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21] |
5~6일동안 모시고 기쁘게 지낸 것이 1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비록 10년 이전의 성장(盛壯)하던 때에도 일찍이 이토록 다사롭게 위로해 주심을 입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을 예전에 비교한다면 과연 지금이 예전보다 더 진보함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실상은 역시 지금이 예전보다 진보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예전보다 진보된 것은 곧 예전을 회상하고 지금을 헤아려 볼 때 충분히 한번 개탄할 만한 것이 있는 것뿐입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으로 능히 이렇게 맑은 샘물 소리와 푸른 돌 사이에 다사로운 위로의 자리를 마련한 것도 또한 지금의 상황 가운데 하루의 쾌승한 일이 될 뿐이요 예전보다 진보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상황을 비록 얻으려고 하더라도 또한 지금의 상황으로 능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를 돌려 생각하건대, 연운(煙雲)이 언뜻언뜻 변환하고 물이 줄어 돌이 드러나는 것도 끝내는 바로 산양(山陽)의 적보(篴步)나 황로(黃壚)의 산하(山河)와 같은 것이니, 이리저리 배회하며 슬퍼하면서 옛일을 사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전의 꿈을 계속시키는 것이나 지나간 일을 재현시키는 것은 또한 손에 가지고 놀 듯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온 이후로 여러 날이 지났으니, 강 위의 구름과 강가의 나무들이 점차로 더욱 텅 비고 쓸쓸해질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산중에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늪지대는 황량할 터인데, 겨울을 향하는 이때에 균체후(勻體候)는 순조로이 많은 복을 받으셨습니까?
졸자(拙字 자신의 글씨를 겸칭한 말임)의 모본(模本)에 대해서는 박군(朴君)이 이미 공정을 마쳤으므로, 이에 감히 원본(原本)과 아울러 바칩니다. 또 내가 세한(歲寒) 한 편을 써서 묵은 맹약을 펴기는 했으나, 자체(字體)의 모양이 세속의 법식에 들지 않았으니, 또 한 가지 비방을 얻게 될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혹 합하께서는 보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며, 산신령께서도 꾸짖지 않으시기만을 바랍니다. 지난날 벽(壁)에 낙서(落書)한 것도 이미 많은데, 부처님 머리에 똥 바르는 것이 무어 해로울 게 있겠습니까. 품천(品泉) 일지(一紙)에 대해서는 또한 감히 우러러 합하의 감정(鑑定)을 받아서 산중(山中)의 고사(故事)에 대비하겠습니다.
동짓달 초로부터 곧장 지금 세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이 먼지처럼 퇴적되어서 이를 쌓아올린다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까지도 닿을 만하여, 비록 거령(巨靈)의 선장(仙掌)으로도 쪼개 열어젖힐 길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늙으신 연세에 대한 하늘 같은 은혜와 숭신(嵩辰)에 대한 온 나라의 경축과 서루(西樓)에서 보궐(補闕)에 대비하는 것과 남산(南山)의 송축을 더하는 일 등에 대해서 한 글자도 충정을 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사(山寺)의 약속에 대해서는 세월이 하도 바삐 흐름에 따라 봉래(蓬萊)의 일월(日月)을 완상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재차 옛 약속을 거듭하지도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정리에 흠결이 있고 신근(信根)이 견고하지 못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토록 심한 추위와 심한 눈은 북녘에서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집은, 처마는 얕고 다 홑벽[單壁]이어서 바로 하나의 얼음집이요 눈구덩인데, 겸하여 한 점의 햇빛도 들어오지 않으므로 머리를 감히 이불 밖으로 쳐들지 못하고 손도 감히 토시[袖套] 속에서 내놓을 수가 없으며, 벼루와 붓이 꽁꽁 얼어붙는 것에 대해서는 또 헤아릴 겨를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럭저럭 세월을 끌어 오늘에 이르고 보니, 이 해에 한번 배알하려던 처음 먹은 마음을 끝내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삼가 끝까지 알아낼 수 없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친소(親疏)는 논할 것도 없이 평소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 몸이 합하의 문정(門庭)에 나타나는 것을 공공연히 시기하고 의심하는 듯하며, 또 스스로 정의가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여 비록 감히 막지는 않을지라도,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을 문득 해롭지 않게 여기어 마치 기색이 기뻐하는 듯함이 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내 현 상황의 이리저리 얽매이는 것이 마침 이 무리들의 소망에 잘 부응되고 있는 격이니, 이것이 무슨 까닭이란 말입니까? 반복하여 차가운 조소가 나옵니다.
근래에는 균체도(勻體度)가 신명의 보우로 많은 복을 받으십니까? 군자의 안주하신 곳이며 대인의 경계에는 아마도 반드시 산천이 윤기(潤氣)를 보호하고 초목이 우로(雨露)에 적셔짐으로 인하여 그 따뜻하게 적시어 다습고 화창한 기운이 하손(下潠)의 전사(田舍)에서 빙주(氷柱)·설거(雪車) 속에 덜덜 떨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흠앙하고 칭송하고 사사로운 정을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소인은 추위에 떨지 않은 날이 없으므로 인간 세상에 일종의 따뜻한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도 거의 모를 지경이니, 이 신세가 빙잠(氷蠶)이란 말입니까, 설서(雪鼠)란 말입니까?
가중(家仲 자신의 아우를 이르는 말)은 때아닌 학질을 앓았는데, 비록 이를 물리치기는 했으나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그 또한 늙은이이기에 빨리 회복을 하려고 해도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이 힘겨우니, 걱정스럽습니다. 또 이 걱정스러움 때문에 비록 선뜻 나가려고 하여도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한 밀승(蜜僧)이 양근(楊根)으로부터 강을 건너와서 합하의 초열흘날 산놀이 약속에 대하여 매우 실답고도 분명하게 전해 주니 우러러 하례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우러러 하례하는 까닭은 신기(神氣)가 왕성하시어 이전 병기(病氣)의 침범이 없는 것이 그 첫째이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해탈삼매(解脫三昧)에 들어가신 것이 그 둘째이고, 마치 소장(少壯) 시절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용감하게 곧바로 결단하신 것이 그 셋째입니다. 이것이 어찌 모두 노쇠한 사람으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공(公)께서는 바로 하나의 성세간(聖世間)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이 이것을 공에게 남겨 주어, 성세(聖世)의 하나의 한가로운 세계를 크게 장식하고 성세의 하나의 한가로운 사업을 원만히 성취하도록 한 것이니, 늘 있을 수 없는 이 같은 상서로운 세상이야말로 어찌 옛날 성군현상(聖君賢相)의 태평성대에만 그칠 뿐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례를 입으로는 다할 수 없어 이어서 두 손 모아 송축하여 스스로 마지않는 바입니다.다만 이 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또한 놀이하는 방술이 있는데, 그것은 대강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바로 신선의 놀이[仙遊]와 선가의 놀이[禪遊]와 유자의 놀이[儒遊]입니다. 그러므로 인산지수(仁山智水)와 옥약금추(玉籥金樞)와 화엄누각(華嚴樓閣)은 모두 그 성(性)에 가까운 것으로서 각각 경우에 따라 다를 뿐, 산은 본디 다름이 있지 않는 것이니, 능히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얻는 것이 또 과연 어떻겠습니까?
그 명유(名遊)라는 것 한 가지가 가장 가증스러운데, 명유라는 것은 바로 명성을 탐하여 노니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 산의 안팎을 통틀어 말하자면, 구룡연(九龍淵)과 만폭 팔담(萬瀑八潭)이 제일이고, 천일대(天一臺)·헐성루(歇惺樓)는 진기한 구경거리이며, 수미탑(須彌塔)은 기괴한 구경거리이고, 마하연(摩訶衍)은 10일 동안을 머물러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곳이며, 영원동(靈源洞) 또한 구경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그윽한 골짜기나 기이한 동굴과 하나의 암석이나 한 줄기의 계곡도 곳곳마다 있지 않은 데가 없어 스스로 일단의 볼 만한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명성을 탐할 만한 곳이 많거니와, 만물초(萬物草)가 더욱 좋으니 이것이 노년의 답산(踏山)하는 수고로움을 덜고 명성 탐하는 데로 쫓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중(山中)의 고사(故事)로서 상악(霜嶽)의 고실(故實)과 강향(降香)의 유적(遺迹)에 대해서는 하나도 전하는 것이 없고, 노춘(盧偆)이라 칭하는 한 가지 조항이 산천(山川)을 온통 포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합니다. 그리고 서산(西山)의 패엽(貝葉)과 대내(大內)에서 하사한 앵무라(鸚鵡螺)는 매우 기이한데, 앵무라는 바로 서양(西洋)의 제품(製品)입니다. 만력(萬曆) 이전에 이런 물건이 어떻게 유전(流轉)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유점사(楡岾寺)에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산행(山行)을 마치고 이미 돌아오셨을 듯합니다. 해악(海嶽)이 솟아나오고 영록(
매양 이 산에서 노닐고 돌아온 사람 가운데 혹은 '본 것이 들은 것만 못하다'고도 하는데, 이 말도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 무후(武侯 제갈량(諸葛亮)의 시호) 밑에 있었던 한 늙은 군졸이 진(晉) 나라 때까지 생존했었는데, 혹자가 무후에 대해서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무후가 살았을 때에는 보기에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후가 죽은 뒤에는 다시 이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였으니, 이 말을 옮겨다가 이 산의 공안(公案)으로 만들 만합니다. 감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유생(兪生)이 돌아오는 편에 '과피(瓜皮)' 두 글자에 대해 물어 주셨습니다. 《고정변정(古鼎辨定)》에 의하면, 비취반(翡翠斑)·주사반(朱砂斑)·율각색(栗殼色)·과피색(瓜皮色) 등의 구별이 있으니, 이 연구(聯句) 가운데 있는 말이 아마 이것을 인용한 듯합니다. 이 연구는 어떤 사람이 쓴 것이며 볼 만한 것이 있습니까?달포 전의 절 행차[寺屐] 때에는 이미 재차 합하를 방문하지는 못하고 절을 향해 용감하게 곧바로 가니, 송일(松日)이 금상(金像)을 환히 밝히었습니다. 이때 향등(香燈)을 켜고 포갈(蒲褐)을 입은 승려(僧侶) 서넛이 있어 충분히 먹을 갈고 종이를 펴고 하는 일을 도와줄 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장시간 써서 가득 쌓인 병풍서(屛風書)와 연구(聯句) 등을 다 수습하고 보니, 크고 작은 양목(洋木 당목(唐木)과 같음)이 수백 척이나 되고 지판(紙版)의 편액서(扁額書)도 이와 같았습니다. 이렇게 3~4일 동안 멋대로 마구 붓을 휘둘러 답답함을 일체 시원하게 풀었습니다. 또 풍문을 듣고 농지거리하는 산승(山僧) 약간의 무리가 있어 오는 대로 수응수답을 하다 보니, 먹이 다하여도 팔의 힘은 아직 남아 있어 퍽 일소(一笑)를 느꼈습니다.
마침 또 《유마경(維摩經)》을 판각(版刻)한 승려가 왔기에 스스로 일부(一部)를 취하고, 또 일부를 가지고 바로 상서(上書)를 마련하게 하여 즉시 전인(專人)을 시켜 강상(江上)에 우러러 바치도록 하였는데, 과연 착오가 없었습니다.
이 경(經)의 주(注)는 바로 우산(虞山)이 일컬은 바 '한 비로 공평하게 적셔준 것[一雨潤公]'이라고 한 것인데, 그것이 하나하나가 모두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부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묘희국(妙喜國)의 연기(緣起)는 자못 진량(津梁)에 관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왕 형공(王荊公 형공은 왕안석(王安石)의 봉호)이 이른바 '문장(文章)에 귀신 같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유마경》과 《능엄경(楞嚴經)》인데, 역장(譯場)에서 문장을 윤색(潤色)한 것이 《능엄경》보다 더 나은 것은 또한 시대(時代)의 승강(升降)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인가 봅니다.
이 승려 한민(漢旻)은 스스로 운구(雲句)라 호칭한 자로서, 작년부터 소인에게 내왕하였는데, 신근(信根)이 대단히 있고 원력(願力)도 대단히 있습니다. 비록 미처 제승(諸乘)을 두루 섭렵하지는 못했으나, 《금강경(金剛經)》·《능엄경(楞嚴經)》에 대해 공부를 퍽 많이 하였고, 그 정진(精進)하는 정성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문하(門下)에 나아가 직접 뵙고자 하는 뜻이 참으로 매우 간절하였으므로, 처음에는 소인이 갈 때에 함께 가려고 했었으나 지금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그 사람 혼자서 특별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그를 먼저 소개드리기 위하여 서신 한 장을 아울러 갖추었습니다.
또 한 승려 영기(永奇)는 자칭 남호(南湖)라는 자로서, 연전에 《아미타경(阿彌陀經)》과 《무량경(無量經)》을 판각하여 또한 이미 강상(江上)에 전달했던 자이니, 아마 생면(生面)은 아닐 듯합니다. 이 두 승려가 대원(大願)을 발하여 《화엄경(華嚴經)》을 간행하려 하고 있으니, 그 뜻이 또한 가상합니다.
[주D-001]산양(山陽)의 적보(篴步) : 적보는 젓대 소리의 자취를 말함. 진(晉) 나라 때 상수(向秀)가 혜강(嵆康)과 교의가 매우 깊었는데, 혜강이 사건에 연좌되어 처형되기 직전에 거문고를 한 번 타고 죽었던바, 그 후 상수가 산양에 있는 혜강의 구택(舊宅)을 지날 때에 그 이웃에서 젓대 부는 소리가 들리자, 문득 옛일을 추상(追想)하여 〈사구부(思舊賦)〉를 지은 고사 에서 온 말이다.《晉書 卷四十九》
[주D-002]황로(黃壚)의 산하(山河) : 황로는 황공주로(黃公酒壚 : 황공이 술을 마시던 곳)의 준말임. 진(晉) 나라 때 왕융(王戎)이 일찍이 황공주로를 지나다가 뒤에 따라오는 손에게 말하기를 "내가 옛날에 혜강(嵇康)·완적(阮籍)과 함께 이곳에서 술을 실컷 마시곤 했었는데, 혜강·완적이 죽고 난 오늘날에는 황공주로가 비록 가까이 있기는 하나 산하(山河)처럼 멀게 여겨진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四十三》
[주D-003]거령(巨靈)의 선장(仙掌) : 거령은 하신(河神)의 이름이고, 선장은 곧 하신의 손바닥을 가리킨 것으로, 장형(長衡)의 〈서경부(西京賦)〉 주(注)에 의하면, 하수(河水)의 중간에 산이 하나 있어 하수가 굽어 돌아서 흐르게 되므로, 하신이 손바닥으로 산의 윗부분을 쪼개 열어 젖히고, 발로 아랫부분을 갈라서 하류(下流)를 통하게 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뜻을 인용한 것이다.《文選 卷第二》
[주D-004]숭신(嵩辰) : 정초(正初)에 신민(臣民)들이 임금을 위해 만세 삼창(萬歲三唱)을 하는 것을 이름. 한 무제(漢武帝)가 원봉(元封) 원년 정월에 숭산(嵩山)에 올랐을 때 어디선가 천자를 축하하는 만세 삼창이 들려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남산(南山)의 송축 : 이 역시 임금을 위해 축수하는 말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당신은 남산이 영원한 것과 같이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리라.[如南山之壽 不騫不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하손(下潠)의 전사(田舍) : 하손은 지명(地名)으로,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일찍이 하손의 전사에서 손수 농사지어 추수(秋收)를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자세한 것은 《陶淵明集 卷三 丙辰歲八月中於下潠田舍穫》에 나타나 있다.
[주D-007]빙주(氷柱)·설거(雪車) : 원래는 당(唐) 나라 때 한유(韓愈)의 친구인 유차(劉叉)가 지은 두 시(詩)의 이름으로, 당시에 이 시가 아주 뛰어난 시로 알려졌기 때문에 후세에는 으레 남의 좋은 시를 일러 빙주·설거로 호칭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빙설(氷雪) 속의 추위에 관한 의미로만 인용한 것이다.
[주D-008]인산지수(仁山智水) : 이것은 유자(儒者)의 사상(思想)에 관한 설(說)로서 즉 공자(孔子)의 말에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옥약금추(玉籥金樞) : 이것은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에 관한 말인 듯하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황정외경경(黃庭外景經)》에 의하면 "玉匙金籥身完堅"이라는 말이 보인다.
[주D-010]화엄누각(華嚴樓閣) : 화엄은 본디 불교(佛敎)의 종지(宗旨)로서, 즉 불인(佛因)을 수행하는 가운데 그 만행(萬行)의 화(華)가 불과(佛果)를 장엄(莊嚴)하게 한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인데, 여기서는 곧 불자(佛子)들이 거주하는 사찰(寺刹)들을 이른 말이다.
[주D-011]여산(廬山)의 진면목 : 진(晉) 나라 때 여산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도연명(陶淵明)·육수정(陸修靜) 등 명유(名儒)·도사(道士)와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結成)하고 서로 아주 다정하게 종유(從遊)하였던 일을 가리킨다.
[주D-012]상악(霜嶽)의 고실(故實) : 상악은 산명(山名)인데, 신라 시대 사전(祀典)에 의하면 "상악은 고성군(高城郡)에 붙여 있는 명산으로 소사(小祀)에 속해 있다."고 되어 있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3]강향(降香)의 유적(遺跡) : 《화엄경(華嚴經)》에서 금강산(金剛山)을 일러 말하기를 "동해(東海) 가운데 팔만 유순(八萬由旬)의 산에 1만 2천의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예부터 향(香)과 폐백을 내리는 천자(天子)의 사자(使者)가 길에 잇달았다는 옛말에서 온 것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七》
[주D-014]노춘(盧偆)이라……조항 : 고려 때의 문인(文人)인 민지(閔漬)가 유점사(楡岾寺)에 대하여 쓴 기문(記文)에 "53불(佛)이 월지국(月氐國)으로부터 무쇠 종(鐘)을 타고 바다를 건너 안창현(安昌縣) 포구에 닿았는데, 이때 안창 현령인 노춘(盧偆)이 관속들을 거느리고 그곳에 가보니, 진흙 위에 찍혀 있는 여러 작은 발자국만 보였고, 나뭇가지는 모두 산 서쪽으로 쓰러졌고 또 종을 걸어 놓고 쉰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산 아래 와서 부처가 쉰 곳을 게방(憩房)이라 하니 그곳이 지금의 경고(京庫)이고, 문수(文殊) 보살이 비구니(比丘尼)의 몸으로 나타난 곳이 지금의 문수촌(文殊村)이며, 그때 한 여승(女僧)이 돌에 걸터앉아 있었던 곳이 지금의 이유암(尼遊巖)이고, 흰 개가 꼬리를 흔들며 길을 인도하던 곳이 지금의 구령(狗嶺)이며, 고개를 지나 노춘 일행이 목이 말라 샘을 파서 물을 마신 곳이 지금의 노춘정(盧偆井)이며, 여기서 수백 보를 가서 노루가 나타났고 또 조금 더 가서 종소리가 들려 기뻐하였으므로, 노루 본 곳을 장항(獐項)이라 하고 종소리 들은 곳을 환희령(歡喜嶺)이라 하였으며, 종소리를 따라 동문(洞門)으로 들어가니 여기에 못이 있고 못 위에는 느릅나무가 있는데, 종을 그 나뭇가지에 걸고 여러 부처들이 못 언덕에 죽 벌여 있었고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 그리하여 노춘이 관속들과 함께 부처에게 예배하고 돌아와서 왕께 아뢴 다음, 여기에 절을 창건하여 유점사라고 했다."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5]패엽(貝葉) : 인도(印度)의 다라수(多羅樹) 잎을 이르는데, 이 잎에 불경(佛經)을 베꼈으므로, 전하여 다라수잎에 적은 불경을 뜻한다.
[주D-016]앵무라(鸚鵡螺) : 바다에서 나는, 모양은 마치 앵무새처럼 생기고 개각(介殼)이 나선형(螺旋形)으로 된 연체동물(軟體動物)인데, 여기서는 곧 앵무라의 패각(貝殼)으로 만든 주기(酒器)를 이른 말이다.
[주D-017]영술(永述) : 신라 때 삼일포(三日浦)에서 놀았던 사선(四仙)으로 호칭되는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安祥) 중의 영랑과 술랑을 합칭한 말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8]신우(神宇) : 신(神)에게 제사하는 집으로, 즉 불사(佛寺) 등을 가리킨 말이다.
[주D-019]상말(像末) : 불교에서 말하는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의 세 시대 가운데 상법·말법의 시대를 이름. 정법 시대는 곧 석가(釋迦)의 입멸(入滅) 후 5백 년간으로서 석가의 교법(敎法)이 행하여지는 시대를 말하고, 상법 시대는 곧 정법 이후 천 년간을 이른 것으로 석가의 교법은 있으나 신앙이 형식화되어 불상(佛像)이나 사탑(寺塔) 등의 건축을 주로 하는 시대를 말하며, 말법 시대는 곧 상법 시대 이후의 약 1만 년간을 이른 것으로 이 기간에 불교가 가장 퇴폐해진다고 한다.
[주D-020]송일(松日) : 소나무 사이로 쏘아 비치는 태양빛을 이른 말이다.
[주D-021]우산(虞山)이……것 : 우산은 청(淸) 나라 때의 문인(文人) 전겸익(錢謙益)의 호임. '한 비로 공평하게 적셔준 것[一雨潤公]'이란 곧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에서, 부처의 설법(說法)은 똑같이 들어도 사람에 따라 깨달음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비유하여 "비록 한 땅에서 나고 한 비에 적셔져도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다.[維一地所生 一雨所潤 而諸草木各差別]"고 한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주D-022]불이법문(不二法門) : 불교의 용어로, 상대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법문(法門)을 이름. 《유마경(維摩經)》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참으로 훌륭하도다! 문자(文字)와 언어(言語)가 없는 것이 참으로 불이법문이니라." 하였다.
[주D-023]묘희국(妙喜國)의 연기(緣起) : 모희국은 유마거사(維摩居士)가 태어난 국토(國土)인데, 《유마경(維摩經)》 견아축불국품(見阿閦佛國品)에 의하면, 불(佛)이 사리불(舍利佛)에게 고하기를 "묘희(妙喜)라는 나라에 무동(無動)이라는 부처가 있으니, 이가 바로 유마힐(維摩詰)인데, 그 나라에서 죽어 이곳에 와서 환생하였다."라고 하였다. 연기는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응하여 만법(萬法)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는데, 연기에 관하여 수많은 경론(經論)들이 있다.
[주D-024]진량(津梁) : 물을 건너는 나루와 다리. 전하여 불교에서는 부처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것을 말한다.
[주D-025]제승(諸乘) : 승(乘)은 실어 운반하는 뜻으로, 즉 불가(佛家)에게 중생(衆生)을 싣고 생사의 고해(苦海)를 건너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교법(敎法)이니, 제승은 곧 소승(小乘)·대승(大乘) 등 여러 가지 교법을 이른 말이다.
[주D-002]황로(黃壚)의 산하(山河) : 황로는 황공주로(黃公酒壚 : 황공이 술을 마시던 곳)의 준말임. 진(晉) 나라 때 왕융(王戎)이 일찍이 황공주로를 지나다가 뒤에 따라오는 손에게 말하기를 "내가 옛날에 혜강(嵇康)·완적(阮籍)과 함께 이곳에서 술을 실컷 마시곤 했었는데, 혜강·완적이 죽고 난 오늘날에는 황공주로가 비록 가까이 있기는 하나 산하(山河)처럼 멀게 여겨진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四十三》
[주D-003]거령(巨靈)의 선장(仙掌) : 거령은 하신(河神)의 이름이고, 선장은 곧 하신의 손바닥을 가리킨 것으로, 장형(長衡)의 〈서경부(西京賦)〉 주(注)에 의하면, 하수(河水)의 중간에 산이 하나 있어 하수가 굽어 돌아서 흐르게 되므로, 하신이 손바닥으로 산의 윗부분을 쪼개 열어 젖히고, 발로 아랫부분을 갈라서 하류(下流)를 통하게 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뜻을 인용한 것이다.《文選 卷第二》
[주D-004]숭신(嵩辰) : 정초(正初)에 신민(臣民)들이 임금을 위해 만세 삼창(萬歲三唱)을 하는 것을 이름. 한 무제(漢武帝)가 원봉(元封) 원년 정월에 숭산(嵩山)에 올랐을 때 어디선가 천자를 축하하는 만세 삼창이 들려왔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남산(南山)의 송축 : 이 역시 임금을 위해 축수하는 말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당신은 남산이 영원한 것과 같이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리라.[如南山之壽 不騫不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하손(下潠)의 전사(田舍) : 하손은 지명(地名)으로,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일찍이 하손의 전사에서 손수 농사지어 추수(秋收)를 했던 데서 온 말인데, 자세한 것은 《陶淵明集 卷三 丙辰歲八月中於下潠田舍穫》에 나타나 있다.
[주D-007]빙주(氷柱)·설거(雪車) : 원래는 당(唐) 나라 때 한유(韓愈)의 친구인 유차(劉叉)가 지은 두 시(詩)의 이름으로, 당시에 이 시가 아주 뛰어난 시로 알려졌기 때문에 후세에는 으레 남의 좋은 시를 일러 빙주·설거로 호칭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빙설(氷雪) 속의 추위에 관한 의미로만 인용한 것이다.
[주D-008]인산지수(仁山智水) : 이것은 유자(儒者)의 사상(思想)에 관한 설(說)로서 즉 공자(孔子)의 말에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옥약금추(玉籥金樞) : 이것은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에 관한 말인 듯하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황정외경경(黃庭外景經)》에 의하면 "玉匙金籥身完堅"이라는 말이 보인다.
[주D-010]화엄누각(華嚴樓閣) : 화엄은 본디 불교(佛敎)의 종지(宗旨)로서, 즉 불인(佛因)을 수행하는 가운데 그 만행(萬行)의 화(華)가 불과(佛果)를 장엄(莊嚴)하게 한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인데, 여기서는 곧 불자(佛子)들이 거주하는 사찰(寺刹)들을 이른 말이다.
[주D-011]여산(廬山)의 진면목 : 진(晉) 나라 때 여산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도연명(陶淵明)·육수정(陸修靜) 등 명유(名儒)·도사(道士)와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結成)하고 서로 아주 다정하게 종유(從遊)하였던 일을 가리킨다.
[주D-012]상악(霜嶽)의 고실(故實) : 상악은 산명(山名)인데, 신라 시대 사전(祀典)에 의하면 "상악은 고성군(高城郡)에 붙여 있는 명산으로 소사(小祀)에 속해 있다."고 되어 있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3]강향(降香)의 유적(遺跡) : 《화엄경(華嚴經)》에서 금강산(金剛山)을 일러 말하기를 "동해(東海) 가운데 팔만 유순(八萬由旬)의 산에 1만 2천의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예부터 향(香)과 폐백을 내리는 천자(天子)의 사자(使者)가 길에 잇달았다는 옛말에서 온 것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七》
[주D-014]노춘(盧偆)이라……조항 : 고려 때의 문인(文人)인 민지(閔漬)가 유점사(楡岾寺)에 대하여 쓴 기문(記文)에 "53불(佛)이 월지국(月氐國)으로부터 무쇠 종(鐘)을 타고 바다를 건너 안창현(安昌縣) 포구에 닿았는데, 이때 안창 현령인 노춘(盧偆)이 관속들을 거느리고 그곳에 가보니, 진흙 위에 찍혀 있는 여러 작은 발자국만 보였고, 나뭇가지는 모두 산 서쪽으로 쓰러졌고 또 종을 걸어 놓고 쉰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산 아래 와서 부처가 쉰 곳을 게방(憩房)이라 하니 그곳이 지금의 경고(京庫)이고, 문수(文殊) 보살이 비구니(比丘尼)의 몸으로 나타난 곳이 지금의 문수촌(文殊村)이며, 그때 한 여승(女僧)이 돌에 걸터앉아 있었던 곳이 지금의 이유암(尼遊巖)이고, 흰 개가 꼬리를 흔들며 길을 인도하던 곳이 지금의 구령(狗嶺)이며, 고개를 지나 노춘 일행이 목이 말라 샘을 파서 물을 마신 곳이 지금의 노춘정(盧偆井)이며, 여기서 수백 보를 가서 노루가 나타났고 또 조금 더 가서 종소리가 들려 기뻐하였으므로, 노루 본 곳을 장항(獐項)이라 하고 종소리 들은 곳을 환희령(歡喜嶺)이라 하였으며, 종소리를 따라 동문(洞門)으로 들어가니 여기에 못이 있고 못 위에는 느릅나무가 있는데, 종을 그 나뭇가지에 걸고 여러 부처들이 못 언덕에 죽 벌여 있었고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 그리하여 노춘이 관속들과 함께 부처에게 예배하고 돌아와서 왕께 아뢴 다음, 여기에 절을 창건하여 유점사라고 했다."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5]패엽(貝葉) : 인도(印度)의 다라수(多羅樹) 잎을 이르는데, 이 잎에 불경(佛經)을 베꼈으므로, 전하여 다라수잎에 적은 불경을 뜻한다.
[주D-016]앵무라(鸚鵡螺) : 바다에서 나는, 모양은 마치 앵무새처럼 생기고 개각(介殼)이 나선형(螺旋形)으로 된 연체동물(軟體動物)인데, 여기서는 곧 앵무라의 패각(貝殼)으로 만든 주기(酒器)를 이른 말이다.
[주D-017]영술(永述) : 신라 때 삼일포(三日浦)에서 놀았던 사선(四仙)으로 호칭되는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安祥) 중의 영랑과 술랑을 합칭한 말이다. 《新增東國輿志勝覽 卷四十五》
[주D-018]신우(神宇) : 신(神)에게 제사하는 집으로, 즉 불사(佛寺) 등을 가리킨 말이다.
[주D-019]상말(像末) : 불교에서 말하는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의 세 시대 가운데 상법·말법의 시대를 이름. 정법 시대는 곧 석가(釋迦)의 입멸(入滅) 후 5백 년간으로서 석가의 교법(敎法)이 행하여지는 시대를 말하고, 상법 시대는 곧 정법 이후 천 년간을 이른 것으로 석가의 교법은 있으나 신앙이 형식화되어 불상(佛像)이나 사탑(寺塔) 등의 건축을 주로 하는 시대를 말하며, 말법 시대는 곧 상법 시대 이후의 약 1만 년간을 이른 것으로 이 기간에 불교가 가장 퇴폐해진다고 한다.
[주D-020]송일(松日) : 소나무 사이로 쏘아 비치는 태양빛을 이른 말이다.
[주D-021]우산(虞山)이……것 : 우산은 청(淸) 나라 때의 문인(文人) 전겸익(錢謙益)의 호임. '한 비로 공평하게 적셔준 것[一雨潤公]'이란 곧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에서, 부처의 설법(說法)은 똑같이 들어도 사람에 따라 깨달음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비유하여 "비록 한 땅에서 나고 한 비에 적셔져도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다.[維一地所生 一雨所潤 而諸草木各差別]"고 한 말을 전용(轉用)한 것이다.
[주D-022]불이법문(不二法門) : 불교의 용어로, 상대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법문(法門)을 이름. 《유마경(維摩經)》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참으로 훌륭하도다! 문자(文字)와 언어(言語)가 없는 것이 참으로 불이법문이니라." 하였다.
[주D-023]묘희국(妙喜國)의 연기(緣起) : 모희국은 유마거사(維摩居士)가 태어난 국토(國土)인데, 《유마경(維摩經)》 견아축불국품(見阿閦佛國品)에 의하면, 불(佛)이 사리불(舍利佛)에게 고하기를 "묘희(妙喜)라는 나라에 무동(無動)이라는 부처가 있으니, 이가 바로 유마힐(維摩詰)인데, 그 나라에서 죽어 이곳에 와서 환생하였다."라고 하였다. 연기는 인(因)과 연(緣)이 서로 응하여 만법(萬法)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는데, 연기에 관하여 수많은 경론(經論)들이 있다.
[주D-024]진량(津梁) : 물을 건너는 나루와 다리. 전하여 불교에서는 부처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것을 말한다.
[주D-025]제승(諸乘) : 승(乘)은 실어 운반하는 뜻으로, 즉 불가(佛家)에게 중생(衆生)을 싣고 생사의 고해(苦海)를 건너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교법(敎法)이니, 제승은 곧 소승(小乘)·대승(大乘) 등 여러 가지 교법을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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