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2]

천하한량 2007. 3. 9. 03:48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2]

서함을 중추(中秋) 이전에 보내셨는데, 입동(立冬) 이후에야 받았습니다. 산과 바다가 막혀서 걸핏하면 60~70일이 걸리지만, 그래도 이를 근간의 소식으로 여깁니다. 나를 극진히 돌보아주심이 대단히 소망 밖에 넘치니, 지금 이렇게 돌보아주심을 입은 것으로써 과거의 사정을 거슬러 올라가 헤아려 보건대, 마치 천 겹의 촉산(蜀山)과 만 구비의 초수(楚水)가 심폐(心肺) 위에 겹겹이 둘러있기도 하고 콸콸 흐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혹은 나뭇가지가 여기저기서 서로 버티는 듯, 혹은 기름이 불에 부글부글 타듯이 마음이 졸아들어 마치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해소되는 결과는 바로 촌지(寸紙) 한 장의 힘에 의해 반복하여 한 번 웃어버리는 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유주(柳州)의 서신(書信)이나 혜주(惠州)의 척독(尺牘) 또한 모두 이와 같은 마음속의 응어리를 소식(消息)시킬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하늘 같은 은총에 의해 관직은 해면되었으나 한가로이 휴양할 만한 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감(老監)의 경수(鏡水)를 번거롭게 하사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거사(居士)의 영미(穎尾)는 소원대로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창(窓) 앞에는 산봉우리들이 벌여 있고, 베개 밑에는 샘물이 흐르는데, 구석진 곳을 개발하여 그 진면목을 노출시킨 가운데 도서(圖書)가 정리되고 장구(杖屨)가 정길(貞吉)하니, 산중(山中)의 재상(宰相)이요 신선(神仙)의 복지(福地)입니다. 그래서 나는 목을 길게 빼고 두 손 모아 송축하면서 우러러 떠받들고자 하여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서신이 있은 이후로 첫 추위를 만난 이때에 균체후(勻體候)가 연해서 신명이 내린 복을 누리시어 고향 산천으로 내려가시는 행차도 따라서 출입하는 것이 크게 길하니, 구구히 사모하여 축원하며 멀리서 사사로이 늘 송축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정희(正喜)는 입과 코의 예전 질환이 한결같이 조금도 차도가 없이 여러 해를 넘기고 있으니 이것도 극히 상리에 어긋나는 일인데, 게다가 눈의 어른거리는 증상까지 첨가되어 거의 지척 사이를 분변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것이 모두 풍화(風化)가 장독(瘴毒)을 끼고서 이와 같이 사람을 침범한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의 동작·언행 등 백사 천사가 반드시 눈을 기다려서 일어나는 것인데, 입과 코의 장애로도 오히려 미진하여 또 이 눈의 장애까지 겹치니, 끝내 또 무슨 앙갚음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매양 합하께서 비호해 주시는 성대한 혜택과 힘써 일깨워 주시는 지극하신 뜻을 입어, 주야로 몸을 경계하여 가지며 동정(動靜)을 스스로 관찰하여, 감히 스스로 해이해지거나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이렇듯 구차하게 이어가는 실낱 같은 목숨으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 어찌 다른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또 반복하여 정성스럽게 하교(下敎)하셨는데, 여기에 말씀하신 천인(天人) 간에 순환하는 화복(禍福)의 이치와 환난(患難)을 인하여 동심인성(動心忍性)을 해야 한다는 경계는 시귀(蓍龜)를 통해서도 반드시 증험할 수 있고, 역사상으로도 전혀 틀림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여기에 힘껏 노력하여, 뜻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몸을 확고하게 가지고 지켜서, 끊임없이 전진하여 혹시라도 이것을 실추시키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다만 세월은 변함없이 흐름으로써 질병이 따라서 침범하여, 한정이 없는 조물주는 한정이 있는 인간을 매양 서로 기다려주지 않는데다 기질(氣質)까지 어둡고 나약하여 감당해 낼 수가 없으니, 아득한 천지 사이에 이 원통함을 어찌하겠습니까?
부채에 쓴 서화(書畫)는 과연 좋은 작품입니다. 이는 곧 구향(甌香)의 필법이요 석추(石帚)가 남긴 조격(調格)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들게 합니다. 대개 요즘에 사생(寫生)에 있어서는 반드시 남전(南田)을 종(宗)으로 삼고, 전사(塡詞)에 있어서는 멀리 백석(白石)을 따르는데, 풍격의 맑고 빼어남이, 산뜻하고 화려한 한 가지에 있어서는 부족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비록 소도(小道)이기는 하나, 또한 백안(白眼)으로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英國)의 선박(船舶)에 관한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지금 다시 제기할 필요는 없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다만 부끄러워서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 들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합하의 하교를 받들어 읽어 보니, 더욱 아연 일소를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황제(皇帝)의 위엄이 아무리 미치지 못할 데가 없다 하더라도 지나가는 물오리와 기러기가 어찌 조서(詔書)를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탐문해 본 결과 흔적도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는데, 장차 허공을 향하여 칙서(勅書)를 선포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곳에 유치(留置)해 놓은 지도(地圖)에 대해서 잠깐 훑어보니, 이것은 뛰어난 보배입니다. 중국에 전각(傳刻)된 여러 본(本)에 대해서는 내가 일찍이 본 것도 적지 않은데, 이렇게 지극히 정밀하고 자세하고 명확하고 진실된 지도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세계(五世界)의 형세에 대해서는 아직도 한만하지만,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위치하여 경계가 서로 인접한 데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한 것까지도 자세히 끼워넣어서 마치 거울로 비추어보듯, 도장을 찍어 놓은 듯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매우 기이하게 여기다가 끝에 가서는 놀라기까지 하였는데, 저들이 과연 어디서 이와 같이 참답고 절실한 것을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형세를 살피고 시무를 아는 데에 조금만 마음을 둘 수 있는 자라면 반드시 이것을 보통으로 보아서 함부로 해도(海島)에 버리지 않았을 것이니, 오늘날에는 끝내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아는 이도 없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친구에 대한 생각이 촉발하여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이중부(李中孚)는 바로 이용(李容)입니다. 그의 본명은 옹(顒) 자인데, 근래 사람들이 휘(諱)를 피하여 용(容) 자로 대신 쓴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세상에서 이이곡 선생(李二曲先生)이라 일컬어진 분인데, 그의 학술은 정주학(程朱學)을 숭상하여서 대단히 본받을 만한 것이 있고, 명(明) 나라의 유민(遺民)으로서 만절(晩節)은 더욱 우뚝하여 후인들의 의범이 되었습니다. 당견(唐甄) 또한 위숙자(魏叔子 숙자는 위희(魏禧)의 자)가 두려워하여 복종하는 바이니, 그 위인을 상상할 만합니다.

[주D-001]유주(柳州)의……척독(尺牘) : 당(唐) 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유주(柳州)에 폄적(貶謫)되었을 때와 송(宋) 나라 때 소식(蘇軾)이 혜주(惠州)에 유배되었을 때에 각각 친지들로부터 왕래했던 위문(慰問)의 서신들을 가리킨 말이다.
[주D-002]노감(老監)의 경수(鏡水) : 노감은 당(唐) 나라 때 일찍이 비서감(祕書監)을 지냈던 하지장(賀知章)을 이르는데, 그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현종(玄宗)이 특명을 내려 그에게 경호(鏡湖) 일곡(一曲)을 하사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거사(居士)의 영미(穎尾) : 거사는 요(堯) 임금 때에 영수(穎水) 가에 은거했던 은사 허유(許由)를 말하는데, 영미는 곧 영수와 같은 말이다.
[주D-004]구향(甌香) : 청 나라 때 사람으로 서화(書畫)에 모두 뛰어났던 운수평(惲壽平)의 관명(館名)이다.
[주D-005]석추(石帚) : 송 나라 때 사람으로 시(詩)에 특히 뛰어났고 서화에도 능했던 강기(姜夔)의 별호이다.
[주D-006]사생(寫生) :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실물(實物)·실경(實景)을 그대로 그리는 것을 이름.
[주D-007]남전(南田) : 위의 주 54)에 나타난 청 나라 운수평의 호이다.
[주D-008]전사(塡詞) : 시체(詩體)의 한 가지로서 악부(樂府)의 보(譜)에 합치하도록 적당한 자구(字句)를 채워서 짓는 시를 말한다.
[주D-009]백석(白石) : 역시 위의 주 55)에 나타난 송 나라 강기(姜夔)의 호이다.
[주D-010]오세계(五世界) : 오대주(五大洲)와 같은 뜻으로, 결국 '세계'와도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