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6] |
잠자리에 서늘한 기운이 들고 임천(林泉)에 절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푸른 돌과 맑은 샘물은 끝내 뜨거운 먼지 속의 물건이 아니요 본디 스스로 만곡(萬斛)의 청량(淸涼)함을 갖추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기(氣)를 토해내고 경치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또한 그 공덕을 거두어 신지(神志)를 깨끗이 씻고 영화(英華)를 깊이 음미하여, 털[毛]을 깎고 골수를 씻고서 하늘 높이 솟아올라 신선의 경계로 오를 수 있는 것이니, 이 또한 광대하고도 위대한 때로서 군자(君子)가 이 도리를 따르는 것이요, 일단의 경치를 즐기는 데만 그칠 뿐이 아닌 것입니다.
요즈음 밤의 달빛은 과연 좋은데, 강물 사이의 밝은 달이 비록 매우 고요하고 공허하지만, 이분(二分)을 완전히 차지한 산중의 밝은 달만 못한 것입니다. 나는 매양 우러러 바라보며 향하고자 하여 마치 광영(光影)을 따라잡으려는 듯이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 서한을 보내 위로해 주심을 삼가 받으니, 더욱이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구름과 함께 합하께로 갑니다. 더구나 삼가 살피건대, 요즘 서늘해진 절기에 균체후(勻體候)가 신명의 보우로 많은 복을 받아 조용히 수양을 하시면서 좋을 대로 유유자적하며 다른 거리낌이 없다고 하시니, 한량없이 우러러 송축합니다.
방관자의 입장으로 보건대, 관복(官服)을 입고 머뭇거리는 것에 대해서는 오래 지체되는 탄식이 있겠거니와, 용사(龍蛇)처럼 칩거하여 몸을 보존하는 것과 신비한 도리를 다 궁구하여 변화함을 아는 성대한 덕에 대해서는 작고 얕은 소견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대인(大人)의 경지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정희는 열독(熱毒)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어,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즈음에 담증(痰症)이 갑절이나 극성을 부려서, 마치 무도한 진(秦)·초(楚)의 강대국에 대해서 약소국의 병거(兵車)로 대항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게다가 눈의 어른거리는 증세까지 또 얼마큼 더쳐서 이것들이 좌우에서 서로 공격을 하니, 실로 곧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때에 만일 석천(石泉)의 물을 한번 마시게 된다면 옥모(玉貌)의 요성(聊城)에 대한 한 마디 말의 소중함보다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신(菊辰 중양절(重陽節)을 이름)의 놀이를 재차 다짐한 기약에 대해서 손꼽아 삼가 기다리는 바이니, 감히 삿갓을 쓰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주D-001]이분(二分)을……차지한 : 천하의 밝은 달을 삼분(三分)으로 보았을 때 그 이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한 말로, 서응(徐凝)의 억양주시(憶揚州詩)에 "천하를 통털어 삼분의 밝은 달밤에, 사랑스럽기도 해라 이분이 바로 양주일세.[天下三分明月夜 二分無賴是揚州]"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상대방을 칭찬하여 비유한 것이다.
[주D-002]옥모(玉貌)의……소중함 : 옥모는 전국 시대 위(魏) 나라 객장군(客將軍) 신원연(新垣衍)이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인 노중련(魯仲連)을 일컬은 말이므로, 전하여 노중련을 이름. 일찍이 연(燕) 나라 장수가 제 나라 요성(聊城)을 함락했을 때 요성 사람이 그를 연왕(燕王)에게 참소함으로써 그가 연 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요성을 보수(保守)하게 되자, 제 나라 전단(田單)이 장기간 요성을 공격했으나 사졸(士卒)만 많이 죽이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노중련이 연 나라 장수에게 속히 요성에서 철수하여 연 나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이해 득실을 상세히 논하여 편지 한 장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중(城中)으로 쏘아 보냈더니, 연 나라 장수가 그것을 받아보고는 자신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음을 깨닫고 마침내 자결을 함으로써 제 나라가 평온을 되찾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八十三》
[주D-002]옥모(玉貌)의……소중함 : 옥모는 전국 시대 위(魏) 나라 객장군(客將軍) 신원연(新垣衍)이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인 노중련(魯仲連)을 일컬은 말이므로, 전하여 노중련을 이름. 일찍이 연(燕) 나라 장수가 제 나라 요성(聊城)을 함락했을 때 요성 사람이 그를 연왕(燕王)에게 참소함으로써 그가 연 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요성을 보수(保守)하게 되자, 제 나라 전단(田單)이 장기간 요성을 공격했으나 사졸(士卒)만 많이 죽이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노중련이 연 나라 장수에게 속히 요성에서 철수하여 연 나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이해 득실을 상세히 논하여 편지 한 장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중(城中)으로 쏘아 보냈더니, 연 나라 장수가 그것을 받아보고는 자신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음을 깨닫고 마침내 자결을 함으로써 제 나라가 평온을 되찾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八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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