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9]

천하한량 2007. 3. 9. 03:55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9]

하교(下敎)는 삼가 잘 알았습니다. 일전에 비교(批敎)가 있은 이후로 의당 재차 헤아림이 있기는 해야겠으나, 군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는 또한 오직 경(經)에 의거해서 행할 뿐입니다. 왜 《예기(禮記)》 치의(緇衣)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말할 수는 있으나 행하지 못할 것은 군자가 말하지 않는 것이고, 행할 수는 있으나 말하지 못할 것은 군자가 행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으니, 오늘의 사면(事面)도 의당 여기에 비추어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이번의 일은 평상적인 도리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또한 오직 분의(分義)를 십분 다하여 유감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은태(隱台)가 주선을 잘하여 합하의 처음 뜻[初志]을 이루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당면한 도리로 보아서는 아마도 마치 시위를 한번 떠난 화살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므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뿐이요, 화살의 힘이 다하는 곳에서는 또한 그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형편인 듯한데, 이런 때에 어찌 융통성 없는 사소한 절개를 과격하게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교하신 뜻을 살펴보니, 또한 스스로 재량하신 것이 있어 바둑판 밖에서 부질없이 떠드는 방관자(旁觀者)의 말을 기다리지 않으실 듯합니다.

[주D-001]은태(隱台) : 태(台)는 '대감'을 뜻하는 것으로 은(隱) 자의 호(號)를 가진 어느 대신(大臣)을 가리킨 듯하나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