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6] |
삼가 생각건대, 새해에 높으신 복이 크게 길하십니까? 삼가 옥주(屋籌)를 헤아려 보니 60세가 딱 찼습니다. 이 손자(孫子)를 보시는 수성(壽星)을 가져다가 멀리 갑(甲)에 오른 길축(吉祝)을 펴노니, 두 손 모아 송축하는 마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이어서 군자(君子)가 다 늙어간다는 탄식 때문에 또 걱정이 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 동지 섣달 사이에 선편(船便)이 오랫동안 단절되어 전혀 왕래가 없었는지라, 제석(除夕) 하루 전에야 비로소 삼가 동짓달에 내리신 서함(書緘)을 받고 보니, 거의 60일 가까이 오랜 시일이 걸렸습니다. 어제의 소식을 접한 듯이 기쁜 마음이 한량없어, 세밑의 나그네 회포가 이를 힘입어 중(重)해진 것이 어찌 구정(九鼎)·대려(大呂) 정도 뿐이겠습니까. 더구나 인삼(人蔘)과 연초(煙草)를 연해서 많이 내려주시므로 우러러 높으신 비호에 의탁하여 인삼은 먹어서 원기(元氣)룰 보충하고 연초는 피워서 장기(瘴氣)를 막게 되었으니, 더없이 머리 들어 사례하는 바입니다.
지난 겨울에 내가 올린 서신들은 아마 모두 착오없이 도착하여 열람하셨을 줄로 압니다마는, 이 먼 곳에서는 의혹이 생기고 문득 다시 조바심이 나기도 하는데, 과연 모두 합하의 서실(書室)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후의 안부는 또 어느 때나 받들어 살피게 될지 알 수 없어 시력이 미치는 곳까지 바라보는 가운데 정신이 녹으려 합니다.
인우(隣友)의 일기(一朞)가 이미 지났습니다. 죽고 살고 서로 멀리 헤어지는 원한과 나그네로 이리저리 유랑하는 심사 속에 세월이 급히 달리는 것이 느껴지고 묵은 자취의 희미해지기 쉬운 것이 슬프기만 합니다. 서리 이슬은 급급히 내리고 해묵은 풀은 면면히 이어지는데, 옛날의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면 슬퍼하여도 다시 미칠 수 없고, 새벽꿈은 몹시도 짧아서 순식간에 세상이 변해 버리니, 저 푸른 하늘은 무슨 마음으로 우리의 도를 끝내 궁하게 한단 말입니까. 애가 끊어지려는 이 심정은 아마 합하께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죄인은 여기에 있은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는데, 바다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고 세월은 급급히 흐르기만 하니, 내가 비록 면목이 있은들 인간의 면목이겠습니까. 그저 어별(魚鼈)과 멀지 않은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또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모든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내가 이 무슨 사람이란 말입니까.
자상하게 하교해 주신 말씀에 대해서는 감히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지 않겠습니까. 몸뚱이의 피와 살은 남김 없이 말라가서 날마다 시간마다 달라지고 있으니, 비록 등골뼈를 일으켜 세워 조물주(造物主)와 서로 버티어서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 한계가 없는 조물주를 따르려고 한들 될 수가 있겠습니까.
즉시 듣건대 가인(家人)이 양자(養子) 하나를 정했다고 합니다. 이 험난하고 불운한 가운데 또한 문호(門戶)의 기쁨을 얻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부자(父子) 간에 서로 만나볼 수가 없으니, 아비는 아비노릇을 하고 자식은 자식노릇을 하는 도리가 여기에서 또한 궁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하늘과 두터운 땅에 이러한 처지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말해 보았자 아무 이익도 없는 일이지만, 집사(執事)이시기 때문에 부질없이 이렇게 들려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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