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9]

천하한량 2007. 3. 9. 03:47
권이재 돈인 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9]

돌아온 인편에 의해 5월 초순께 내려주신 회답서를 받아본 결과 20일도 다 안 된 최근의 서신이었으니, 서신의 왕래가 이토록 신속하기는 내가 바다 가운데 들어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노년에도 사체(四體)가 건강한 다음에야 신선(神仙)과 부귀(富貴) 두 가지에 모두 한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자(程子)는 72세의 나이에도 오히려 생명을 잊고 욕심을 좇는 데 대한 경계가 있었고, 주자(朱子)에게는 금단(金丹)이 늦어졌다는 감회와 《참동계주(參同契注)》와 조식잠(調息箴)이 있어 매양 여기에 뜻을 깊이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풍우(風雨)·한서(寒暑)·음식(飮食)·기거(起居)에 있어 절선(節宣)하고 섭위(攝衛)하는 방술 또한 심성(心性)을 존양(存養)하는 한 가지 단서이기에, 이것이 바로 옛날 현인 군자들이 모두 삼가고 조심하던 곳입니다.
제가 태하(台下)께 늘 축원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또 특별한 마음을 쓰는 일이 있습니다. 모진 가뭄이 한결같이 계속되어 내지(內地) 또한 퍽 소요스럽다고 하는데, 그곳은 간혹 비가 두루 흡족하게 내리기도 합니까?
삼가 듣건대, 더위가 극심한 이러한 때에 태체(台體)가 신명의 도움으로 백복(百福)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짐을 벗고 나면 몸이 가볍고 편안하며, 통탈(桶脫)을 하고 나면 정신이 쾌활해지는 것이니, 앞으로는 태하의 세계가 또한 다시 넓고 한가하여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도하(都下)의 민정(民情)이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의 젖을 떨어지듯이 크게 실망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윤우(允友)는 교목(喬木)의 그늘이 영화를 이어서 효자(孝子)가 고관(高官)에 올랐으니, 이것이 가장 눈이 번쩍 뜨이는 곳입니다. 우러러 생각건대, 한편으로는 감격하여 축원하고 한편으로는 그 경사를 기뻐하실 것이니, 뜻이 같은 사람으로서 우러러 송축하는 마음이 또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 죄인은 더위에 지치고 장기(瘴氣)에 지친 가운데 단지 작년처럼 한열병(寒熱病)만 다시 겪지 않은 상태인데, 그래서 다만 하나의 완둔한 목석(木石)일 뿐입니다. 거미와 지네는 예전과 같이 사람을 괴롭히고, 파리도 무척 많아서 아침에 갈아입은 흰옷이 저녁이면 마치 검은 물을 뿜어 놓은 것처럼 까맣게 되며, 밤이 되면 벼룩과 모기가 서로 득실거려서 잠을 이룰 길이 없습니다. 또 무슨 벌레인지는 모르겠으나 혹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한 마치 먼지처럼 자잘한 벌레들이 있어 날카로운 독침이 가시와도 같고 벌침과도 같은데, 이것들이 침욕(枕褥)의 사이에 서로 득실거리면서 내 몸의 피와 살을 저들의 생계(生計)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경(詩經)》에 이른바,
는 것이 미세한 벌레에까지 미쳐 침범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조항(祚沆)의 무리들이 조금도 꺼리지 않고 끝없이 방자하게 구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이를 또한 어찌하겠습니까. 한결같이 하는대로 맡겨둘 뿐입니다.
동해순리인(東海循吏印)은 가중(家仲)이 돌려 보여준 것으로 듣건대 이것이 바로 장요손(張曜孫)이 전각(篆刻)한 것이라 하는데, 대단히 고아한 맛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완백산인(完白山人)의 진수(眞髓)를 정통으로 전해받은 것인데, 이것을 몇 개 더 얻을 길이 없어 한스럽습니다. 종전에는 유백린(劉柏隣)의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그것을 제이품(第二品)으로 보아야겠습니다. 보시고 바로잡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D-001]정자(程子)는……있었고 : 정자가 일찍이 장역(張繹)에게 이르기를 "나는 기(氣)를 매우 박하게 타고났으나 50세 이후에는 완전해졌고, 지금 72세의 나이에도 근골(筋骨)이 조금도 손상됨이 없다." 하므로, 장역이 묻기를 "선생께서는 어떻게 기를 박하게 타고나서 그토록 섭생을 잘하셨습니까?" 하니, 정자가 한참 뒤에 이르기를 "나는 생명을 잊고 욕심을 좇는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元學案 卷十六 伊川學案下》
[주D-002]주자(朱子)에게는……감회 : 주자가 젊은 시절에 일찍이 운당포(篔簹鋪)에서 쉬다가 그 벽간(壁間)에 "빛나는 영지는 일년에 꽃이 세 번이나 피는데, 나는 유독 어찌하여 뜻만 있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고.[煌惶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는 글이 씌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무척 동감(同感)했는데,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뒤에 우연히 그곳을 다시 둘러보니 그 글은 이미 없어졌으나, 지난 일에 감회가 일어나므로 , 장난삼아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언뜻 지나는 백년 세월 그것이 얼마나 되랴. 세 번 꽃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고. 나이 늦도록 금단을 이룬 소식이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고 읊었던 데서 온 말이다. 《朱子大全 卷八十四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주D-003]조식잠(調息箴) : 역시 주자가 지은 잠명(箴名)인데, 그 내용은 곧 비식(鼻息)의 출입(出入)을 고르게 하여 몸에 화기(和氣)가 충만해지도록 하는 양생법(養生法)을 서술한 것이다. 《朱子大全 卷八十五》
[주D-004]통탈(桶脫) : 불교(佛敎)의 용어인 통저탈(桶底脫)의 준말로, 가만히 앉아서 타세계(他世界)로 왕생(往生)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5]교목(喬木)의……이어서 : 교목은 교목 세가(喬木世家)의 준말로, 고관 대작이 계속하여 대(代)를 이어가는 것을 뜻한 말이다.
[주D-006]그렇지 않아도……받노라 : 《시경(詩經)》 패풍(邶風) 백주(柏舟)의 시인데, 내용은 한 부인이 남편으로부터 소박을 맞고, 또 뭇 첩(妾)들에게 학대를 받는 것을 원망하여 노래한 것이다.
[주D-007]조항(祚沆)의 무리 :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8]장요손(張曜孫) : 청(淸) 나라 사람으로 특히 의술(醫術)에 정통했다 한다 .저서에는 《근언신행지거시집(謹言愼行之居詩集)》이 있다.
[주D-009]완백산인(完白山人) : 청나라 때 사체서(四體書)모두 정통하고 전서(篆書)는 더욱 신품(神品)으로 일컬어졌으며, 전각(篆刻)에도 뛰어났던 등석여(鄧石如)의 호이다. 그의 저서에 《완백산인인존(完白山人印存)》이 있다.