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9]

천하한량 2007. 3. 9. 03:51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19]

바람 불고 파도 치는 때에 옥적산방(玉笛山旁)이 마치 십주 삼산(十洲三山)과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하는 그곳에 가서 어른을 받들어 모시고 운연(雲煙)을 한껏 즐기게 될 줄을 어찌 감히 스스로 헤아렸겠습니까. 비록 둘이 다 머리는 희고 얼굴은 쭈글쭈글하여 다시 천리마처럼 성장(盛壯)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우러러보건대 용마(龍馬) 같은 정신이 왕성하고도 견고하심이 또 비박한 위인의 여지없이 쇠퇴해진 모습과는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기뻐하여 축하하였고 여러 날 동안 기분이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이 소인은 예전대로 깜깜하고 완둔할 뿐인데, 다만 돌아와서 속으로 잊지 못하는 것은 귓가를 울리던 석천(石泉)의 물소리와 혀끝에 달콤하던 차맛입니다. 어떻게 하면 땅 절반을 나에게 나누어 주어 합하와 나란히 밭 갈고 싶은 옛 소원을 쾌히 이룰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과연 백분 극히 어려운 일이기에 하늘이 아끼는 바인가 봅니다.
서방(西方)의 극락국(極樂國)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면 즉시 갈 수가 있다던데, 소인의 생각은 아직 미진한가 봅니다. 도원(桃源)의 노[棹]는 다시 들어갈 수 있었을 터인데, 자기(子驥)가 나루를 잊어버린 것은 바로 하나의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삼가 듣건대, 산중에는 붉고 푸른 온갖 경치가 그득하다 하니, 궁둥이가 절로 들썩거려집니다. 그러나 다만 동서로 거리낌이 많아서 옛날의 맹약을 추급하여 이루지 못하고 전일의 꿈을 잇기가 어렵습니다. 하나의 소규(小規)에 불과한 이 속에서도 이와 같이 주장(主張)을 하지 못하는데, 하늘로 솟아오르고 땅 속으로 들어가며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운신하는 경우는 또 이 어떤 대인(大人)의 경계란 말입니까.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만 짧은 한숨과 차가운 조소가 나올 뿐입니다.

[주D-001]십주 삼산(十洲三山) : 십주는 신선이 산다는 10개의 섬으로 즉 조주(祖洲)·영주(瀛洲)·현주(玄洲)·염주(炎洲)·장주(長洲)·원주(元洲)·유주(流洲)·생주(生洲)·봉린주(鳳麟洲)·취굴주(聚窟洲)를 말하고, 삼산은 역시 신선이 산다는 3개의 산으로, 즉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를 말한다.
[주D-002]도원(桃源)의……것 :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시내를 따라 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을 만나, 이른바 진 (秦) 나라 때 난리를 피해서 그 절경(絶境)에 옮겨와 산다는 별세계인(別世界人)들을 만나서 수일 동안 훌륭한 대접을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후에 남양(南陽)의 고사(高士) 유린지(劉驎之 자는 자기(子驥)임)가 그 소문을 듣고 좋아하여 친히 갔으나 끝내 그 나루를 찾지 못하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陶淵明集 卷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