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30] |
근래에는 우울하여 근심 고통이 심하고 위급하고 절박함으로 인해 초췌해지며, 이미 억눌린 자리는 활발하지 못한데, 또 오래 묵은 질병은 떠나지도 않아서 겁나고 두려운 심사(心思)를 수검(收檢)할 길이 없고, 손목은 느슨하게 풀리어 굽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허공을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풍륜(風輪)을 타고 도는 것 같기도 하여 승묵(繩墨)으로 바로잡으려 하면 더욱 어긋나고, 법도로 나가려 하면 더욱 어그러집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간직했던 글자도 다 사라져가서 우러러 대답할 바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녹음(綠陰)의 세상이 바뀌었는데, 열흘이 쌓이고 시절이 지나도 또한 스스로 머리 위의 세월 변천을 깨닫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혹 위곡(委曲)하게 살펴 비호해 주시더라도 도리(道理)와 의체(義諦)가 전혀 서로 닿지 않으니, 얼자(孼子)가 제멋대로 세인의 비위를 거스르고, 원한 맺힌 사람이 스스로 세상과 어긋남을 달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불신(佛辰)의 좋은 날에 건조한 바람이 녹음을 희롱하는 이때 균체도(勻體度)는 신명의 보우로 많은 복을 받으셨습니까? 만일 하찮은 병기(病氣)가 조금 그치고 화창한 기후에 따라 신기(神氣)가 왕성해지셨다면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즈음에 다시 어떤 빌미를 받는 일이 없으시기를 삼가 우러러 축원합니다.
서보국(徐輔國)이 일전에 합하의 문병(門屛)으로부터 와서 합하의 최근의 안부를 자못 매우 자상하게 말해 주므로 깊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감은 남북으로 돌아다니면서 하나의 노니는 이치를 터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며 부러워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혜지(惠持)는 수중(樹中)에서 입정(入定)을 하고 회선(回仙)은 북해(北海)와 남쪽 창오산(蒼梧山)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두 분의 광채(光彩)가 한판의 승부를 겨룰 만한데, 누가 능히 그 승부를 정할 수 있겠습니까.
정희는 전과 같이 목석(木石)처럼 완둔한데다 갈수록 더욱 초췌해지고, 갈수록 더욱 몸가질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노닐 계획으로 월초(月初)에 바로 등산(登山) 장비를 꾸려 가지고 합하의 행차를 따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일이 늦어져 어긋나서, 산에서 노닐자던 맹약은 어그러져가고 산림(山林)의 조롱은 풀기 어렵게 될 줄을 어찌 헤아렸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후일에 추후하여 이룰 것을 생각하노니, 완적(阮籍)의 길이 다하는 것은 감히 알지 못하겠으나 금상(禽尙)의 인연은 혹 이루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승(嶺僧) 성담(聖覃)이 요전에 합하의 분부로 인하여 찾아왔으므로, 이 무료하고 우울한 가운데 수일을 그와 함께 지내보니, 또한 대인(大人)의 주위에서 온 사람이라 남보다 초월한 데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찬함(象贊函)은 삼가 수령하였는데, 석추(石秋)의 모필(摸筆)의 세밀한 것이 석전(石篆)과 재능을 겨룰 만합니다. 모든 사물이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거의 원만하게 다스려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또 함중(緘中)에 소개한 그 각(刻)한 것은 요즘 또 상당 수준이 진보되었습니다. 소자인(小字印) 모회(摸繪)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에는 2백 년 이래로 이런 각이 없었습니다. 이원령(李元靈)이 이 법칙에 퍽 능하였고, 근래의 오(吳)·한(韓) 등의 무리는 모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곳입니다. 설령 그들이 익히 들은 바가 있다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대단히 이상스러운 입니다.병이 난 지가 지금 벌써 30일이 딱 찼는데 원기(元氣)가 끝없이 마모되어 빈 껍데기만 남아 있는 형편인지라, 서신 속의 간곡하신 말씀에 대해서나 인삼·녹용을 나눠주신 데 대해서 그냥 물끄러미 보고만 있을 뿐 감히 한마디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 한마디 사례도 드리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신기(神氣)가 아직도 접속되지 않아서, 붓을 들기가 마치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기만큼 어려운 지경이니, 어떻게 이런 지경을 다 헤아리시겠습니까.
[주D-001]불신(佛辰) : 석가(釋迦)의 탄신일(誕辰日)인 음력 4월 초8일을 가리킨다.
[주D-002]혜지(惠持)는……하고 : 혜지는 곧 진(晉) 나라 때의 고승(高僧)인 혜원(慧遠)의 아우로 역시 고승인 혜지(慧持)를 가리킨 듯한데, 여기서는 당시 관직에서 은퇴해 있던 권돈인(權敦仁)에게 비유한 말이다. 입정(入定)은 불교의 용어로 중이 선정(禪定)에 드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회선(回仙) : 송(宋) 나라 때 한 도사(道士)의 호칭임. 일찍이 동림산(東林山)에 은거하던 은사(隱士) 심사(沈思)가 십팔선백주(十八仙白酒)라는 술을 잘 빚었는데, 하루는 회도인(回道人)이라 자칭하는 한 손이 찾아와서 심사에게 "공(公)의 술을 마시고 싶어 찾아왔다." 하였다. 심사가 그를 맞이하여 함께 앉아서 그의 눈을 쳐다보니, 광채(光彩)가 유난히 반짝였고, 이어 얘기를 나누어 보니 세속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술을 내다가 날이 저물도록 실컷 마셨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윗글에 보이는 서보국(徐輔國)이라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十二 回先生過湖州……》
[주D-004]완적(阮籍)의……것 : 완적은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데, 그는 항상 수레를 타고 나가 놀다가 수레가 통할 수 없는 곳에 이르면 문득 통곡을 하고 되돌아왔던 데서 온 말로 즉 곤궁함을 비유한 말이다. 《晉書 卷四十九》
[주D-005]금상(禽尙) : 금은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인 금경(禽慶)을 말하고, 상은 역시 후한 때의 은사인 상장(尙長)을 이름. 상장은 일찍이 《노자(老子)》·《주역(周易)》에 정통한 학자로서 일찍부터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고, 자녀(子女)들의 가취(嫁娶)를 다 마친 뒤에는 가사(家事)를 단절하고 친구인 북해(北海)의 금경과 함께 오악(五嶽) 등의 명산을 주유(周遊)하였는데, 끝내 그들이 죽은 것을 알 수 없다고 한다. 《後漢書 卷八十三》
[주D-006]이원령(李元靈) : 조선 영조 때의 서화가로서 시·서·화 삼절(三絶)로 명성이 높았던 이인상(李麟祥)을 이름. 원령은 그의 자이다.
[주D-002]혜지(惠持)는……하고 : 혜지는 곧 진(晉) 나라 때의 고승(高僧)인 혜원(慧遠)의 아우로 역시 고승인 혜지(慧持)를 가리킨 듯한데, 여기서는 당시 관직에서 은퇴해 있던 권돈인(權敦仁)에게 비유한 말이다. 입정(入定)은 불교의 용어로 중이 선정(禪定)에 드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3]회선(回仙) : 송(宋) 나라 때 한 도사(道士)의 호칭임. 일찍이 동림산(東林山)에 은거하던 은사(隱士) 심사(沈思)가 십팔선백주(十八仙白酒)라는 술을 잘 빚었는데, 하루는 회도인(回道人)이라 자칭하는 한 손이 찾아와서 심사에게 "공(公)의 술을 마시고 싶어 찾아왔다." 하였다. 심사가 그를 맞이하여 함께 앉아서 그의 눈을 쳐다보니, 광채(光彩)가 유난히 반짝였고, 이어 얘기를 나누어 보니 세속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술을 내다가 날이 저물도록 실컷 마셨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윗글에 보이는 서보국(徐輔國)이라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十二 回先生過湖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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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5]금상(禽尙) : 금은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인 금경(禽慶)을 말하고, 상은 역시 후한 때의 은사인 상장(尙長)을 이름. 상장은 일찍이 《노자(老子)》·《주역(周易)》에 정통한 학자로서 일찍부터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고, 자녀(子女)들의 가취(嫁娶)를 다 마친 뒤에는 가사(家事)를 단절하고 친구인 북해(北海)의 금경과 함께 오악(五嶽) 등의 명산을 주유(周遊)하였는데, 끝내 그들이 죽은 것을 알 수 없다고 한다. 《後漢書 卷八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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