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3]

천하한량 2007. 3. 9. 03:53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3]

방금 가례(家隷)가 돌아가는 편을 인하여 삼가 사례의 서신을 갖추어 보냈으니, 혹 이것보다 먼저 받아 보실 듯도 합니다. 배가 들어온 편에 삼가 받들건대, 2월 초순 사이의 서함은 1개월에 불과한 최근의 서신이었고, 또 다달이 서신을 받고 보니, 종전의 오랫동안 서로 막혔던 때에 비교하매 기쁨이 소망 밖에 넘치어 마치 하늘 끝이나 바다 끝이 지척의 이웃처럼 느껴집니다.
춘사(春事)가 이제 농번기를 지났으니 또한 아마 푸르러 가는 임원(林園)에는 굵은 가지와 큼직한 잎새들이 하나의 비취(翡翠)의 무더기를 이루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높은 복을 받으시어 건강이 아주 좋으시고 부서(簿書)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어 생활이 아주 한적해서 시골의 전장에도 출입을 하시곤 한다 하니, 구구이 받들어 송축하며 멀리서 사사로이 사모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이 죄인은 모든 것이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데, 목석(木石)처럼 어둡고 완둔함이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하루 해가 마치 1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가운데 온갖 생각들이 벌떼처럼 떠오르고 조수처럼 밀려와서 창자가 꺾어지려 합니다. 더구나 또 좌관법(坐關法)만 있고 행각술(行脚術)은 없으므로 넓적다리의 살이 다 닳아 없어져서 자리를 두툼하게 깔지 않으면 편히 앉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섶나무 위에 눕고 흙덩이를 깔고 사는 사람으로서 얻을 수 있는 방편(方便)이겠습니까. 대단히 스스로 슬프고 가련합니다.
부쳐 주신 선전(扇箋)과 필묵(筆墨) 여러 건(件)은 하나하나 삼가 수령하였습니다. 부채에 쓴 서화(書畫)는 과연 좋은 작품입니다. 이는 곧 구향(甌香)의 필법이요, 석추(石帚)가 남긴 조격(調格)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들게 합니다. 대개 요즘에 사생(寫生)에 있어서는 반드시 남전(南田)을 종(宗)으로 삼고, 전사(塡詞)에 있어서는 멀리 백석(白石)을 따르는데, 풍격의 맑고 빼어남이, 산뜻하고 화려한 한 가지에 있어서는 부족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비록 소도(小道)이기는 하나, 또한 백안(白眼)으로 보아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깡마르고 초췌함은 절로 미인(美人)이나 향초(香草)에 의탁하고, 꽃을 완상하고 채색을 올리는 것은 또 푹 적시어 진액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지난번에 이른바 '변통(變通)하는 대인(大人)은 그것으로 소식(消息)을 한다.'는 것과 일리(一理)며 일례(一例)가 아니겠습니까. 항상 사모하여 특별히 우러러 떠받들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바입니다.
유명한 서전(書箋)을 보내 글자를 써 달라고 요구하시었는데, 원우죄인(元祐罪人)의 서(書)는 진실로 의당 금지하였던 바이거니와, 공동도사(空峒道士)의 문(文)도 또한 기휘되었으나, 다만 옥적 산중(玉笛山中)의 초당(草堂)의 영령(英靈)은 그리 나무라지 않을 터이니 감히 힘써 도모하여 합하의 지극한 뜻에 우러러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병든 팔목의 궂은 글씨가 더욱 소장 시절만 못하니, 어떻게 대담(大膽)하게 먹물을 떨어뜨릴지 모르겠습니다.
향묵(香墨)에 대해서는 비록 떨어진 데나 메우라고 하교하시었으나, 이는 대단히 긴요한 것입니다. 내가 방금 멀리 경중(京中)으로 사소묵(麝蘇墨)을 구하려고 했었는데, 이것을 얻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성(瑞星)은 대체로 북극 출지(北極出地)의 30도(度) 안팎의 지역에서는 다 보이는 것입니다. 대개 이 섬에서 비록 표(表)를 세우고 실제로 관측할 수는 없으나, 서성이 보이는 것으로 증험해 본다면 북극 출지는 역시 30도 안팎일 것이고, 서성의 출지는 6~7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성(濟城)은 한라산 북쪽에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고, 오직 이 읍(邑)만이 한라산 서남쪽에 위치하여 막히는 것이 없으므로, 매양 추분절이면 새벽에 정방(丁方)에서 나타나고, 깊은 겨울이나 초봄에 이르러서는 저녁에 나타나되, 또한 장방에서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삼호(參弧)가 서쪽으로 유전(流轉)함으로써 서성도 따라서 숨어 버린 것이니, 만촌(晩村)이 관측한 것이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이 죄인이 재작년 겨울 이 바다로 들어온 뒤에도 그것을 보았는데, 내가 사는 지붕 모서리에 똑바르게 서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혹은 보아도 알지 못하고 혹은 다른 큰 별 하나를 가리켜 서성이라고 하며, 혹은 한라산 절정에 올라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고도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폭소(爆笑)를 터뜨리게 합니다. 나머지는 이 다음에 갖추겠습니다.
관도인(貫道印)은 바로 신씨(申氏)집의 옛 소장품인데, ―신광위(申光緯)씨가 바로 영성위(永城尉)의 지친(至親)인데, 이 집에는 도장(圖章)과 고서화(古書畫)를 많이 소장하였다.― 이것은 고각(古刻)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출의(出意)와 안배(安排)를 이와 같이 고아(古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집이 소인의 외씨(外氏)와 세의(世誼)가 있어 외씨께서 각(刻)한 것도 그 집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익히 아는 바입니다.
듣건대, 그 법물(法物)들이 운연(雲煙)처럼 흩어졌다고 하더니, 이 관도인 또한 이렇게 유락(流落)되었는데, 지금 다행히 합하의 보주(寶廚)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물(舊物)을 합하의 법안(法眼)이 아니면 골동품(骨董品) 가게에서 집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 소인의 대략 들어서 알고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면 또한 이것을 기억해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은 비록 작으나 또한 큰 일에 비유할 수 있으니, 후생 소년(後生少年)이 그 누가 이를 이어서 능히 빼어남을 계발시킬 자가 있으며, 이 일등(一燈)을 이을 자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매양 실의(失意)하여 크게 탄식하는 것을 금하지 못합니다.
바람 불고 파도 치는 가운데서 갑자기 이것을 보니, 더욱 우울하여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내 집에 옛날 이것을 베낀 것이 한 장 있어 어렴풋이 알아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윤곽(輪郭)이 매우 이지러지고 약간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윤곽이 완연하니, 이것은, 혹 옛날 베낀 것은 모두 손가락으로 인주(印朱)를 칠했기 때문에 인색(印色)이 엷고 흐리며, 지금은 직접 인(印)으로 찍어냈기 때문에 인주가 흠뻑 많이 묻어서 더 환하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D-001]좌관법(坐關法) : 일종의 수양법(修養法)인 좌아관법(坐餓關法)의 약칭인데, 서역(西域)에서 온 한 승려가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대추만 하루에 몇 개씩 먹다가, 한 감실(龕室)로 들어가 앉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감실 문을 굳게 잠그고 또 그 위에 종이를 잘 바르도록 하고는, 여기에서 달포 이상씩을 지내기도 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즉 가만히 앉았기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행각술(行脚術) : 행각은 걸어서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닌 것을 말한다.
[주D-003]부채에……안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본 편지 열두 번째에서 이미 별행(別行)으로 나왔는데, 또 여기에 거듭 나온 것이다. 아마 편집의 과정에서 중복이 된 듯하다. 우선 그대로 번역을 해두는 바이다. 이 글 내용의 자세한 것은 제12번째 편지의 주석에 나타나 있다.
[주D-004]원우죄인(元祐罪人) : 원우는 송 철종(宋哲宗)의 연호. 원우 연간에 사마광(司馬光)을 비롯하여 문언박(文彦博)·소식(蘇軾)·정이(程頤)·황정견(黃庭堅) 등 문인과 학자 1백여 명이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함으로 인하여 이것이 끝내 당쟁(黨爭)이 되어, 마침내는 증포(曾布)·채경(蔡京) 등에 의해 이들이 원우간당(元祐姦黨)으로 지목되고 이어 원우간당비(元祐姦黨碑)까지 세워졌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공동도사(空峒道士) : 공동은 명(明) 나라 때의 문인인 이몽양(李夢陽)의 호. 이몽양이 일찍이 조서(詔書)에 응하여 상소(上疏)를 하였던바, 그 상소 가운데 '폐하께서 장씨에게만 후하다.[陛下厚張氏]'는 말이 있었는데, 그를 무척 증오하던 장학령(張鶴齡)이 상소 가운데서 이 대문만을 적출하여 "몽양이 모후(母后)를 헐뜯어 장씨라고 하였으니, 그 죄는 참(斬)에 해당합니다."라고 무고함으로써, 그는 결국 하옥(下獄)되었다.
[주D-006]초당(草堂)의 영령(英靈) : 이 말은 본디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서는 곧 상대방이 은거하고 있는 곳을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7]만촌(晩村) : 순조(純祖) 때의 문신으로 벼슬이 참판(參判)에 이르렀던 박종희(朴宗喜)의 호이다.
[주D-008]법물(法物) : 본디 불교의 용어로 법사(法師)에게서 전해 받은 가사(袈裟)·발우(鉢盂)·경전(經傳)·전답(田畓) 등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오는 구물(舊物)을 말한 것이다.
[주D-009]일등(一燈) : 불교의 용어로, 미암(迷闇)을 타파한 하나의 지혜(智慧)를 비유한 말임. 《화엄경(華嚴經)》 78에 "비유하자면 마치 하나의 등불이 암실(暗室)에 들어옴으로써 백천 년 동안의 어두움을 모조리 타파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