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3]

천하한량 2007. 3. 9. 03:49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3]

삼가 듣건대 태각(台閣)에 오르셨다 하니, 온 세상과 함께 경하드리고 또 합하를 위해서 염려하여 마지 않습니다. 함께 경하를 드리는 것은 외부적으로 뭇사람들의 일반적인 송도(頌禱)를 따른 것이고, 염려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내 심장에서 흘러나온 걱정되는 마음에서입니다. 비록 시골이나 섬 구석의 서민남녀들까지도 모두 목을 길게 빼고 합하가 재상이 된 것을 환영하는데, 더구나 그 옛날의 친구의 말석에 끼었었던 사람으로 이렇듯 곤경에 빠진 나 같은 물건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은 옛날과 달라서 동작(動作)을 하는 데는 마치 솜옷을 입고서 가시를 끌어당기듯 몸조심만 하고, 습상(習尙)이 된 것은 시비가 전혀 모호하니, 이런 때에는 비록 고요(皐陶)와 기(夔)가 취사(炊事)를 담당하고 이윤(伊尹)과 여상(呂尙)이 땔나무를 마련하더라도 솥 안의 음식을 도저히 조제(調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명(聖明)이 위에 계심과 동시에 합하께서 임금의 단독 신임을 얻은 것으로는 아마 또 이만한 때가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끝내 한 번 포부와 역량을 천하에 펴서 빛을 감추고 세속과 어울리어 친밀함 속에서 그들과 조화를 잘 이루어보지 못한다면 어찌 길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합하를 위하여 꾀해 보건대, 들어가기를 헤아려서 들어가지 말고 용맹스럽게 나아가서 일분이나마 유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설령 일분의 유익함도 없이 만 길이나 되는 함정이 그 뒤를 따른다 할지라도, 이때에 나가지 않는 것은 또한 군자가 기미와 시기를 살피는 의리가 아닙니다. 장송(張竦)의 말에 이르기를,
"사람은 각각 성(性)이 따로 있으니 길고 짧음은 스스로 재단해야 한다. 그대가 나를 위해 주려고 해도 될 수가 없고, 내가 그대를 본받아도 또한 실패하는 것이니, 각각 자기의 적성대로 따를 뿐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삼가 생각하건대, 재량(才量)이라는 것은 남이 대신하여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마치 앉은뱅이가 걸음걸이를 논하는 격이 되었으니, 가소로운 일인 줄은 잘 압니다마는, 도의(道義)의 사귐과 친척의 정의가 있는 합하의 앞에서는 감히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토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