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5] |
윤춘(閏春) 및 초하(初夏)에 연달아 서신으로 배례(拜禮)를 드린 것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받아 열람하셨을 듯합니다. 그런데 입하(入夏)로부터 곧바로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백 일 동안을 소식이 막혀 가서(家書)까지 아울러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육지와 바다가 서로 격절된 것이 비록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마치 같은 시대를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하여 삼가 묻건대, 숭체(崇體)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여 신명의 보우로 많은 복을 받으셨습니까? 그리고 전조(銓曹)의 직임을 벗지 못하시어 인사행정을 크게 담당하시면서, 별다른 거리낀 일이나 없이 합내(閤內)가 고루 길하시고 대소 제절이 다 편안하신지 구구하게 우러러 축수드리며, 북두(北斗)를 비겨서 애써 서울을 바라보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이 죄인은 3개월 동안이나 장기(瘴氣)로 인하여 학질(瘧疾)을 앓으면서도 이를 다스릴 수가 없어 한열(寒熱)이 침학(侵虐)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그럭저럭 80여 일을 경과하였더니, 원기(元氣)가 점차로 손상되어 남김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식보(食補)나 약보(藥補)는 모두 논할 것도 아니거니와, 우선 몸에 살이 온통 빠져버려서 자리에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궁둥이에 부스럼이 생길 지경이니, 이러고도 어떻게 오래갈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벌레와 뱀까지 따라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반 자[半尺]나 되는 지네와 손바닥만한 거미들이 침석(枕席)을 횡행하는가 하면, 처마에서는 새끼 가진 참새가 날마다 뱀을 경계하여 지저귀곤 하는데, 이는 모두 북쪽 육지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들입니다.
그리고 5월 그믐 사이에는 대단히 무서운 비바람을 한 차례 겪었습니다. 이때에 기왓장과 자갈은 공중을 날아다니고 큰 나무는 뽑혀 넘어져서 뿌리가 서로 연했으며, 바다에는 파도가 새까맣게 솟아오르고 그 가운데서는 천둥 소리가 일어나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나란히 하고 무릎을 맞댄 채 서로 꼭 껴안아서 마치 스스로 보존하지 못할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이 말하기를,
"갑인년에 큰 바람이 있은 이후 4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질병 이외에도 겪는 고통이 또 이러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운명에 맡기고 이것들과 더불어 위아래로 미루어 변천하여 천신만고 속에 자신을 연마하고 인내하면서 겪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마침 인편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감히 몇 자를 적어서 애오라지 내가 살아있음을 고합니다. 그러나 살아있은들 또한 무엇하겠습니까. 북쪽을 바라보는 마음만 끝이 없습니다.
이곳의 풍토(風土)와 인물(人物)은 혼돈 상태가 아직 벽파(闢破)되지 않았으니, 그 우둔하고 무지함이 저 어만(魚蠻)·하이(蝦夷)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래도 그 가운데 또한 무리를 초월한 기재(奇才)가 있기는 하나, 그들이 읽은 것은 《통감(通鑑)》·《맹자(孟子)》 두 종류의 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비록 이 두 가지 책만 하더라도 어디에나 구애될 것이 없는데, 어떻게 이와 같이 책비(責備)할 수 있겠습니까. 타고난 본성은 남북이 서로 다를 것이 없으나, 다만 그들을 인도하여 개발시켜 줄 스승이 없으므로, 슬피 여기고 불쌍히 여겨 이와 같이 탄식을 하는 것이 정히 이곳을 위해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한라산(漢拏山) 주위 4백 리 사이에 널려있는 아릅답고 진기한 감(柑)·등(橙)·귤(橘)·유(柚) 등은 사람마다 다같이 아는 바이거니와, 이 밖의 푸른 빛이 어우러진 기목명훼(奇木名卉)들은 거개가 겨울에도 푸르른 식물(植物)로서 모두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인데, 여기에 나무하고 마소 먹는 것을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가령 나막신 신고 지팡이를 끌고서 이곳저곳을 탐방한다면 반드시 기이한 구경거리와 들을 것들이 있으련마는 이 위리안치된 생활로 어떻게 그런 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초(楚) 나라 남쪽에 돌은 많고 사람은 적은 것은 예부터 그러하였거니와, 한라산의 영이하고 충만한 기운 또한 초목에 모였을 뿐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어찌 그 기운이 물(物)에만 모이고 사람에게는 모이지 않는단 말입니까.수선화(水仙花)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강절(江浙) 이남 지역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곳에는 촌리(村里)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이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송이가 많게는 십수화(十數花) 팔구악(八九萼) 오륙악(五六萼)에 이르되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 합니다. 이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문 동쪽·서쪽이 모두 그러하건만, 돌아보건대 굴속에 처박힌 초췌한 이 몸이야 어떻게 이것을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눈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토착민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우마(牛馬)에게 먹이고 또 따라서 짓밟아 버리며, 또한 그것이 보리밭에 많이 난 때문에 촌리(村里)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한결같이 호미로 파내어 버리는데, 호미로 파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또는 이것을 원수 보듯 하고 있으니, 물(物)이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또 천엽(千葉) 한 종류가 있는데, 처음 송이가 터져 나올 때에는 마치 국화(菊花)의 청룡수(靑龍鬚)와 같아 서울에서 본 천엽과는 크게 달라서 곧 하나의 기품(奇品)입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삼가 큰 뿌리를 골라서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마는, 그때 인편이 늦어지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굴자(屈子)의 이른바,
"내가 고인(古人)에게 미치지 못하니, 내가 누구와 더불어 이 방초(芳草)를 완상하리오."
라고 한 말에 내가 불행하게도 가깝습니다. 접촉하는 지경마다 처량한 감회가 일어나서 더욱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주D-001]어만(魚蠻)·하이(蝦夷) : 어만은 어만자(魚蠻子)의 준말로 고기잡는 사람을 이르고, 하이는 옛날 일본(日本)의 북해도(北海道) 및 화태(樺太) 등지에 거주하던 인종(人種)을 말한다.
[주D-002]굴자(屈子)의……완상하리오 : 굴자는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이름. 이 말은 굴원의 사미인(思美人)에 나오는 말로, 원뜻은 곧 굴원 자신이 은 탕왕(殷湯王)·주 문왕(周文王)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충절(忠節)을 다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 《楚辭 卷四》
[주D-002]굴자(屈子)의……완상하리오 : 굴자는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이름. 이 말은 굴원의 사미인(思美人)에 나오는 말로, 원뜻은 곧 굴원 자신이 은 탕왕(殷湯王)·주 문왕(周文王)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충절(忠節)을 다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 《楚辭 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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