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8]

천하한량 2007. 3. 9. 03:51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8]

하늘의 보우로 세자(世子)를 얻으시어 자전(慈殿)께 경사가 거듭 이르니, 원조(元朝)에 신민(臣民)들이 뜰에서 만세(萬歲)를 부름으로써 성상(聖上)의 효성이 더욱 빛났습니다. 그리하여 바닷가나 산모퉁이에서까지도 모두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기뻐합니다.
삼가 듣건대, 성상께서 특별히 합하를 간택하시어 거듭 중서(中書)에 들여보내심으로써, 사마(司馬)가 다시 재상이 된 데 대한 기쁨으로 도서(島嶼) 지방 아이들이나 바닷구석의 늙은이들까지도 오운(五雲) 삼태(三台)에 머리를 쳐들고 우러르면서 서로서로 기쁨을 나누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와서, 군자(君子)의 도(道)가 성장하는 일대 기회입니다. 이는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명한 백성들도 다 아는 이치이니, 어찌 식견 있는 사대부(士大夫)만이 알 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합하께서 익숙한 길에서 경쾌한 수레 몰기와 같은 그 직임에 대하여 자꾸만 머뭇거리고 조심하여 마치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처럼 하시는 것은, 바로 도서 지방 아이들이나 바닷구석의 늙은이들이 서로서로 기쁨을 나눈 데 대하여 과연 그들의 소망을 다 채워주기 어려운 점이 있는 까닭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임천(林泉)의 사이에 물러가서 근심하시는 것이 바로 낭묘(廊廟 조정을 말함) 위에 나아와 근심하시는 것과 조금도 서로 더하고 덜하거나 같고 다를 것이 없어 어느 때나 이 국사를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물러가서 근심하던 것과 현재 나아와서 근심하는 것을 어찌하여 달리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 머뭇거리며 조심하는 마음과 나아가나 물러가나 모두 근심하게 되는 뜻을 미루어, 겸광(謙光)과 하제(下濟)를 시행하여 태(泰)로써 비(否)를 소통시킨다면, 임금을 보상(輔相)하는 정당함만 있고 재상 지위로 곤경을 당할 일은 없으며, 건척(乾惕)의 무구(无咎)만 있고 항룡(亢龍)의 유회(有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깊이 틀어박혀서 세상에 뜻이 없는 이 소인(小人)도 두 손을 이마에 올리고 기뻐하면서 영광을 함께 하여 저절로 건장해질 것입니다.
《해국도지(海國圖志)》는 바로 필수적인 책으로서 나에게는 마치 다른 집의 여러 가지 보배와 같습니다. 홍박(紅舶)이 혹 국경을 넘어오는 때가 있을 경우에는 중문격탁(重門擊柝)의 뜻에 있어 또 어찌 작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나라의 형세를 살피는 자들은 이를 모방하여 시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은 매양 마음이 거칠어서 자세하게 보지 못하니, 매우 한탄스럽습니다. 비록 그 선제(船制)를 다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돛을 다루는 한 가지 기술은 충분히 모방하여 시행할 만한 것인데, 그토록 하나도 여기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대체로 위묵심(魏黙深)의 학문은 요즘의 한학(漢學) 가운데서 별도로 하나의 문호를 개척하여 고훈(詁訓)이나 공언(空言)을 지키지 않고 오로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로 삼았으므로, 그가 경서(經書)를 설명한 것은 혜동(惠棟)·대진(戴震) 같은 여러 학자들과 크게 다릅니다. 그는 또 군사(軍事)를 담론하기 좋아하였는데, 일찍이 그의 성수편(城守篇) 등의 글을 보았던바, 지금 이 《해국도지》에 들어있는 주해론(籌海論)이 바로 성수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됩니다. 우리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이름)이 왜적을 멸살시킨 법이 바로 그 법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경이롭고 신묘함을 느끼게 됩니다.
요즘에 또 공슬(龔璱)이란 사람이 있어 그 학문의 조예가 위묵심과 서로 비슷하고 또 서로 가까이 지내며, 저서(著書)도 매우 많다고 하는데, 그의 글을 두루 읽어 볼 길이 없어서 한스럽습니다. 대강(大江)의 남북에는 이러한 사람이 매우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할 뿐입니다. 부질없이 이렇게 우러러 번거롭게 하고 보니, 황공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요즘에 달리 마음 붙인 것은 없고, 약간처(若干處)에서 자못 구해(究解)를 얻은 나머지 우연히 성운(聲韻)에 대하여 논급(論及)한 것 한 조항이 있어, 감히 이렇게 기록하여 올리오니, 보시고 바로잡아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소인은 평소에 저술(著述)한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싶지 않아서 이와 같은 문자(文字)를 문득 남겨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단지·식초 항아리나 덮는 데에 쓰더라도 안 될 것이 없으니, 즉시 명하여 찢어 버리시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빕니다. 이 밖에 또 여러 갈래의 설화(說話)를 뱉어낼 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직접 면전(面前)에서 손바닥을 치며 한때의 담소(談笑)에 도움이 되어드릴 길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보름 뒤의 등산(登山)은 과연 다시 하실 예정이십니까? 마침 속담 한마디를 들은 것이 있어, 존엄하신 어른 앞에 당돌히 말씀드리는 것이 매우 잗달고도 황송스러움을 잘 알면서도 감히 특이한 견문을 넓혀 드리고자 말씀드리오니, 하해 같으신 아량으로 또한 의당 포용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범을 만나 엉겹결에 범의 등으로 뛰어오르자, 범 또한 놀라서 안절부절하였는데, 마침내 그 범을 타고 마을로 내려가니, 아동들이 손뼉을 치며 일제히 외치기를 '범을 탄 신선[騎虎仙人]'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신선은 신선이다마는 대단히 고통스럽구나."
라고 했다 합니다. 실상 범을 탄 것은 곧 부득이한 일이었고, 신선이라는 것은 곧 아동들이 보고 이상하게 느껴서 한 말이며, 대단히 고통스럽다는 것이 바로 그 실정인 것입니다.
나는 매양 보건대, 명산(名山)·복지(福地)에는 신선만 있고 범은 없었으니, 어떻게 하면 명산·복지에서 신선의 낙을 길이 누릴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연 일소(啞然一笑)가 나옵니다.
낙화생(落花生)은, 남중(南中) 사람으로 종자를 전해온 자가 있는데, 이것은 촉중(蜀中)의 진기한 과실로서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기이한 과실로서 충분히 수선화(水仙花)와 아름다움을 견줄 만합니다. 감히 식단(食單)의 한 가지에 대비하는 바이니, 이것은 반드시 껍질까지 통째로 볶아서 익힌 다음에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주D-001]사마(司馬)가……기쁨 : 어진 재상이 다시 조정에 들어온 데 대하여 백성들이 환영하는 것을 비유한 말. 송 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이 낙양(洛陽)에 15년 동안 있을 적에 천하에서 그를 진재상(眞宰相)이라 칭하여 시골 백성들도 모두 그를 사마 상공(司馬相公)이라 불렀는데, 그가 다시 재상이 되어 대궐에 이르자, 위사(衛士)들이 그를 바라보고 모두 두 손을 이마에 올려 기쁨을 표시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卷三百三十六》
[주D-002]오운(五雲) 삼태(三台) : 오운은 선인(仙人)이 사는 곳으로 전하여 대궐(大闕)을 뜻하고, 삼태는 성명(星名)으로 즉 삼공(三公)인 재상을 의미한 것이다.
[주D-003]겸광(謙光)과 하제(下濟) : 겸광은 《주역(周易)》 겸괘(謙卦) 단사(彖辭)"겸은 높은 이가 광명해지는 것이다.[謙尊而光]" 한 데서 온 말로, 높은 이가 겸손하면 덕이 더욱 빛난다는 뜻이고, 하제는 역시 겸괘(謙卦) 단사(彖辭)의 "천도는 아래로 행하여 광명한 것이다.[天道下 濟而光明]" 한 데서 온 말로, 위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주D-004]건척(乾惕)의 무구(无咎)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효삼사(九爻三辭)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 저녁까지 삼가 두려워하면 허물이 없으리라.[君子終日乾乾 夕惕若厲 无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항룡(亢龍)의 유회(有悔) :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구효사(上九爻辭)의 말인데, 즉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극히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사람이 조심하고 겸퇴할 줄 모르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홍박(紅舶) : 홍은 곧 홍모(紅毛)가 난 서양인(西洋人)들을 통칭한 말로, 천주교도(天主敎徒)나 또는 침구(侵寇)해 오는 서양인들의 선박(船舶)을 이른 말이다.
[주D-007]중문격탁(重門擊柝) : 문을 겹겹이 세워 단속을 엄히 하고, 딱다기를 치며 야경을 돌아 경계를 엄중히 하는 것을 이른 말로, 여기서는 국경의 방비를 튼튼히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8]위묵심(魏黙深) : 청(淸) 나라 때의 학자로 자가 묵심인 위원(魏源)을 이르는데, 그에게는 바로 윗글에 나오는 《해국도지(海國圖志)》 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