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8]

천하한량 2007. 3. 9. 03:46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8]

큰 병을 치른 이래로 회포가 산란한데다 다시 외로운 인생이 의탁할 데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즉시 높으신 서한을 받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고서 반복하여 눈으로 보며 읽으니, 청운(靑雲)에 의지하여 붙인 데 대한 든든함이 몸을 보호하는 주술(呪術)이나 질병을 물리치는 부적(符籍)도 이보다 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구우(舊雨)에 대한 감개와 산하(山河)에 대한 비감으로 인하여 자못 한 글자에 한 눈물이 흐르려고 합니다.
서신을 발송한 지 꼭 백 일이 되었고 가을 일이 한창인 이때에 숭체(崇體)가 신명의 보우로 편안하시고 합내(閤內)가 두루 안녕하십니까? 요즘에는 자못 번거로운 일을 물리치고 편한 데로 나아가시어, 고향으로 가실 차비를 이미 정하시고 석물(石物)의 일도 따라서 완료하심으로써, 고향에 돌아와 늙으실 계획이 또한 방편을 얻었으니, 나는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부러워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반드시 기심(機心)을 알아서 기심을 끊어야만 이에 속세(俗世)에 머물기도 속세를 떠나기도 하는 것인데, 예로부터 명유석학(名儒碩學)들은 모두 이 한 수단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도 유난(留難)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시속은 그렇지 않아서 꼭두각시[傀儡]의 올가미가 두뇌와 척수를 끌어당김으로써, 가을 바람에 순채[蓴]와 농어회[鱸]를 생각하여 선뜻 멀리 떠나버리는 사람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람을 고민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만일 일부(一夫)의 주택(住宅)이라도 빌려서 다행히 합하와 나란히 밭갈기로 한 약속을 이루게만 된다면 이것이 곧 평소의 큰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는 귀양살이하는 자의 망상(妄想)으로서 항아리 속의 한 산가지임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이 죄인은 지난번에 또 넷째 자씨(姊氏)의 경악스런 부음(訃音)이 갑자기 내도하는 바람에 혼이 나서 앞이 캄캄하고 바다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니, 이 무슨 정황이었겠습니까. 북쪽에서 서신이 오면 비록 '평안(平安)' 두 글자가 보이더라도 매양 서신을 손에 잡을 때마다 마음이 당황해집니다. 그런데 더구나 친척(親戚)과 고구(故舊)의 생사에 관한 비감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히니, 이는 마치 또 마귀(魔鬼)의 야유(捓揄)가 이 한 가지 경우를 가지고 연극의 각본(脚本)처럼 서로 번갈아 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허깨비[幼]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때마다 고락(苦樂)과 비환(悲歡)에 따라 변천하는 바가 되고 맙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것이 바로 소식(消息)의 지극한 이치인데, 나의 경우는 궁함이 아직 궁함이 다 되지 못하고 변함이 아직 변함이 다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란 말입니까? 아니면 또 소식하는 한 가지 이치가 지금은 또 증험이 없어, 기수(氣數)의 주장(主張)이 한결같이 그 어긋나는 데 맡겨져서 그런 것이란 말입니까?
이 천한 사람의 병은 요즘에 또 발작했다 그쳤다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친 때이기는 하나 그 그친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매양 병이 곁에서 쑥 내밀고 나오는 것이 마치 죽순[筍]이 섬돌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데, 물어볼 만한 의원이 없으니 약은 또 어디서 의논하겠습니까. 게다가 겸하여 여름 내내 우마(牛馬)의 도살을 금하였으므로, 마(麻)·맥(麥)과 복령(伏令) 등 채식만을 마치 계율(戒律)을 지키듯이 먹어 왔는데,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목숨을 지탱할 수 있는 데 대해서는 애당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수천(水泉)은 과연 좋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여름철에는 빗물, 겨울철에는 눈물[雪]로 밥을 짓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 금년 여름은 특히 가물지 않았는데도 우물이 멀리 5리 밖에 있으므로 물을 길어오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그러니 만일 충암(冲庵)의 판서정(判書井)의 고사(故事)와 같이 우물을 파서 얻을 수 있다면 또한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만, 이 위리(圍籬) 밑에 어디서 샘을 엿볼 수 있겠습니까. 또 읍(邑)이 들 가운데 위치하여 토성(土性)이 더욱 건조하니, 설령 천맥(泉脈)이 있다 하더라도 샘물의 품질이 반드시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읍 밑에 우물 하나도 없는 것인데, 이는 또 3백 60개 고을 가운데서 들어보지 못한 일이기도 합니다.
산수공(山水公) 또한 읍으로부터 창천(滄泉)으로 옮겨 우거하였는데, 샘물의 맛도 좋았고 수석(水石)도 있어서 이리저리 소요할 만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또 나 같은 죄인으로서는 감히 의논할 바도 아닙니다.

[주D-001]구우(舊雨) : 우(雨)는 우(友)와 통하므로 즉 옛날에 사귄 친구를 이르는데, 두보(杜甫)의 시서(詩序)에 "옛날에 사귄 친구는 오는데, 새로 사귄 친구는 오지 않는다.[舊雨來 今雨不來]"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산하(山河)에……비감 : 진(晉) 나라 때 왕융(王戎)이 황공주로(黃公酒壚)를 지나다가 뒤에 오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옛날에 혜강(嵇康)·완적(阮籍)과 이곳에서 술을 실컷 마시곤 했는데, 이제는 혜강·완적이 죽고 없으니, 황공주로가 가까이 있어도 마치 산하(山河)처럼 멀게만 여겨진다."고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3]가을……사람 : 선뜻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이름. 진(晉) 나라 때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벼슬을 하다가 가을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므로 "인생은 자기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다."고 말하고, 당장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舊十二》
[주D-004]항아리……산가지 : 산가지는 곧 계산이나 계획을 뜻한 것으로, 즉 좁은 소견의 되지 못한 계획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5]충암(冲庵)의……고사(故事) : 충암은 기묘명현(己卯明賢)의 한 사람인 김정(金淨)의 호. 김정이 형조 판서로 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당하여 제주(濟州)에 위리안치되었을 적에 자신의 적려(謫廬) 곁에다 우물 하나를 파서 얻었는데, 물이 매우 맑고 시원했으므로, 후인들이 그를 사모하여 이 우물을 '판서정(判書井)'이라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沖庵集 年譜上》
[주D-006]산수공(山水公) :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으로 호가 산수헌(山水軒)인 권진응(權震應)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