 생각되외다. 아무리 묵륜(墨輪)이 돌고 문자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이와 같이 한꺼번에 모이기란 역대 드물게 있는 일이니, 만약 영감의 정념(情念)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요.
따라서 영감의 필의(筆意)를 본 바 더욱더 증장(增長)됨이 있어서 지어(池魚)가 날마다 먹물 삼키는 것을 알 만하니, 매우 부럽고도 공경할 만한 일이며, 예학명(瘞鶴銘)은 이 기회에 또 찾아보내오니, 시험삼아 세심히 임서해 봄이 어떻겠소. 이는 바로 육조(六朝) 시대 사람의 글씨가 확실함과 동시에 기준(奇雋)하고 괴특(瑰特)하여 다른 글씨로는 대등할 바가 아니외다.
만약 산음(山陰) 이후로 변환무궁한 필세를 보고자 한다면, 이를 버리고서는 길이 없으니, 반드시 수십 번을 익히 모사해야만 손을 들여놓을 수 있는데, 오단(五段)의 잔석본(殘石本)이 없어서 함께 대증(對證)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외다. 나머지는 뒤로 미루고 갖추지 못하외다.
[주D-001]주환벽귀(珠還璧歸) : 주환은 후한(後漢) 맹상(孟嘗)이 합포태수(合浦太守)가 되어 오자 본디 이 고을에서는 곡실(穀實)이 생산되지 않고 바다에서 주보(珠寶)가 나왔는데 재수(宰守)들이 탐예(貪穢)하여 마구 캐가니 그 주보가 교지(交趾) 군계(郡界)로 옮겨 갔다.
[주D-002]지어(池魚)가……것 : 임지학서(臨池學書)를 말한 것임. 위야(魏野)의 시에 "洗硯魚呑墨烹茶鶴避煙)"이 있음.
[주D-003]예학명(瘞鶴銘) : 양(梁) 천감(天監) 13년에 화양진일(華陽眞逸)이 찬(撰)한 정서(正書)로, 문(文)은 왼편에서 시작하여 바른편으로 썼으며, 비는 강소(江蘇) 단도현(丹徒縣) 초산(焦山) 비탈 석상(石上)에 있었는데, 뒤에 강 속으로 떨어졌다가 송(宋) 순희(淳熙) 연간에 꺼냈다. 그 뒤 다시 강에 떨어졌다가 청(淸) 강희(康熙) 때 진붕년(陳鵬年)이 인부를 모집하여 꺼내었다. 모두 다섯 조각임. 화양진일은 도홍경(陶弘景)을 이름
[주D-002]지어(池魚)가……것 : 임지학서(臨池學書)를 말한 것임. 위야(魏野)의 시에 "洗硯魚呑墨烹茶鶴避煙)"이 있음.
[주D-003]예학명(瘞鶴銘) : 양(梁) 천감(天監) 13년에 화양진일(華陽眞逸)이 찬(撰)한 정서(正書)로, 문(文)은 왼편에서 시작하여 바른편으로 썼으며, 비는 강소(江蘇) 단도현(丹徒縣) 초산(焦山) 비탈 석상(石上)에 있었는데, 뒤에 강 속으로 떨어졌다가 송(宋) 순희(淳熙) 연간에 꺼냈다. 그 뒤 다시 강에 떨어졌다가 청(淸) 강희(康熙) 때 진붕년(陳鵬年)이 인부를 모집하여 꺼내었다. 모두 다섯 조각임. 화양진일은 도홍경(陶弘景)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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