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5]

천하한량 2007. 3. 9. 03:49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5]

조가(朝家)의 대사(大事)를 이제 이미 완성하였으니, 번상(樊上)의 어조(魚鳥)에게도 또한 정이 끌릴 듯합니다. 출처와 진퇴를 세밀히 척촌(尺寸)으로 재단하시어 의당 여유가 작작하실 터이니, 나 같은 소인의 얕은 국량으로 헤아릴 바는 아닙니다마는, 길보(吉甫)의 목여(穆如)의 노래가 중산보(仲山甫)를 길이 생각하는 데에 늘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희는 병기(病氣)가 매우 뒤틀어집니다. 지금 비록 위도(胃道)는 조금 트이어 유후(留候)의 벽곡(辟穀)을 그만두고 다시 억지로 밥을 먹기는 하나, 민중(閔仲)의 저간(猪肝)은 또한 안읍(安邑)에 누를 끼칩니다. 입과 코의 남은 병기가 또 눈에 발작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풍화(風火)의 작용으로서 어떻게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다년간의 장독(瘴毒)이 서로 발작하여 눈이 마치 안개 속에 있는 사람처럼 희미하고 어른어른거려서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고, 밥을 먹을 때에는 국물인지, 고깃점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옆 사람이 인도를 해 준 다음에야 비로소 그를 따라서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평소 의지하여 생명처럼 여기던 서권(書卷)도 일체 손에서 놓아버리고 보니, 밤 길이가 1년과 같아서 닭 우는 소리가 기다려지는 것이 마치 겨우내 칩복한 온갖 벌레들이 새봄을 맞이한 것과 같고, 새벽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마치 천하가 문명(文明)해지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또 한 달,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 애간장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비록 마음을 발작시키지 않기를 마치 제2의 부처님과 같이 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듯합니다.
보내주신 인삼(人蔘)에 대해서는 주는 대로 사양치 않고 받아서 마치 나에게 본디 있는 것처럼 복용하고 있으니, 이 어떤 공덕입니까. 만일 지난번에 주신 것으로 바싹 마른 창자를 적셔주지 않았더라면 이 실낱 같은 완둔한 목숨을 지금까지 연장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에 그것이 떨어졌는데, 또 계속하여 대주시는 성대한 은덕으로 끊임없이 감로수(甘露水)를 정수리에 부어주심을 입으니, 우러러 감사할 뿐입니다.
붓은 마치 끝이 두 개인 듯, 획은 마치 두 갈래로 그어진 듯이 눈이 몹시 어른거립니다. 글자를 쓰기가 이와 같이 어려워서 전혀 행(行)을 이루지 못하니, 더더욱 송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석암(石庵 청 나라 유용(劉墉)의 호)의 이것저것 써 놓은 연구(聯句)에서도 또한 유희(遊戲)하는 한 가지 법칙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그 진짜와 가짜 사이에 있어서는 전형(典型)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석암의 글씨가 진짜와 가짜가 가장 많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안목을 갖추어야만 그것을 변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암 글씨의 가짜는 마치 동향광(董香光 향광은 명 나라 동기창(董其昌)의 호)에게 대필자(代筆者) 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바로 그의 문정(門庭)에서 나온 것이므로, 비록 그 신수(神隨)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 없고, 색상(色相)도 오히려 아주 비슷합니다. 그래서 노병(老兵)의 전형도 또한 흥취를 돋구기에 충분한데, 다시 뭐가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구선(臞仙)의 이름은 영충(永忠)이고 자는 거선(渠仙)이며 또 한 자는 양보(良輔)인데, 패륵(貝勒) 홍명(弘明)의 아들로 보국장군(輔國將軍)에 봉해졌고, 저서에는 《연분당집(延芬堂集)》이 있습니다.
숭산(嵩山)의 이름은 영혜(永㥣)인데, 강친왕(康親王) 숭안(崇安)의 아들입니다.
저선(樗仙)의 이름은 서성(書誠)이고 자는 실지(實之)이며 또 한 자는 자옥(子玉)인데, 봉국장군(奉國將軍)에 봉해졌고, 저서에 《정허당집(靜虛堂集)》이 있습니다.
소국도인(素菊道人)의 이름은 영경(永璥)이고 자는 문옥(文玉)이며 또 한 자는 익재(益齋)인데, 보국공(輔國公) 홍진(弘晉)의 아들로서 저서에 《청훈당집(淸訓堂集)》이 있습니다.
20년 전에 일찍이 만주(滿洲)의 왕공(王公)·패륵(貝勒) 등 제인(諸人)의 시(詩)·화(畫)에 뛰어난 사람들을 초록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 원권(原卷)을 서울 집에서 찾아보도록 하였으나, 그것이 어느 곳에 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좀먹은 상자 속에 일찍이 초록해 놓은 목록(目錄)으로 찢어진 종이 한두 조각이 있어 이를 조사해 본 결과, 이 네 사람이 모두 초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속히 다시 베껴서 올립니다. 이 또한 묵륜(墨輪)이 구른 것이라, 미리 서로 부합한 바가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매우 기이하고 유쾌하게 여겼습니다.
이 네 사람은 시·화에 뛰어나서 대강(大江) 남북쪽의 여러 명사들보다 못하지 않아 육비(陸飛)·엄성(嚴誠)과 지극한 교의가 있었습니다. 육비·엄성은 모두 강남(江南)의 고사(高士)로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사귀지 않았으나, 이 네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과 친분을 맺었으니, 이 네 사람의 위인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구선(臞仙)·저선(樗仙) 두 사람의 시는 강남의 칠자(七子)보다 못하지 않는데, 그 원권을 찾아 즉시 올리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이 네 사람이 한창 한묵(翰墨)으로 명성을 떨치던 때가 바로 홍담헌(洪湛軒 담헌은 홍대용(洪大容)의 호)이 연경(燕京)에 들어갔을 때인데, 담헌 어른이 육비·엄성과는 아주 친숙했으나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니, 대단히 괴이쩍은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연경에 들어가 교유(交遊)가 성대했던 분으로는 매양 담헌을 먼저 칭도하는데, 그분이 이런 한묵의 소소한 일에도 이와 같이 소루하였으니, 이보다 큰 일에 대해서야 또 어찌 논할 것이나 있겠습니까. 담헌뿐만이 아니라, 비록 박초정(朴楚亭 초정은 박제가(朴齊家)의 호) 같은 이도 간 곳마다 착오를 범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개탄하며 애석히 여기게 합니다.
만주(滿洲) 사람들을 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새효정(塞曉亭)·몽문자(夢文子)·영몽당(英夢堂)·영몽선(英夢禪) 등 제인은 모두 용호(龍虎)와 같아서 누가 용이고 범인지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화징록(畫徵錄)》과 《화림신영(畫林新詠)》에는 수록한 것이 퍽 많으나, 이 네 사람의 경우는 한 사람도 채록되지 않았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20년 전의 일을 지금 다시 기억할 수가 없었는데, 번(樊)으로부터 돌아온 지 수일 후에야 비로소 옛일을 기억하게 되어 지난 일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웃었으니, 이는 오히려 초록해 놓은 찢어진 종이 조각으로 고증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잠깐 동안의 얕은 총기(聰氣)와 둔필(鈍筆)이 일찍이 미치지 못한 것을 망녕되이 믿은 것이 또 한두 가지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쇠퇴해진 백발의 늙은이로 연운(煙雲)을 다시 수습하려고 한들 될 수가 있겠습니까. 가슴속이나 머리속이 마치 그림자처럼 희미하여 다만 한번 지나간 기러기의 발자국이 강물에 있는 것과 같을 뿐임을 매양 깨닫게 되니, 어찌 스스로 가슴 아프고 슬프지 않겠습니까.

[주D-001]길보(吉甫)의……없습니다 : 주 선왕(周宣王) 때에 대신(大臣) 중산보(仲山甫)가 성(城)을 쌓으러 나갔을 때 윤길보(尹吉甫)가 중산보를 사모하여 부른 노래에 "길보가 이 노래 지어 부르니, 맑고 온화하기 청풍 같도다. 중산보가 임금을 깊이 생각하는지라, 이 노래로 그의 마음 위로하노라.[吉甫作誦 穆如淸風 仲山甫永懷 以慰其心]" 한 데서 온 말인데, 목여(穆如)는 곧 맑고 온화함을 뜻한다. 《詩經 大雅 蒸民》
[주D-002]유후(留侯)의 벽곡(辟穀) : 유후는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名臣)인 장량(張良)의 봉호이고, 벽곡은 화식(火食)을 하지 않고 생식(生食)만 하는 것을 이르는데, 장량이 벽곡을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민중(閔仲)의……끼칩니다 : 고을 수령으로부터 음식물을 대접받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민중은 자가 중숙(仲叔)인 후한(後漢) 때의 절사(節士) 민공(閔貢)을 이른다. 민공이 안읍현(安邑縣)에 있을 때에 노병(老病)이 있는데다 집이 가난하여 고기를 사먹을 수 없으므로, 날마다 푸줏간에 가서 저간(猪肝) 한 점씩만을 사먹었는데, 안읍령(安邑令)이 그 사실을 듣고는 하리(下吏)를 시켜 항상 저간을 그에게 공급하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五十三》
[주D-004]강남의 칠자(七子) : 청(淸) 나라 때 강남 출신 학자들로서 왕창(王昶)·왕명성(王鳴盛)·전대흔(錢大昕)·오태래(吳泰來)·조인호(曹仁虎)·조문철(趙文哲)·황문련(黃文蓮) 등 일곱 사람을 가리킨다.
[주D-005]연운(煙雲) : 구름이나 연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조금도 기억에 남지 않은 과거사(過去事)들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