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8]

천하한량 2007. 3. 9. 03:54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8]

서리는 맑고 하늘은 높으며, 강은 공허하고 나뭇잎은 떨어지니, 천시(天時)는 또 이렇게 한번 변하였는데, 나라는 인간은 어둡고 흐리멍덩하여 깜깜하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마치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오고 하는 사이에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하니, 이것이 사람입니까, 하늘입니까? 파공(坡公) 같은 달관자(達觀者)로도 오히려 불변(不變)이라는 것에 착오됨을 면치 못하였으니, 변(變)과 불변(不變)의 사이에 있어 대강 어림잡아 보아 넘어가기는 쉽고 정밀하게 집어내서 이해하기는 어려움이 과연 이와 같단 말입니까?
밤은 길고 잠은 오지 않아 자리에 누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또한 얘기를 할 데가 없어 다만 합하만을 생각하며 우러러 칭송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즉시 삼가 하서(下書)를 받아보니, 마치 감발(感發)되는 것이 있는 듯하였습니다. 인하여 삼가 살피건대, 일기가 차가운 요즈음에 균체후(勻體候)가 많은 복을 받아 길이 편안하시고, 석장(舃杖)의 차림으로 또 선장(仙莊)을 나가시면, 땅에는 국화요 하늘에는 단풍이며, 돌은 푸르고 샘물에서는 옥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하셨습니다. 삼가 모두 합하를 정성스럽게 기꺼이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하정(下情)은 사모하고 부러워하여 더욱 간절히 우러러 송축하는 바입니다.
정희는 추위에 떠는 어리석고 둔한 사람으로 완악한 담(痰)은 한결같이 굳어져 가는데, 이 강가는 또 산야(山野)와 기후가 달라서 건강을 조절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나 천한 몸뚱이가 만나는 곳은 가릴 바가 없으니, 또한 운명에 맡길 뿐입니다.
12~13일께로 지시해 주신 말씀에 대해서는 감히 받들어 주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또한 굳이 양일(兩日)에 걸쳐서 기약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바로 12일에 사중(舍仲)을 데리고 나아가 찾아 뵙고 수일 동안 합하를 모시고 다니더라도 또한 거리낄 것이 없으니, 일체 합하의 재결을 따를 뿐입니다.

[주D-001]파공(坡公)……못하였으니 : 파공은 호가 동파(東坡)인 소식(蘇軾)을 이르는데, 이는 소식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대체로 그 변(變)하는 것을 가지고 본다면 천지(天地)도 일찍이 한 순간[一瞬]도 될 수가 없는 것이요, 그 변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본다면 물(物)과 내[我]가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