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5] |
남은 추위가 곧장 세밑까지 계속됨으로써 차가운 강 기운[江氣]도 따라서 침범하니, 노파(老坡)의 지옥(紙屋)과 죽탑(竹榻)은 걱정을 없애기에 부족하고 당위(党尉)의 고주(羔酒)를 천짐(淺斟)하던 것은 또한 내 본분(本分)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침이면 추워서 손을 불면서 더욱 가절(佳節)이 무료함을 깨닫고, 다만 산중에서 설수(雪水)로 차 끓이는 것이나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삼가 하서(下書)를 받고 겸하여 미주(美酒)와 산육(山肉 산짐승 고기)까지 받고 보니, 구미(口味)만 너무 호사로울 뿐 아니라,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던 증상도 진정되었습니다. 묘산 도사(茆山道士)의 연한 양고기와 은병의 술이 바로 하나의 본백(笨伯)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우러러 감사할 일이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차가운 밤에 제향(祭享)을 모신 나머지 균체도(勻體度)가 아직 전번의 병기(病氣)가 회복되지 못한 것이 있다 하시니, 반드시 푸른 돌, 푸른 물결 사이에서 정신을 기르고 진(眞)을 수양하여야만이 신바닥 밑의 누런 먼지를 크게 씻어낼 수 있을 터인데, 이 일이 과연 용이하지 않단 말입니까? 소인 같은 사람은 실로 세쇄한 일들을 견딜 수 없어 날아오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정희(正喜)의 수증(嗽症)은 실로 맑은 샘물을 힘입어, 비록 달팽이처럼 쭈그리고는 있으나 기침은 심하게 하지 않으니, 자못 이상한 일입니다.
두 첩(帖)에 대해서는 요즘에 창문 앞에 앉아 그 행묵(行墨)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진기한 작품이었습니다. 또 그 오방치(吳邦治)가 쓴 것의 필법은 고상하고 예스러워 사랑스럽고, 또 홍설재(鴻雪齋)의 글씨는 바로 이 저수량(褚遂良) 서법(書法)의 신수(神髓)인데, 모두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천하가 지극히 넓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 모두 들은 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혹 편방(偏方)의 견문이 미치지 못한 곳으로 즉 강소(江蘇)·절강(浙江) 사이에서 성대히 칭도되었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화록(畫錄)이나 서보(書譜)에서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씨(李氏) 화권(畫卷)의 청록(靑綠)빛은 더욱 그 선염(渲染)이 신묘함을 보겠으니, 옛 사람이 이른바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 골수(骨髓)에 들었다.'는 것을 비로소 이런 데서 논할 수 있겠습니다. 근래에는 한번 지나간 사물(事物)에 대해서 이 마음을 머물러 둔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것은 차마 선뜻 놓아 버릴 수 없어 우러러 잠시 여기에 두기를 바라노니, 이것이 사냥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이 생기는 기습(氣習)인가 싶습니다. 다만 산방(山房)의 설궤(雪几)에서와 같이 마주 앉아 평정(評訂)할 길이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주D-001]노파(老坡) : 송 나라 때의 문장가로 호가 동파(東坡)인 소식(蘇軾)을 이름.
[주D-002]당위(党尉)의……것 : 당위는 송 나라 때의 무신(武臣)인 당진(党進)을 이름. 그는 후관(候官)은 누차 역임했으나 위관(尉官)은 전혀 지낸 적이 없으니, 여기의 위(尉) 자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고주(羔酒)는 양구이와 좋은 술을 말하고, 천짐(淺斟)은 술을 조금 마시며 음미하는 것을 이름. 일찍이 당진의 집에 시희(侍姬)로 있던 여인이 뒤에 도곡(陶穀)의 첩이 되었는데, 하루는 눈이 내리자 도곡이 그에게 설수(雪水)를 가지고 차를 끓이라고 하면서 묻기를 "당씨(党氏)의 집에도 이런 운치가 있던가?" 하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저런 추솔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운치를 알겠습니까? 양고 미주(羊羔美酒)나 조금 마시면서 낮은 소리로 노래나 부르곤 했을 뿐입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묘산 도사(茆山道士) : 묘(茆)는 곧 모(茅)와 통용하므로 즉 모산(茅山)을 가리킨 듯함. 한(漢) 나라 때 모영(茅盈)이 그의 아우인 모고(茅固)·모충(茅衷)과 함께 구곡산(句曲山)에 들어가 모두 득도(得道)하여 신선이 되었으므로 이 산을 '모산'이라 개칭했다고 한다. 또는 양(梁) 나라 때 모산에 은거했던 도홍경(陶紅景)을 모산 도사라 일컫기도 한다.
[주D-004]본백(笨伯) : 비대(肥大)한 사람을 폄칭(貶稱)하는 말. 진(晉) 나라 때 사백(四伯 : 네 사람의 악자(惡者))이 있었는데, 즉 대홍려경(大鴻臚卿) 강얼(江臬)은 밥을 많이 먹는다 하여 곡백(穀伯)이라 하고, 예장 태수(豫章泰守) 사주(史疇)는 비대하다 하여 본백이라 하고, 산기랑(散騎郞) 장억(張嶷)은 교망(狡妄)하다 하여 활백(猾伯)이라 하고, 양담(羊耼)은 한려(狠戾)하다 하여 쇄백(鎖伯)이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홍설재(鴻雪齋) : 청 나라 때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황단서(黃丹書)의 호이다.
[주D-006]선염(渲染) : 화법(畫法)의 한 가지로서 색칠을 할 때에 한 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색을 엷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7]사냥하는……생기는 : 다른 사물(事物)을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옛날의 기량(技倆)을 드러내는 것을 비유한 말임. 송(宋) 나라 때 정호(程顥)가 일찍이 16~17세 때에 사냥하기를 좋아했었는데, 그 후 12년이 지난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전야(田野)에서 누가 사냥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近思錄 克己》
[주D-008]설궤(雪几) : 설(雪)은 희다는 뜻으로, 꾸밈이 없는 소박한 궤안(几案) 즉 소궤(素几)와 같은 뜻으로 쓰인 듯하다.
[주D-002]당위(党尉)의……것 : 당위는 송 나라 때의 무신(武臣)인 당진(党進)을 이름. 그는 후관(候官)은 누차 역임했으나 위관(尉官)은 전혀 지낸 적이 없으니, 여기의 위(尉) 자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고주(羔酒)는 양구이와 좋은 술을 말하고, 천짐(淺斟)은 술을 조금 마시며 음미하는 것을 이름. 일찍이 당진의 집에 시희(侍姬)로 있던 여인이 뒤에 도곡(陶穀)의 첩이 되었는데, 하루는 눈이 내리자 도곡이 그에게 설수(雪水)를 가지고 차를 끓이라고 하면서 묻기를 "당씨(党氏)의 집에도 이런 운치가 있던가?" 하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저런 추솔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운치를 알겠습니까? 양고 미주(羊羔美酒)나 조금 마시면서 낮은 소리로 노래나 부르곤 했을 뿐입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묘산 도사(茆山道士) : 묘(茆)는 곧 모(茅)와 통용하므로 즉 모산(茅山)을 가리킨 듯함. 한(漢) 나라 때 모영(茅盈)이 그의 아우인 모고(茅固)·모충(茅衷)과 함께 구곡산(句曲山)에 들어가 모두 득도(得道)하여 신선이 되었으므로 이 산을 '모산'이라 개칭했다고 한다. 또는 양(梁) 나라 때 모산에 은거했던 도홍경(陶紅景)을 모산 도사라 일컫기도 한다.
[주D-004]본백(笨伯) : 비대(肥大)한 사람을 폄칭(貶稱)하는 말. 진(晉) 나라 때 사백(四伯 : 네 사람의 악자(惡者))이 있었는데, 즉 대홍려경(大鴻臚卿) 강얼(江臬)은 밥을 많이 먹는다 하여 곡백(穀伯)이라 하고, 예장 태수(豫章泰守) 사주(史疇)는 비대하다 하여 본백이라 하고, 산기랑(散騎郞) 장억(張嶷)은 교망(狡妄)하다 하여 활백(猾伯)이라 하고, 양담(羊耼)은 한려(狠戾)하다 하여 쇄백(鎖伯)이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홍설재(鴻雪齋) : 청 나라 때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황단서(黃丹書)의 호이다.
[주D-006]선염(渲染) : 화법(畫法)의 한 가지로서 색칠을 할 때에 한 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색을 엷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7]사냥하는……생기는 : 다른 사물(事物)을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옛날의 기량(技倆)을 드러내는 것을 비유한 말임. 송(宋) 나라 때 정호(程顥)가 일찍이 16~17세 때에 사냥하기를 좋아했었는데, 그 후 12년이 지난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전야(田野)에서 누가 사냥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近思錄 克己》
[주D-008]설궤(雪几) : 설(雪)은 희다는 뜻으로, 꾸밈이 없는 소박한 궤안(几案) 즉 소궤(素几)와 같은 뜻으로 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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